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주역 맡은 이정재...한국 배우 '찍어서 모시러' 오는 할리우드

양승준 2024. 6.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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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한국 배우 영·미 시장 진출 공식]
① '디 애콜라이트' 제다이 마스터 이정재 
이민자 등 주변인 아닌 우주평화 지키는 기사로 
서구 주류 세계관 진입, 문화 다양성 확대
② 손종학, 이상희 등 조연들도 해외로 
해외 진출은 한류 스타만?...이젠 아니다 
아시아계 창작자 주목받으며 파격 캐스팅 
높아진 K콘텐츠 위상, 시청자 관심 상승
"누군가 제다이 죽여" 이정재 인종차별 타깃 
"기득권 잃기 싫어하는 백인들의 엉뚱한 반발"
공상과학 미국 드라마 '디 애콜라이트'에서 이정재(오른쪽)는 우주의 평화를 지키는 기사 제다이의 스승을 연기한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제다이의 무기를 들었지만, 넌 제다이가 아냐."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에서 5일 공개되는 '스타워즈' 시리즈 '디 애콜라이트'의 예고 영상 속 이정재의 영어 대사다. 대사를 하면서 이정재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상징인 '라이트 세이버(광선검)'를 휘두른다.

'디 애콜라이트'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장 앞선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1999)보다 100년 앞선 시대를 배경으로 우주 평화를 지키는 기사인 제다이의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다. 이정재는 제다이들의 스승인 마스터 제다이 솔 역을 맡아 사건을 추적한다. 47년 전통의 할리우드 '스타워즈' 시리즈에 한국 배우가 주요 배역으로 출연한 건 처음이다.

드라마 '디 애콜라이트'에서 이정재(왼쪽 세 번째)가 광선검을 잡고 있다. 극에서 그는 제다이의 스승을 연기한다. 이 드라마는 '스타워즈' 시리즈 일환이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이정재가 1년 동안 피부과 약 달고 산 이유

이정재의 파격 캐스팅은 '디 애콜라이트'를 연출한 레슬리 헤드랜드 감독을 통해 성사됐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021)에서 다양한 감정을 극적으로 표출한 이정재를 인상 깊게 본 뒤 '스타워즈' 제작사인 루카스필름에 솔 역으로 그를 추천했다. 오디션 제안을 받은 이정재는 영국으로 갔다. 촬영 세트에서 마스터 제다이처럼 분장한 뒤 드라마 속 한 장면을 연기했다. 그가 '스타워즈' 새 시리즈의 '얼굴'로 발탁된 과정이다. 이정재는 "초등학교 때 담벼락에 붙어 있던 '스타워즈' 포스터를 보고 너무 궁금했다"며 "극장을 쉬 가기 어려웠던 때라 기다리고 기다리다 TV로 처음 봤을 때 그 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몰입해서 봤는데, 그 작품에 내가 나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정재의 도전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는 "입안이 헐 정도로" 영어 발음 연습에 매달렸다. 두 달 동안 무술 훈련도 받았다. 그는 지난달 미국 NBC 토크쇼 '켈리 클락슨쇼'에 출연해 "불이 들어오는 광선검과 불이 들어오지 않는 광선검을 따로 들고 오전, 오후에 각기 다른 액션 훈련을 받았다"며 "불이 들어오는 광선으로 연기하면 이상하게 입으로 '붕붕붕~'이라고 소리를 내게 되더라"고 촬영 뒷얘기를 들려줬다. 10개월여 동안 이어진 해외 촬영은 그에게도 부담이었다. 그는 "언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 부작용이 몸으로 오더라"며 "얼굴이 붓고 뾰루지가 생겨 1년 동안 피부과 약을 달고 살았다"고 고충도 털어놨다.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파친코'(2022·애플TV플러스 제작)와 영화 '미나리'(2021·A24)에서 한국 배우들은 주로 '착한 이민자'로 그려졌다. 이정재가 미국의 건국 신화에 비유되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①한국 배우가 미국 대중문화 주류 세계관을 파고들었고 ②백인 중심의 영미권 콘텐츠 제작 시장에서 다양성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그레이스 카오 미국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정재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 건 영미권 시청자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바라봤다.

