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혹시 내가 '아기 코끼리 증후군'에 갇히진 않았는가?
[골프한국] 'Baby Elephant Syndrome'(아기 코끼리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코끼리 사슬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6톤이 넘는 거구로 정글을 누비는 모습에서 코끼리는 자유를 누리는 무적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릴 때 사람에게 붙잡혀 서커스단에 팔려 가면 조련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애완용 동물로 전락한다. 서커스단의 조련사는 어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뒷다리를 쇠사슬이나 밧줄로 묶어 말뚝에 매어 둔다.
코끼리는 도망치려 몸부림치다 스스로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쇠사슬 끊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말뚝 주변을 자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인다. 성장해서 쇠사슬이나 밧줄을 끊을 힘이 있는데도 어릴 적 경험에 갇혀 쇠사슬에 묶인 채 아무 저항 없이 살아간다. '아기 코끼리 신드롬'은 과거의 굴레와 멍에, 혹은 선입견에 익숙해져 자유와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병리적 모습을 상징한다.
의외로 주말골퍼 중에 '아기 코끼리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레슨프로로부터 체계적인 교습을 받은 사람 중에 이 증세에 갇힌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레슨프로들은 처음 골프를 배우는 사람에게 가능한 한 교과서적인 스윙을 익히기 위한 동작들을 터득하도록 가르친다. 프로들 나름의 '교습의 틀'을 심어주려 애쓴다. 백스윙과 팔로우스윙을 끝까지 충분히 하도록 돌아가지 않는 어깨를 골프채로 미는가 하면 헤드업을 하지 말라고 골프채 손잡이를 머리 위에 대기도 한다. 중심축이 전후좌우로 흔들리지 않도록 골프채로 어깨를 올려놓기도 한다. 이런 레슨프로의 교습 방법은 때로 피교습자에게 불쾌감을 안기기도 한다.
몸이 유연한 20~30대라면 레슨프로의 주문을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지만 40대가 넘어서면 얘기가 다르다. 신체적 특징이 다른 데다 운동 습관도 제각각이어서 레슨프로가 요구하는 스윙 동작을 제대로 구현하는 게 쉽지 않다. 평소 안 하던 동작을 하려니 몸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레슨프로의 엄명이니 가능한 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골퍼들이 자신도 모르게 '아기 코끼리 신드롬'에 빠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레슨프로가 가르친 동작에 가깝게 재현하려고 애를 쓰고 레슨프로가 가르치지 않은 스윙은 감히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레슨프로가 가르친 스윙을 그대로 재현하려니 자신의 생체리듬에 따르는 자유의지가 들어설 틈이 없다. 레슨프로의 품을 떠나서도 레슨프로가 만들어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자신만의 특장과 개성을 살린 스윙을 터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골프 스윙은 지문과 같아서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고 설파한 미국의 프로골퍼 제임스 로버터 하먼의 말에 수긍한다면 특정 레슨프로가 가르치는 스윙을 절대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골프에 철칙은 없다. 내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스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는 철칙이다.
라운드할 때마다 같은 상황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창의적인 스윙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레슨프로가 심어준 틀에 갇혀 있는 한 창의적인 스윙, 내 자유의지가 반영된 스윙을 창조해 낼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레슨프로에게 배운다 해도 모두가 로리 맥길로이나 잰더 쇼플리, 콜린 모리카와와 같은 스윙을 할 수는 없다. 팔자 스윙의 짐 퓨릭이나 낚시 스윙을 하는 스코티 셰플러는 교과서적인 스윙과는 거리가 멀지만 성공적인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LPGA투어의 살아있는 전설 아니카 소렌스탐도 골퍼라면 금기시하는 헤드업을 하는데도 미스샷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신체 조건이나 운동 습관에 맞는 자신만의 자유로운 스윙을 개발해 낸 탓이다.
무술의 고수가 제자에게 '하산(下山)'을 허락하는 것은 제자가 더 배울 것이 없으니 떠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으니 이제 저자에 내려가 다른 문파(門派)의 무술을 습득해 자신만의 무술을 구축하라는 의미다.
어느 정도 구력이 되었다면 '아기 코끼리 증후군'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이 담긴 자유로운 스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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