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가난한 게 당연해?"…유럽 청년들 '극우'로 돌아선 이유

송지유 기자 2024. 6. 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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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현 정권 심판 원하는 젊은이들…
"정치 무관심→극우 지지"가 몰고온 변화,
6~9일 열릴 유럽의회 선거 '극우 열풍'
최근 프랑스에선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28) 대표의 인기가 대단하다. 젊고 친근한 매력으로 120만명의 틱톡 팔로워를 보유한 바르델라가 참석하는 집회에는 수천명의 구름 군중이 몰리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20대 초반의 젊은 층이다. /AFPBBNews=뉴스1

# '고향이 미래다'라는 문구가 적힌 후드티를 즐겨 입는 에릭 리브굿(18)은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의 열혈 지지자다. 독일 중부의 한 소도시에서 프린터 견습생으로 일하는 10대가 극우 정치권에 마음을 빼앗긴 배경에는 반이민정책이 있다. 최근 급증한 불법 이민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리브굿의 생각. 그는 "독일에서 불법 이민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경을 폐쇄해 불법 이민을 차단하자는 공약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 최근 프랑스에선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28) 대표의 인기가 대단하다. 젊고 친근한 매력으로 120만명의 틱톡 팔로워를 보유한 바르델라가 참석하는 집회에는 수천명의 구름 군중이 몰리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20대 초반의 젊은 층이다. 마약상이 들끓는 우범지대의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나 16세에 '국민연합'에 입당, 20대 중반 당 대표 자리를 꿰찬 그의 독특한 이력에 박수를 보내고 연금개혁 반대, 이민 반대 등 공약에 힘을 싣고 있다.

오는 6~9일 제10대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10~30대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극우 열풍'이 일고 있다. 그동안 정치에 아예 무관심하거나 특정정당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젊은 층이 목소리를 내면서 수십년간 이어진 '중도' 정당 중심의 유럽 정치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극우, 좋아요"…10~30대 지지율 30% 넘어선 프랑스
그래픽=이지혜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3월 여론조사기업 포컬데이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18~24세 유권자의 35.8%가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을 지지했다. 25~34세의 '국민연합' 지지율은 39.1%에 달한다. 젊은 유권자 10명 중 3~4명은 극우 정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도 18~34세 젊은 유권자의 30% 이상이 극우정당인 '자유당'(PVV)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극우 성향인 스웨덴의 '스웨덴민주당'(SD)은 20% 안팎, 이탈리아의 '이탈리아형제들'(Fdl)과 독일의 '독일을위한대안' 등은 각각 15% 안팎의 지지율을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실시한 최근 조사에선 14~29세 독일인의 22%가 '독일을위한대안'을 지지한다는 집계도 나왔다. 이는 지난해 12%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외신들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제3그룹이 바뀔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유럽의회에선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중도 성향 정치그룹(철학이 맞는 각국 정당들의 모임) 3곳(유럽국민당(EPP)·사회민주진보동맹(S&D)·리뉴유럽(RE))이 협력해 법안을 통과시켜 왔는데 젊은 지지층을 등에 업은 극우그룹이 약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 번째로 의석이 많은 중도 정치그룹인 '리뉴유럽'이 쪼그라들어 '정체성과민주주의'(ID), '유럽보수와개혁'(ECR) 등 극우 정당에 자리를 내 줄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임종철
'중도'였던 유럽 청년들, 왜 '극우'가 됐나
40대 이상 기성세대의 선택지로 여겨졌던 극우 정당으로 젊은 세대가 몰리는 요인은 인플레이션으로 망가진 경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불안한 안보, 끝없이 밀려드는 불법이민,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는 지속적인 기후 위기 등이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오른쪽)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AFPBBNews=뉴스1
40대 이상 기성세대의 선택지로 여겨졌던 극우 정당으로 젊은 세대가 몰리는 요인은 인플레이션으로 망가진 경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불안한 안보, 끝없이 밀려드는 불법이민,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는 지속적인 기후 위기 등이 있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유럽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이끌었다는 해석이다. 극우 정당들이 불법이민 차단, 연금개혁 반대,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등 구체적인 공약을 내건 것도 젊은 유권자들을 잡는 데 주효했다.

FT·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도 높은 생활비와 불법 이민, 에너지 위기 등에 좌절한 유권자들이 주류 정당을 넘어선 대안을 모색하면서 극우 정당이 득세한다고 봤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 30대 미만 독일 젊은이들은 인플레이션(65%), 비싼 집값(54%), 노후 빈곤(48%), 사회 분열(49%), 불법이민 및 난민 증가(41%) 등이 걱정된다고 답했다.

극우당인 '국민연합'을 지지한다는 프랑스의 한 대학생은 "집값은 물론이고 매일 먹어야 하는 빵과 치즈, 버터까지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며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보다 당장 프랑스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을위한대안'을 지지하는 독일의 한 20대 직장인은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것이 왜 당연하냐"며 "연금·기후·난민 등 막대한 비용을 젊은 세대에 전가하는 정권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프-독' 극우정당 뭉치나…'우회전' 가능해진 유럽
프랑스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의 인기가 거세다. 국민연합의 지지율은 마크롱 대통령이 속해 있는 '르네상스당'을 훨씬 앞서고 있다.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왼쪽) 의원과 그의 후계자인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 /AFPBBNews=뉴스1
이탈리아에선 이미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이 정권을 장악했고, 프랑스의 경우 '국민연합'의 지지율이 마크롱 대통령이 속해 있는 '르네상스당'을 훨씬 앞서고 있다. 이번 유럽연합 선거에서 독일 '독일을위한대안', 네덜란드 '자유당', 스웨덴 '스웨덴민주당', 폴란드 '법과정의당'(PiS), 스페인 '복스'(VOX) 등이 약진할 경우 유럽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프랑스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의원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에게 새 연대를 맺자고 제안했는데 유럽을 대표하는 극우 정치 세력이 손을 잡으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중도 성향이었던 유럽 의회가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오른쪽으로 기울고, 멜로니·르펜 등 정치인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가디언은 봤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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