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시’ 이민기, 10년 전 사건 관계도에 허성태·하성광도 올렸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ENA 월화드라마 '크래시'가 새로운 복선을 하나 깔았다.
3일 방영된 7회 첫머리. 10년 전 교통사고 피해자 이현수의 납골함을 찾은 차연호(이민기 분)에게 뒤늦게 당도한 이현수의 아버지 이정섭(하성광 분)이 묻는다. “저거 자네가 한 거야?” 차연호가 답한다. “아뇨. 와보니까 있던데요.” 대화 주제는 누군가 이현수 유골함에 붙여놓은 꽃 한송이다.
누굴까? 이현수의 주변엔 사람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고 남편은 양석찬(이유준 분)의 말에 따르면 당시 사고로 수술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얼마 안돼 죽었단다.
납골함을 찾는 유이한 인물은 아버지 이정섭과 가해자로 지목돼 죄책감 속에 살아온 차연호 뿐이다. 그런 판에 10년이나 지난 사망자를 기리며 꽃을 붙여둔 인물.
상당히 궁금할 법 하건만 “와보니까 있던데요.”란 차연호의 대꾸에 이정섭은 심상하게 넘어간다. 대신 “그 편지, 누가 보낸 건지 알아냈나?”라며 화제를 돌린다. 이정섭은 꽃을 붙인 이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는 걸까?
이정섭이 말한, 10년이나 지나 갑자기 날아든 편지도 그렇다. 당시 사고 관련 기사가 차연호, 이정섭을 비롯, 양재영(허지원 분), 표정욱(강기둥 분), 표명학(허정도 분), 한경수(한상조 분) 등 당시 사건 관련자들에게 빠짐없이 전달됐다. 편지 발송인은 10년 간 뭘 하고 있다가 이제야 옛 사건을 들추는가.
그리고 편지를 받은 1인 양재영이 죽었고 4일 방영된 8회에선 양재영의 죽음을 초래한 검은 승용차 ‘53사2831’이 표명학 사주로 린치에 나선 조폭들을 피해 달아나던 한경수마저 들이받는다.
이 편지는 표명학의 신경을 끊임없이 거스른다. 양석찬에게 “서울청에 들어와서 나한테까지 접근한 놈야. 경찰 쪽 인물일 가능성도 있고.. 죽은 여자애 주변에 누가 있었지?” 묻다가 이정섭을 떠올린다. “아 그래 이정섭이. 그 양반도 경찰이었지. 정채만이랑 인연도 깊고.. 내가 제일 짜증난 것이 지금 차연호가 정채만 밑에 있다는 건데..” 하며 머리를 굴리다가 양재영 사망사건을 정채만(허성태 분)에게 맡기기로 한다. 감시하기도 좋고 수틀리면 쫓아내기도 좋은 수라는 판단이다.
그렇게 서울청장 하명수사라며 정채만이 던져놓은 사건. 차연호는 양재영 살인사건이란 사실에 의구심을 갖는다. 그리고 정채만에게 배당된 이유를 묻던 중 정채만이 10년 전 자신의 사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음을 확인한다.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제 사고에 대해서.”라 물었을 때 정채만은 답한다. “알아야 할 만큼. 충분히.”
그래서 ‘가해자-목격자-목격자의 아버지’만 붙어있던 차연호집 유리창엔 추가로 피해자의 아버지 이정섭과 사건 최초 수사관 정채만의 사진까지가 붙게 된다.
그리고 정채만과 이정섭의 대화. “양재영 살해당했습니다. 형님 아셨습니까?” “중요한 건 그거 아닌가?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나? 자네도 알겠지만 세상에는 죽어 마땅한 인간도 있잖아? 자네도 그걸 원했던 것 아닌가?”
그러니 이 두 사람은 사건의 진실을 진작에 알아야 할 만큼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정섭은 양재영 사고관련 CCTV상 스틱을 짚은 절름걸음의 가해자 실루엣으로 인해 더욱 혐의가 짙어진다.
하지만 카메라는 사건을 검토하던 정채만 자리 뒤편의 등산 스틱 한 쌍과 그 위에 적힌 ‘범죄가 또 다른 범죄로 가려진다’는 경구를 의미심장하게 훑음으로써 정채만도 양재영 사건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상을 덧씌운다.
