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위한 노사정 대화… 근로기준법, 5인미만 사업장 확대가 핵심”[현안 인터뷰]

정철순 기자 2024. 6. 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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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자영업자 힘들어지는 건 모순
노동계도 양보할 건 양보해야
영세 회사엔 어려운 육아휴직
비정규직 등에도 의무화해야
개별기업 아닌 정부가 나서야
노동시장 이중구조 탓 저출산
고용의 경직성 완화가 최우선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5월 30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위원장실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 등 노동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재개된 지난 5월 30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만난 김문수 위원장은 노동개혁의 목적을 두고 “약자 보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저출생 사회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노동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개혁은 근로시간·임금 등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을 조정하는 것인 만큼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은 더 어렵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9·15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냈지만, 이후 노정 갈등이 이어지며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사정 대화 또한 여소야대 정치 지형과 강경한 노동계 입장 등으로 전망이 밝지 않다. 김 위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인터뷰 과정에서 ‘인내’에 기반한 대화와 당위를 주로 앞세웠다.

―진통 끝에 두 달 만에 사회적 대화가 재개됐다. 노사정을 한데 모으기 어렵다는 것이 느껴진다.

“일단 대화가 재개됐으니 잘됐다고 해야겠다. 문제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정말 가다가 서다가 하면 ‘해가 지기 전’까지 목적지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경제는 감속 성장이고 젊은이들은 결혼·출산·인생 포기까지 하고 있는데, 우리 경제·사회의 해가 지기 전에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이뤄야 한다. 대화란 것이 굉장히 복잡하다. 인내심과 상대에 대한 이해·배려가 있어야만 풍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기주장만 하고 구호만 갖고서는 대화를 할 수 없다. 모든 의제를 테이블에 올리기 전에 의제의 성격과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대화가 지속될 수 있다.”

―지속적인 대화를 위한 경사노위의 역할은 무엇인가.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위원회가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은 ‘공정한 대화의 장(場)’이라는 믿음을 노동계에 심어주는 노력이다. 다만 한국노총에는 경사노위 참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책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경사노위가 기본적으로 ‘노동계를 위한 대화 플랫폼’임에도 불구하고 불참한다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국노총이 앞으로도 대화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대화가 안 되면 더 대화한다’는 심정으로 어떤 경우에도 대화를 계속하길 바란다.”

―이번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는 무엇이 달라지나.

“이번 노사정 대화의 목적은 약자 보호다.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 세계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를 법 적용 예외로 두는 곳이 얼마나 있나.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약자 보호’ 관점에서 이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를 노사정이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자영업이 어려워져 폐업할 수 있고 현장에선 모순이 일어난다. 결국 노사가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데, 노동계도 5인 미만 근로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혹은 주휴수당 등 양보할 것은 내놔야 한다. 비슷한 예로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정년 연장 등 노동계 요구 사항이 많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피해를 보는 것이 영세 자영업자들이고, 우리 사회 내수 업종이다. 노동계의 요구 사항과 경영계의 요구 사항을 두고 대화를 해야 한다.”

―수년 전부터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이 저출생인데, 경사노위에서도 관련해 논의할 수 있나.

“노사정이 비정규직·중소기업·무노조 근로자의 모성보호제도를 경사노위에서 논의해 봐야 한다. 이들은 정규직·대기업·유노조 근로자에 비해 출산 전후 휴가나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제도 활용도가 낮다. 영세 기업은 지불 여력이 없어서다. 영세 기업이 대기업처럼 근로자들을 지원해 주기 어려운데 이제는 개별 기업이 아닌 정부가 나서야 할 시점이 됐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와 육아휴직 등은 경영계의 여건을 고려하면서 제도의 의무화를 최대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부·공공기관이 바뀌고, 민간 기업 또한 출산·육아 여건을 만들 수 있게 정부가 최대한 제도·세제 지원을 해야 한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도 노사정 대화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노동계는 휴식권을 주장하고 있다.

“근로시간 개편은 노사정 모두 매우 민감한 의제다. 다만, 근로시간 개편 논의는 ‘주 52시간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노사가 원하고 노동자의 건강권(휴식권)을 해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전제조건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근로시간 개편안과 관련해 정부는 지난해 3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가 여론 반발이 컸다. 이후 같은 해 11월 노사 및 국민 6000여 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면접조사를 했고 필요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휴식권 문제만 합리적으로 정리되면 긍정적인 논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노사정이 근로시간과 관련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할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계는 정년 연장을, 경영계는 연속고용을 주장한다. 한국에 맞는 해법이 있다면.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동력 손실과 잠재성장률 저하, 노년부양비 급증으로 국가재정 부담 등 심각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중·고령자들의 고용을 연장할 필요성은 있지만, 법적인 정년연장이 노동시장에서 청년고용과의 충돌과 기업부담 등 부작용이 적지 않은 만큼 노사정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노동 현안 중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결국 출산과 연결되며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인데.

