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찾은 작가들 "나 스스로를 유배하고 싶었다"
화순 능주역, 조광조 유허지 등 일대 답사
남도 땅 역사문화 숨결 호흡하며 작품구상
낯선 곳에서 새로운 문학의 돌파구 모색
녹음 짙은 초여름, 경전선 철길이 길게 뻗은 화순 능주역에 방문객 몇 명이 나타났습니다.
하루 왕복 5차례 시속 60㎞ 느린 디젤기차가 지나는 이곳은 승객은 거의 없고, 간간이 관광객들이 찾아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역사(驛舍)를 둘러보고 가곤합니다.
◇ 화순 한천서 전원생활, 박노식 시인과 조우
3명의 입주작가들은 6월 말까지 두 달간 백련재에 머물면서 각자 구상한 작품을 완성해가는 중입니다.
취재진은 박노식 시인을 포함한 4명의 문인과 함께 능주 일대를 둘러보며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대구에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에 사는 박희정 시조시인에게 '왜 남도에 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서울에서 가장 먼 해남 땅끝에 스스로를 유배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낙향한 고산 윤선도가 그랬듯 지리적 고립감 속에서 새로운 문학의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시도를 감행한 것입니다.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박희정 시조시인은 시집 『길은 다시 반전이다』 『들꽃사전』 『마냥 붉다』(현대시조 100인선), 시 에세이집 『우리 시대 시인을 찾아서』가 있습니다.
그녀는 해남에 내려온 이후 남도 곳곳을 두루 살펴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대흥사, 미황사 등 사찰은 물론 고정희, 김남주 시인 생가와 고천암, 완도 수목원, 진도 등 명소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습니다.
◇ 김만일 첨사 일대기 집필중..여수 방답진성 답사
1987년 『월간문학』을 통해 희곡작가로 등단했고, 저서로 희곡집 『폭풍의 바다』 등 5권과 장편소설 『붓다, 유혹하다』 『사우다드』 등이 있습니다.
강 작가는 현재 말(馬)을 소재로 장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만일 첨사로 조선시대에 수천 마리의 말을 나라에 바친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헌마공신'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습니다.
강준 소설가는 김만일 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이 소설을 집필 중이며, 김만일 첨사가 근무했던 여수 방답진을 비롯 해남 이진, 강진 마량 등을 답사했습니다.
강준 작가는 "김만일은 여수 흥국사에서 위인을 만나 말(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제주도에 건너가 본격적으로 말을 기르기 시작했다"며 "말을 용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길러내 큰 공을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제주도에서 말을 싣고 왕래한 배들이 부려놓은 제주 화산돌이 지금도 전라도 포구 주변에 돌담 등으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 "사직동 통기타거리 뮤지션들의 애환 그려"
젊은 시절부터 작가를 꿈꾸었으나 자녀 양육과 카페 운영 때문에 미뤄오다가 예순살 되던 해에 비로소 소망을 이뤘습니다.
그녀는 등단하자마자 원고청탁이 쇄도해 단편소설 6편을 써내는 왕성한 필력을 발휘했는데, 최근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는 행운까지 얻게 됐습니다.
채정 작가는 광주 사직동 통기타거리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음악애호가이기도 한 그녀는 "사직공원 비탈길에 늘어선 7개 주점에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이야기들과 뮤지션들의 애환을 연작 형태로 담아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3명의 작가 방문을 맞아 능주역과 조광조 유허지를 안내한 박노식 시인은 "남도 땅에 스며있는 역사문화를 논하며 서로 문학적 교감을 나눌 수 있어서 뜻깊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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