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남부 국경 불법 입국자 망명 제한할 것”···유엔 “가혹한 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분간 남부 국경을 통해 불법 입국한 이민자에게 망명을 허용하지 않는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오는 11월 대선의 주요 의제인 국경 문제와 관련해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 연설에서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입국한 뒤 망명을 신청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남부 국경을 넘어온 사람은 망명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망명은 가능하다면서 “허가 없이 불법으로 미국에 오는 길을 택한 사람들은 망명과 미국 체류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 조치는 우리가 국경을 통제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며 “불법 입국자 수가 우리 시스템이 실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들 때까지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는 이민자를 악마화하지 않고, 이민자에 의한 ‘혈통 오염’을 거론하지 않을 것이며, (불법 입국한) 아이를 가족으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국을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자신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망명 허용 결정과 망명 불허 시 추방에 걸리는 시간을 최근 단축했다면서 최근 대선이 끝난 멕시코의 차기 정부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당국자는 7일간 남부 국경에서 체포된 불법 입국자 수가 하루 평균 2500명을 넘을 때 조치가 시행되며, 하루 평균 1500명 아래로 떨어지면 2주 후 중단된다고 별도 브리핑에서 전했다. 동반자가 없는 어린이, 인신매매 피해자 등에 대해서는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
AP통신은 이미 남부 국경에서 불법 입국으로 체포되는 사람 수가 2500명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즉각 시행될 것이라고 썼다.
오는 27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선 TV 토론을 앞두고 나온 이번 조처는 바이든 대통령의 승부수로 해석된다. 지난해 말 한때 하루 1만명 이상에 달하며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았던 불법 이민자 문제가 11월 대선 핵심 이슈로 부상하며 수세에 몰리자 강경책을 빼든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해오던 진보층 일부에선 이번 조치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외국인 망명 제한 조치에 맞섰던 ‘아메리칸시민자유협회’의 리 갤런트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라며 “망명 금지는 트럼프가 그것을 시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법”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표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4년 가까운 실패 끝에 바이든은 마침내 국경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하려는 척하고 있다”며 “이것은 모두 ‘쇼’”라고 썼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발표에 유엔은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성명에서 “(이번 조치는) 미국 내 망명 신청 권리에 가혹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라며 “새 조치는 국제적인 보호가 필요하고, 안전을 찾기 위한 실행 가능한 선택지가 없으며 심지어 송환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많은 이들의 망명 접근을 거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출신 국가에서 박해받으리라는 근거가 충분한 사람은 추방 등의 대상이 되기 전에 안전한 지역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박해 우려) 주장은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며 “우리는 미국이 국제 의무를 유지하고, 망명 신청 기본권을 해치는 제한을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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