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in] 전세 사기 피해자, 보증금 보증 취소한 HUG에 줄소송
'보증보험'이냐 '제삼자를 위한 계약'이냐가 쟁점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지난해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사건이 난립하던 중 부산에서도 100억원대 전세 사기 사건이 불거졌다.
임대인 감모(40대)씨가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른바 '깡통주택' 190채를 이용해 임차인 149명에게 보증금 183억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사건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감씨는 부채와 보증금 합계가 건물 가치를 초과해 주택보증에 가입하기 어려워지자 보증금 액수를 줄인 위조한 계약서 36장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제출해 보증보험에 가입했다.
HUG의 보증서를 믿고 감씨와 전세 계약을 체결했거나 갱신한 임차인들은 지난해 8월 '날벼락'을 맞았다.
HUG가 "우리도 감씨에게 속았다"며 보증 계약을 취소했고, 임차인에게도 "보증금을 대신 줄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임차인들은 감씨에 대한 형사 사건을 진행하면서 HUG와 감씨를 상대로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줄소송을 제기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관련된 소송은 모두 15건이다.
이들 소송은 1심에 계류돼있고, 1∼2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1심 판결서 임차인 승소
총 15건의 소송 중 지난달 28일 가장 처음으로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첫 판결이 나왔다.
임차인 중 1명이 감씨와 HUG를 상태로 보증금 1억4천5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이었다.
결과는 임차인의 승리.
민사6단독 최지경 판사는 임대인과 HUG가 공동으로 전세보증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판결의 쟁점은 '보증 계약'의 법적 성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임차인 측은 해당 계약이 '보증 보험'이라고 주장했고, HUG는 '제삼자를 위한 계약'이라고 맞섰다.
임차인의 주장대로 '보증보험'이라면 1999년 선고된 대법원 판례에 따라 보증보험증권을 받은 뒤 계약을 체결하거나, 새로운 이해관계를 만들었으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반면 HUG의 주장대로 '제삼자를 위한 계약'이라면 임차인은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것에 해당하지 않아 계약이 무효화 될 경우 보호받지 못한다.
양측의 입장을 들은 법원은 임차인 측이 주장한 대로 '보증보험'과 법적 성질이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HUG에도 보증금 지급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HUG는 "임대보증금 보증의 법정 성질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없어서 상급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며 지난 3일 항소를 제기했다.
나머지 사건에도 영향 줄까
첫 승소 판결이 나머지 14건에도 모두 영향을 줄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감씨에게 동일한 피해를 입었지만 계약기간 도래나 계약 갱신, 보증기간 등 구체적 사실관계는 사안마다 조금씩 달라 동일한 법 논리가 모두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도 "유사 소송들에 대해서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이다.
피해자들은 항소를 철회하고 조속히 보증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한다.
1심에서 승소한 임차인 A씨는 "1심 판결을 받기까지 아내와 죽을힘을 다해 버텨왔다"면서 "승소 판결을 받고 아내와 목 놓아 울면서 기뻐했는데, 항소 소식으로 인해 상실감과 엄청난 무력감에 빠졌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을 한 판사와, 그 판결에 인용된 대법원 판사들의 판단을 부정하는 결정"이라면서 "이번 판결에는 HUG가 더욱더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라는 뜻도 포함돼 있는데 왜 HUG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도 HUG가 이제는 업무상 과실을 인정할 때라고 주장했다.
부산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보증금을 변제하는 상품을 취급하는 기관이 임대차계약서 위조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업무이지만 이를 소홀히 했다"면서 "위조된 임대차계약서를 제출받고도 불과 이틀 만에 심사를 완료하고 보증서를 내준 뒤 수개월이 지나 취소 통보를 하는 심사 과정의 허술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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