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4대 엔터사 어닝쇼크 그 후…
4대 엔터사 주가 급락
줄줄이 부진한 실적 거둬
증권가 목표주가 하향
K-팝 산업 위기론 휩싸여
하지만 위기론 섣부르단 의견도
하락세보단 정체기로 봐야
엔터사 위기론과 낙관론
국내 4대 엔터사가 올 1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관련 주가는 '떨어지는 칼'을 피하지 못했고, 증권사들은 줄줄이 목표가를 하향조정했다. 그러자 잘나가던 K-팝 산업도 위기론에 휩싸였다. 일부에선 '업황 고점'을 찍었으니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비관론도 설파한다. K-팝 산업은 정말 위기일까.
국내 주요 엔터사가 줄줄이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하이브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1% 감소한 3609억원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2.6% 급감해 525억원을 기록했다. SM엔터는 수익성이 악화했다. 매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7.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이 두자릿수(-14.9%) 쪼그라들었다.
JYP엔터의 실적 흐름도 비슷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6% 성장한 1365억원을 기록했는데, 영업이익은 336억원으로 20.0% 감소했다. YG엔터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5% 줄어든 873억원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회사마다 실적이 악화한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은 있다. 데뷔하거나 컴백한 아티스트의 흥행이 기대치를 밑돈 게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거다. 이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던 2023년 크게 달라진 점이다. 지난해 하이브는 매출 2조1781억원, 영업이익 2958억원을 기록하면서 엔터사 최초로 연매출 2조원을 넘었다. SM엔터와 JYP엔터도 같은 기간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찍었다.
실적이 고꾸라졌으니 주가 흐름도 형편없었다. 올 1분기 실적이 반영되는 4월부터 따져보면 4대 엔터사 주가가 모두 하락했다(6월 4일 종가 기준). 레이블 어도어와 지리멸렬한 싸움을 벌이는 탓에 주가 하락이 불가피했던 하이브(-13.04%)보다 JYP엔터의 주가 낙폭(-18.72%)이 더 컸다. SM엔터(-6.72%), YG엔터(-9.66%)도 엔터주 투자자의 눈물을 쏙 빼놨다.
전망도 밝지 않다. 증권가에선 엔터사 목표주가를 하향하고 있다. 김규연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SM엔터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SM엔터는 중국 팬덤 비중이 높아 앨범 불매의 직격탄을 맞았다"며 목표주가를 기존 11만7000원에서 9만4000원으로 크게 낮췄다. 이현지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YG엔터를 두고 "블랙핑크 활동 여부에 따라 실적과 주가 변동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7만9000원이던 목표주가를 6만2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 때문에 업계 일부에선 "한국 엔터사 성장 엔진이 멈춘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형 엔터사의 실적 흐름이 둔화하고, 투자자들이 엔터주를 팔아치우는 게 '업황 고점의 신호'라는 거다.
성장 엔진이 꺼졌다고 볼 만한 근거도 있다. 바로 앨범 판매량이다. CD플레이어가 자취를 감췄음에도 K-팝 아티스트의 실물 앨범은 큰 인기를 끌어왔다. 앨범 안에 팬사인회 응모권, 포토카드 등 다양한 굿즈를 넣은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인지 앨범 판매량은 아티스트의 인기를 가늠할 통계이자 K-팝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증명하는 지표였다. 2023년 K팝 앨범 판매량은 사상 최초로 1억장을 돌파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음악서비스 플랫폼 써클차트에 따르면 1분기 누적 앨범 판매량(상위 1~400위 합산 기준)은 1860만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8만장가량(-13.8%) 줄었다. 이는 앨범 판매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몇몇 인기 아티스트의 활동성과 연관돼 있다.
가령, YG엔터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블랙핑크인데, 올해는 블랙핑크의 활동 계획이 없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YG엔터의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평균 전망치)는 두자릿수 넘게 감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어도어와 날선 공방을 이어가는 하이브의 주가가 하락하는 핵심 이유 역시 인기 아티스트 뉴진스의 거취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한 엔터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몇몇 아티스트가 회사 실적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당장 호실적을 내더라도 미래 실적을 그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K-팝의 성장엔진은 정말 식어버린 걸까. 일부에선 K팝 산업의 위기론을 논하기엔 섣부른 시점이란 주장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은 K-팝 산업의 구조적인 하락세라기보단 BTS와 블랙핑크의 활동 부재로 인한 정체기라고 보는 게 옳다"며 "두 아티스트가 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할 때 산업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는데, 지금은 그런 이벤트가 없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부쩍 줄어든 앨범 판매량 역시 기저효과에서 기인한 '착시'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K-팝 앨범 판매량은 오프라인 활동에 제약이 걸린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가파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난 지금은 콘서트나 굿즈 등 앨범 외에도 팬 활동을 즐길 수단이 늘어나 굳이 앨범 판매량에 연연할 필요가 사라졌다.
지인해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앨범 판매량 감소가 K-팝 산업 전반의 피크아웃(정점·Peak-out)으로 과대해석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제는 앨범과 함께 음원·콘서트·굿즈 등 2차 부가수익의 매출 확장성을 본격적으로 확인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인기 아티스트에 의존하는 경향 역시 멀티레이블 시스템이 좀 더 안착하면 풀어낼 수 있을 것이란 낙관론도 적지 않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대형 엔터사들이 멀티레이블 시스템에 이제 막 시동을 걸었고 지금은 시장에 안착해가는 단계"라면서 "여러 인기 아티스트의 데뷔와 컴백이 선순환 구조를 띠면 특정 아티스트에만 의존하는 리스크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환욱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주요 아티스트들이 컴백할 예정"이라며 "글로벌 음원 지표가 현재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있어 하반기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 미칠 것"이라 전망했다. 과연 엔터주는 1분기 부진의 흐름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하이브-어도어에서 시작된 K-팝 위기론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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