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황야 떠돌던 인도 라훌 간디, 10년 굴욕 끝에 복귀[피플in포커스]
"BJP가 퍼뜨리는 증오·폭력에 맞서 싸울 것"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인도 정치 명문가 네루-간디 집안의 후계자 라훌 간디 전 인도국민회의(INC) 총재가 10년간의 굴욕을 딛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최근 치러진 인도 18대 연방 하원(록 사바·Lok Sabha) 의원 선거에서 INC가 예상을 뒤엎고 선전하면서다.
4일(현지시간) 인도 현지 매체를 종합하면 선거관리위원회는 총 543개 의석 중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 중심 여당 연합인 국민민주연합(NDA)이 293석을,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가 주도하는 야권 정치연합 인도국민발전통합연합(INDIA)은 232석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했다.
지난 2019년 선거에서 단독으로 303석을 확보했던 BJP는 이번 선거에서는 240석을 얻는 데 그쳤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집권한 2014년 이후 BJP가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야권 연합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가져가며 약진했다. 5년 전 총선에서 129석을 확보한 야권 연합 INDIA는 이번에 103석이나 늘어난 232석을 얻게 됐다. INC 단독으로는 99석을 확보하며, 2019년(52석)보다 47석 더 얻었다.
AFP통신은 야권의 선전을 두고 "일반적인 정치 상황이라면 선거 굴욕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2014년과 2019년 BJP가 휩쓸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전"이라고 평가했다.
INC는 2014년 선거에서도 44석을 얻으며 282석의 BJP에 훨씬 뒤처졌다.
BJP는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연정을 꾸리거나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두되는 인물이 바로 라훌이다. 로이터통신은 "의회는 간디를 중심으로 한 야당은 의회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라훌은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의 증손자이자 인디라 간디 전 총리의 손자다. 외손자 라지브 간디와 그의 부인인 이탈리아 출신의 소냐 간디, 외증손자 라훌이 대를 이어가며 INC를 이끌었다.
네루-간디 가문은 인도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와는 다른 가문이다. 인디라 간디 전 총리(결혼 전 인디라 네루)가 남편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며 남편의 성을 따랐다.
네루-간디 가문이 3대에 걸쳐 총리를 배출하며 INC를 이끌던 라훌도 총리직에 오를지 관심이 쏠렸지만, 라훌은 2019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연거푸 선거에서 선거에서 패배하며 "라울은 정치인으로서 실패했다(Rahul is a failure)"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라훌은 BJP에 패한 굴욕을 딛고 '왕가(王家)'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단결 행진'이라는 강수를 뒀다. 인도 북부 스리나가르부터 남부 카니아쿠마리까지 6700㎞에 달하는 전국 행진으로, 풀뿌리 대중과의 연결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이다. 지난 1월부터 2달간 진행된 행진에서 라훌은 15개 주를 거치며 대중과 스킨십을 강화했다.
앞서 라훌은 지난해 1월에도 인도의 형제애, 화합, 세속주의 정신을 강화해 당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4000㎞에 이르는 국토 행진에 나섰다.
이 행진으로 가문의 압력 탓에 정계에 입문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떨쳐낼 수 있었다.
모디 총리의 집권 3기에서는 힌두 민족주의를 필두로 한 종교 탄압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온건 세속적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내세우는 INC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도는 80%의 힌두교도와 15%의 무슬림(약 1억8000만 명)으로 구성됐는데, 모디 정부는 통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무슬림을 억압해 왔다.
이 때문에 모디 총리가 권위주의 지도자로 변모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부르고 있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는 인도국민의용단(RSS)이라는 힌두교 근본주의 단체를 모체로 하는 만큼, 힌두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훌은 그간 힌두교 근본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BJP와 싸우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왔다. 그는 "나의 싸움은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RSS와 BJP의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우는 것"이라며 "이들이 퍼뜨리는 증오와 폭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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