“저출생 원인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기저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있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고용 안정성과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출산은 너무나 먼 이야기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정규직을 향한 무한경쟁이 사교육 경쟁과 수도권 집중, 주택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지며 저출생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결국 합리적 차이가 아닌 불공정한 이중구조, 한번 ‘비정규직이면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경직된 노동시장은 개혁의 최우선 과제다.”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중소기업에 줄 수도 없는 것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질적 문제인 만큼 노사정이 모두 힘을 모아 하나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대·중소기업 노사, 원하청 노사가 참여하는 상생협의 모델을 발굴하여 확산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원청 노조의 임금인상 자제와 사용자의 매칭, 정부의 세제지원을 모아 중소기업과 하청 노사의 처우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최대한 적용할 수 있는 방안과 프리랜서·플랫폼 노무 종사자 등 노동법 보호 밖에 있는 종사자들의 처우 및 사회안전망을 보장하는 방안을 노사정이 함께 모색해야 한다. 위원회 특위가 발족된 만큼 노사정 간 대화를 통해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에는 법치 중심의 노동개혁을 강조했고, 올해는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관계 법치주의’를 산업 현장에 확립했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시대에 맞지 않는 노동법 제도개선’ 등 남은 개혁과제는 노사정이 참여한 사회적 대화로 풀기로 방향을 정하고 지난 2월 6일 노사정이 모여 1개의 특별위원회와 2개의 의제별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합의했다. 남은 개혁과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 바로 법치 중심의 노동개혁에서 협치를 통한 노동개혁으로 확대된 것으로 봐야 한다.”

―협치를 한다면 노동계와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노사정 모두 중요한 주체지만, 특히 노동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노동계와의 소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취임 후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노사정 대화가 시작되면 의제들이 대부분 이해관계가 첨예한 만큼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대표자급 대화와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면 최대한 조율하여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경사노위 외에도 지난해에는 정부 주도 노동개혁을 추진했었다. 일각에선 국회에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넘기자는 의견도 있다.

“정부를 통한 노동개혁은 노사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특히 여소야대 상황에선 입법 동력을 확보하지 못해 좌초될 수 있다. 국회를 통한 노동개혁은 논의가 진영논리에 빠지거나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돼 역시 현장과 괴리된 결론에 도달할 우려가 있다. 결국 가장 최선의 방법은 이해당사자인 노사가 참여해 충분한 대화와 대타협을 통해 국민이 지지하고 공감할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의 정책 수립과 국회의 입법을 위한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노동 현장에서도 활동했고 국회의원과 도지사 경험이 있는데,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약 2년 동안 사회적 대화를 해본 소감은.

“국회나 경기지사 시절과 달리 위원회는 위원장인 제 의지대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노사정 주체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한곳으로 모아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위원회가 노력하면 ‘낮은 곳의 노동자들, 영세 상공인, 중소기업 사장님’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국민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드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어렵더라도 최선을 다해 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 특별위원회와 의제별위원회 2개 등을 발족시키고 국민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여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 金 위원장은…

재산보다 많은 민주화운동 보상금 거부… “나라를 위해 한 것, 그 돈 왜 받나”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3선 국회의원(15·16·17대)과 재선 경기지사(32·33대) 등 화려한 정치 이력으로 많이 소개되지만, 그가 재산보다 많은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거부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김 위원장은 5월 3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 보상금 수령 거부와 관련 “젊은 시절에 나라를 위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인데, 그 돈을 왜 받냐”고 잘라 말했다.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처와 딸 모두 돈과 관련된 일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 관악구 구축 아파트에 거주 중이며, 재산은 약 4억 원대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측은 “민주화운동 보상금이 10년 전 기준 수억 원으로, 수령을 하지 않아도 이자가 쌓여 지금은 더 늘어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의 민주화운동 보상금은 순위권에 속하는데 두 차례 제적과 투옥을 겪은 이력의 방증이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서울대에서 제적된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해 청계천 피복공장 재단 보조공으로 일했고 1978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19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또한 1986년에는 서울지역 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으로 인천시 5·3직선제 개헌 투쟁 주도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8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런 이력으로 그에겐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란 칭호도 뒤따른다. 노동운동을 하며 열관리 기능사와 위험물 취급 기능사 등 9개의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정치권에 들어온 후 1996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부천소사에서 야당 실세인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고, 같은 지역구에서 3선 의원이 됐다. 또한 2006·2010년 지방선거에서 내리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경북 영천 출생(1951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민중당 노동위원장 △한나라당 부총무 △15·16·17대 국회의원 △32·33대 경기지사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경사노위 위원장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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