배우 이상희(왼쪽 아래)가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리쿠르트' 시즌2를 촬영하며 외국 배우들과 찍은 사진. 이상희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글로벌 OTT 드라마와 미국 영화, 영국 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배우 김태희(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순)와 신승환, 손종학, 김영아. 스토리제이컴퍼니, 에코글로벌그룹, JTBC 영상 캡처 등
국내 서비스 안 되는 글로벌 OTT 드라마에 한국 배우 7명

이정재를 필두로 한국 스타들의 영미 콘텐츠 시장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촬영을 시작한 글로벌 OTT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새 시리즈 '버터플라이'엔 김태희, 박해수, 성동일, 김지훈, 이일화 등 한국 배우들이 여럿 출연한다. 국내에 서비스되지 않는 글로벌 OTT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대거 등장하기는 이례적이다.

이병헌과 가수 겸 배우 비, 박서준 등 한류 스타 중심으로 이뤄졌던 영미권 콘텐츠 시장 진출은 조연 배우들이 줄줄이 캐스팅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중견 배우 손종학은 오는 11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가 미국 영화 '24 아워 소나타'를 찍는다. 누아르 장르 영화에서 그는 세계 범죄 조직과 네트워크를 지닌 인물로 나온다. 미국인인 르바 레오 감독은 지난 1월 한국으로 와 손종학을 만난 뒤 그의 캐스팅을 확정했다. 손종학 소속사 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감독이 손종학이 나온 드라마 '미생'(2014)까지 찾아봤고 연기뿐 아니라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 등을 눈여겨봤다더라"고 전했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에서 정신 병동 간호사로, 영화 '로기완'(2024)에서 조선족 역을 맡아 '신스틸러'로 주목받은 이상희는 지난 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더 리쿠르트' 시즌2 촬영을 진행했다. 소속사 눈꽃컴퍼니 관계자는 "영미권 콘텐츠 시장에서 오디션 제안이 들어오기는 처음"이라며 "오디션을 본 뒤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3월 촬영을 마쳤다"고 말했다. 배우 신승환과 임주환은 지난해 말 영국 런던에서 현지 제작사 펄스필름이 기획한 드라마 '갱스 오브 런던' 시즌3를 촬했다.

이런 흐름은 세계 콘텐츠 소비자 인식 및 산업 변화와 맞물려 있다. 문화 다양성 요구가 커지면서 아시아계 창작자들이 주목받고 그 과정에서 다양성을 앞세운 이야기 발굴과 틀을 깬 캐스팅이 이뤄졌다. 김태희 등 한국 배우 6명이 출연하는 '버터플라이'와 '갱스 오브 런던' 시즌3는 모두 아시아계 감독들이 연출한다. 격변의 시기에 K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 조연 배우들이 영미권 콘텐츠 시장에 설 자리가 늘어난 것이다. 20~60대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의 한 대표는 "요즘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제작되는 드라마와 영화 편수가 코로나19 팬데믹 때와 비교해 확 줄었다"며 "영미권 프로젝트를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재가 등장한 미국 드라마 '디 애콜라이트' 예고 영상에 달린 댓글. '누군가 제다이를 죽이고 있다. 그건 디즈니'란 내용이다. 유색인종 배우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다이 역을 맡은 것에 대한 인종차별적 반응이란 지적이다. 유튜브 캡처
이정재, 인종차별 타깃..."진정한 스타워즈 팬 아냐"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이 잇따르면서 한국 배우들은 홍역도 치르고 있다. 이정재는 인종차별의 타깃이 됐다. '디 애콜라이트' 예고 영상엔 "누군가가 제다이를 죽이고 있다. 그것은 디즈니"라는 댓글이 달려 4일 기준 3만3,0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드라마 속 설정을 빗대 '백인 남성이 아닌 유색인종이 '스타워즈' 시리즈 주요 배역을 맡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회적으로 비꼰 것으로 해석됐다. 잡음이 커지자 헤드랜드 감독은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차별, 혐오 발언을 하는 이들은 진정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이메일로 만난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정재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다이가 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에 대한 호응은 백인 남성이 제다이 역을 맡았던 과거에 대한 집착"이라며 "사회에서 주류 권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백인들의 불안이 유색 인종들의 권력이 커지는 데 대한 반발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간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다이 역은 고 알렉 기네스, 마크 해밀, 리엄 니슨, 이완 맥그리거 등 대부분 백인 남성 배우들이 연기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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