‘反엔비디아’ 나선 빅테크 기업들...삼성·SK는 엇갈린 셈법
인텔 ‘가우디3’ 앞세워 가격·성능 공세
AMD ‘MI325X’로 메모리 용량 강조
삼성·SK는 각 전선 따라 전략 차별화
세계 최고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엔비디아를 겨냥해 경쟁 빅테크기업들이 거센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텔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AMD, Arm 등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이 연대를 통해 ‘엔비디아 독주’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엔비디아를 포함한 각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엔비디아 제품보다 더 싸고 더 좋다”...반(反)엔비디아 움직임=5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AI 가속기 시장에서 90%가량의 점유율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빅테크기업들은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어 자체 제품으로 엔비디아의 대항마를 자처하고 나섰다.
인텔과 AMD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최대 IT 박람회 ‘컴퓨텍스 2024’에서 나란히 엔비디아 제품과 비교한 자사 AI 가속기 강점을 강조하며 엔비디아와 경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4일 기조연설에서 인텔의 AI 가속기 ‘가우디 3’의 가격 정책을 발표하며 엔비디아를 정조준했다.
겔싱어 CEO는 “인텔 가우디 3는 동급 규모의 엔비디아 H100 GPU 클러스터에 비해 학습 시간이 최대 40% 빠르다”며 “엔비디아 제품의 최대 3분의 1 가격으로 비용 면에서도 우월하다”고 강조했다. 8개의 인텔 가우디 3 가속기와 범용 베이스보드(UBB)가 포함된 키트는 12만5000달러로, 동급 경쟁 플랫폼 가격의 약 3분의 2 수준이다.
앞서 리사 수 AMD CEO도 3일 기조연설에서 차세대 AI 가속기 ‘AMD 인스팅트 MI325X(이하 MI325X)’를 공개하며 올 4분기 출시 계획을 밝혔다.
수 CEO는 직접 자사 제품과 엔비디아 제품을 비교해 설명할 만큼 엔비디아에 대한 강한 견제 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자사 MI325X 탑재 시 엔비디아의 H200 대비 메모리 용량은 2배, 메모리 대역폭은 1.3배, 모델 사이즈는 2배 향상된다고 강조했다.
수 CEO는 이날 MS, HP, 레노버 등 파트너사들을 무대 위로 불러 세우며 세를 과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파트너사들도 일제히 AMD를 지원사격하며 힘을 실어줬다.
특히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영상 메시지에서 “PC부터 현재 A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컴퓨팅 플랫폼으로 뻗어간 AMD와 깊은 파트너십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MS는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사 중 하나로 꼽히지만 동시에 반(反) 엔비디아 전선에 속해 있기도 하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빅테크기업들이 엔비디아에 대항해 출범한 ‘울트라 가속기 링크(Ultra Accelerator Link·UA링크) 프로모터 그룹’에도 MS는 이름을 올리고 있다. AMD, 인텔, 메타 등도 속해 있다.
UA링크 프로모터 그룹은 엔비디아의 ‘NV링크’에 대항해 AI 가속기 연결을 위한 기술 표준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NV링크는 AI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등의 칩간 데이터 전송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술이다. NV링크가 전 세계 AI 칩 시장의 80%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연대로 엔비디아 체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셈이다.
여기에 AI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애플과 메타까지 자체 AI 칩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반 엔비디아 전선에 합류한 상황이다.
▶HBM·AI 가속기서 합종연횡...엇갈린 셈법=반(反) 엔비디아 연합의 구축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등 국내 기업들의 전략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연합에 속해있고, 삼성전자는 네이버, AMD 등과 손잡고 ‘SK하이닉스-TSMC-엔비디아’로 이어지는 1류 연합에 대항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연내 양산을 목표로 자체 AI 가속기 ‘마하-1’을 개발하고 있다. 추론용 AI 반도체 마하-1은 품귀현상으로 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HBM 대신 저전력 메모리 ‘LPDDR’을 탑재해 전력 효율을 8배 더 높이고, 메모리 병목현상을 8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특징이다. SK하이닉스 중심의 HBM 시장 판도를 바꿔버리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고객사로 네이버를 확보했으며, 함께 협업하고 있다. 네이버에도 엔비디아 AI 가속기는 지나치게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마하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마하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네이버가 맡고, 칩 디자인과 생산은 삼성전자가 맡는다.
삼성전자와 네이버의 연합은 인텔까지 이어진다. 네이버는 인텔·KAIST와 손잡고 AI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을 하는 공동 연구소를 설립한다. 실제로 4일 개막한 컴퓨텍스에서 겔싱어 CEO는 협력사 중 하나로 네이버를 언급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는 AMD와 손잡고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3를 AMD에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AMD가 출시할 AI 가속기에도 삼성전자의 차세대 HBM이 탑재될 전망이다.
반대로 SK하이닉스는 친(親) 엔비디아 연합을 더욱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최근 TSMC와 업무협약을 맺고 HBM4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기존 D램 공정이 아닌 파운드리의 초미세 공정을 활용해 HBM4에 들어가는 베이스 다이를 만든다. HBM 제품의 전력 효율과 성능을 대폭 높일 수 있다.
TSMC는 SK하이닉스로부터 HBM을 공급받아 엔비디아가 주문한 GPU와 AI 가속기에 패키징해 최종 제품을 위탁생산한다. 이를 제공받은 엔비디아는 전세계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판매하는 형식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엔비디아의 독주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텔, 삼성전자, AMD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이미 자체 AI 가속기로 생태계를 구축한 엔비디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엔비디아의 AI 가속기가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일·타이베이=김민지 기자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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