사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던 정채만의 아내 건도 미심쩍다. 당초 담당형사였던 대전 은성경찰서 교통계 소속의 정채만(허성태 분) 경위가 사고 발생 9일 후 징계받은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양재영 사건을 정채만에게 하명하며 떠든 표명학의 “혹시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나있는 건가? 그때 오해는 충분히 풀었던 거로 아는데?”란 발언도 께름칙하다.
하지만 그렇게 이 보복살인과 두 사람이 연관되어 있다 하더라도 ‘왜 이 시점인가?’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물론 이정섭에겐 납득되는 이유가 있다. 그간 아내를 돌본다는 삶의 의미가 있었지만 병상의 아내가 해를 넘길 수 없다니 복수를 서둘러 아내와 함께 세상을 마칠 생각도 했을만 하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뜬금없이 이현수의 유골함에 꽃을 붙인 누군가와 연관 있는 것은 아닐까?
양석찬은 이현수의 남편에 대해 말했다. “그때 수술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얼마 안돼 죽었다던데..” 확인된 사항이 아니라는 뉘앙스다. 그 미확인의 부고가 위장이라면?
상상해 보자. 가해자 아버지가 조폭출신 기업가로 폭력과 금력을 쥐고 있다. 그 뒷배를 경찰의 유력자가 권력으로 떠받치고 있다. 이쪽은 말단 형사 아버지만이 있을 뿐이다. 사건을 맡은 열혈 경위는 모종의 이유로 징계를 내려 9일만에 치워버렸다. 그럼에도 수사를 멈추지 않는 그 경위를 압박하기 위해 그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했다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그 날의 증인 남편도 위험하다. 미국으로 도피는 시켰지만 살아있는 자체로 표적이 될 수 있다. 위장사망만이 답이다.
그 남편은 복수를 다짐한다. 장인 이정섭에겐 복수를 기필코 제 손으로 하겠다고 우긴다. 여건은 마련됐지만 당시 사고후유증을 완전히 털진 못해 다리를 전다. 그 사위가 돌아왔을 때 장인 이정섭도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면?
이 상상엔 나름 근거도 있다. 이정섭이 처음 등장한 것은 2회다. 당시 이정섭은 이현수의 납골당을 찾았다가 벤치에 앉아 있던 차연호를 향해 스틱 없이 멀쩡히 걸어갔었다. 장애와는 무관해 보였다. 그리고 4회 예의 편지를 품고 차연호를 만나러 오면서부터 그는 스틱을 짚기 시작했다. 그렇게 추리해보면 편지 발송이 남편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장인은 혐의를 자신에게 돌릴 작정으로 사위의 걸음을 모방하고.
그리고 또 한 명의 조력자가 이태주(오의식 분)인 것은 아닐까? 어현경(문희 분)이 ‘청장 딸랑딸랑’이라 말할만큼 이태주는 오랜 시간 표명학의 측근으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서울청 표명학 자리에 당시 기사가 담긴 편지도 가져다 놓을 수 있고, 표정욱을 뒤쫓는 인물이 이정섭이라며 이정섭 쪽으로 시선을 몰아가도록 할 수 있는 위치다. 성씨까지 같으니 사실은 이정섭의 조카, 이수현의 몇 촌 오빠쯤 되는 것은 아닐까?
‘크래시’가 재미있는 것이 ‘그 날의 사건이 뭐길래?’란 이 같은 메인 추리에 회별 에피소드들이 억지스럽지 않게 녹아든다는 점이다. 보험사기살인-귀신소동부터 카캐리어 연쇄사고까지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메인스트림과 상관없이 깔끔하게 해결되면서 차량이 흉기로 돌변했을 때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여기에 이민기-곽선영-허성태 등 모든 배역들이 과해서 넘치지도, 부족해서 허전하지도 않게 제 자리를 지켜내는 연기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더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아쉬운 점 하나. 정채만이 확인하던 양재영 사고관련 CCTV엔 스틱을 짚은 누군가가 양재영의 전복된 차에 불꽃을 던지는 장면과 함께 범인이 탄 차의 뒷 넘버도 보인다. 앞자리 53 정도는 정지화면으로도 식별가능하다. 차종도 확인됐겠다 여러 기법을 사용하면 충분히 차량을 특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명학도 정채만도 외면하는 모양새라 어색했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