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세상 그리운 이를 AI로 만난다면”… 김태용·탕웨이부부가 함께한 상상[영화 ‘원더랜드’]
5일 개봉하는 영화 ‘원더랜드’의 시작은 8년 전인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김태용 감독이 아내인 배우 탕웨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운 사람을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해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대화하면 어떨까?” 부부는 함께 고민했다. 좋을까, 나쁠까. 옳은 걸까, 그른 걸까. 사람과 사람처럼 변함없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자 김 감독은 한번 영화로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세상을 떠난 연인이나 가족을 AI로 복원해 동명의 영상통화 서비스로 만난다는 내용의 ‘원더랜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만추’ 이후 김 감독이 1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자, 두 사람이 결혼 후 함께한 첫 영화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카페에서 다르지만 닮아가는 둘을 만났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실제처럼 다가갔으면
아내와 함께한다는 점 영화속 ‘원더랜드’ 같아
‘원더랜드’ 속 AI와 인간 간 만남의 매개체로 영상통화를 선택한 데는 부부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김태용 감독은 “우리(가족)는 영상통화를 자주 한다. 통화할 땐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끊고 나선 쓸쓸한 감정이 들면서, ‘이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며 “실제와 가상이 헷갈리면 관계도 헷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전했다.
‘원더랜드’ 시스템은 죽음이란 공포를 회피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욕망을 충족한다.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아서 죽는다는 게 뭘지 궁금했다”는 김 감독은 “그리움이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애는 방향으로 AI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이번 영화를 위해 AI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수차례 의견을 공유했다. 그렇지만 영화엔 과학기술에 대한 설명이 극히 적다. 김 감독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무맹랑한 가상의 이야기지만, 인물들과 그들의 고민이 실제인 것처럼 관객에게 다가가면 기쁠 것 같아요.”
김 감독의 대표작인 ‘가족의 탄생’의 과학소설(SF) 버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관계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두 작품은 유사하다. 그는 “‘가족의 탄생’이 다양한 사례로 가족의 개념이 확장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영화는 AI가 개입된 다양한 상황에서 관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고 설명했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과 배우였던 김 감독과 탕웨이는 집에선 남편과 아내로 돌아갔다. 김 감독은 “좋아하는 사람과 떨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원더랜드’ 같았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서로 이해하고 지지해준다는 점에서 좋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아내 탕웨이와 또 영화를 찍고 싶을까. 그는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며 “항상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답했다. “가족관계라고 캐스팅이 쉬운 건 아니었어요. 작품 선택은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배우로서 하는 거니까요. 다만 저는 매번 제안하고 싶고,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金, 내 안의 숨겨진 모습 끄집어내 캐릭터 완성
남편과 공통관심사 가져… 또 함께 작업하고파
‘원더랜드’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한다. 사고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태주(박보검)를 AI로 생성해 일상을 함께하는 정인(배수지), 원더랜드 서비스를 관리하는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어린 딸 지아(여가원)와 노모(니나 파우)의 곁에 있고자 원더랜드행을 선택한 바이리(탕웨이)가 주인공이다.
탕웨이는 캐스팅되기 전부터 영화와 자신이 연기한 바이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감독님이 내가 실험 대상인 것처럼 계속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바이리의 어렸을 적 꿈이 뭐였을 것 같아?’ ‘바이리가 이때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같은 질문도 하고, 심지어 그리운 사람을 얘기하다가 우는 내 모습을 녹화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감독님이 제 안에서 뭔가를 계속 끄집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엔 이렇게 생각했죠. 그래, 계속 파내세요. 감독님.”
그래서 바이리와 탕웨이는 많이 닮았다. 고고학자란 꿈, 하려는 일에 용감하게 부딪치는 태도, 그리고 외동딸을 키우는 엄마인 동시에 노모의 하나뿐인 딸이란 설정까지 실제 탕웨이와 같다.
탕웨이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 지점은 아이의 탄생”이라며 “아이가 태어나면서 세계와 일에 대한 시각이 변했고,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힘이 굉장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딸 썸머가 태어난 2016년은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시작됐던 해이기도 하다. 바이리는 처음엔 어린 딸을 위해 ‘원더랜드’를 신청하지만, 종국엔 남겨진 노모에 대한 미안함과 위로의 감정을 느낀다. 영화에선 모녀 3대가 물리적으로 단절돼 있었지만 현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각자 촬영할 때도 저희 셋은 늘 함께 있었어요.” 그는 딸 역할인 여가원과 함께 살다시피 했다.
탕웨이는 남편 김태용과 또 영화를 찍고 싶을까. “거절은 불가능하다”고 웃으며 그녀는 “나 역시 환영”이라고 말했다. 탕웨이는 “그분의 사고, 그분의 생각이 나와 굉장히 잘 맞는다”면서 “우리는 늘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끔은 제가 생각하고 싶은 주제를 그분에게 던지면, 그분은 그 생각을 더해주고, 발전시켜서 얘기해줍니다. 저는 생각하는 거 좋아하지 않거든요. 행운입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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