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뽐냈더니 성적도 쑥↑…실력파 빛 보는 K팝 시장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정교하고 힘 있는 퍼포먼스에 치우쳐 있던 K팝 시장에서 올해 들어 라이브가 뛰어난 '실력파' 팀들이 잇따라 주목받고 있다.
5일 음악 시장 분석 업체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올해 미국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꾸민 그룹 에이티즈는 이 축제 전후로 글로벌 시장에서 스트리밍 횟수가 급증했다.
에이티즈의 지난 4월 12∼18일 스트리밍량은 2주 전인 3월 29일∼4월 4일과 비교해 35.8% 증가했다.
에이티즈는 4월 12일(현지시간) K팝 보이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코첼라 무대에 올라 '할라 할라'(HALA HALA), '게릴라'(Guerrilla), '미친 폼', '바운시'(BOUNCY) 등을 선보이며 탄탄한 실력을 뽐냈다.
루미네이트는 미국 빌보드 차트 등에 데이터를 공급하는 공신력 있는 업체다. 올해 코첼라 무대에 올라 호평받은 한국 밴드 더 로즈 역시 같은 기간 스트리밍량이 43.7% 증가했다.
이처럼 라이브 실력이 스트리밍 성적 등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신인 그룹에서는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한창 이름을 알려야 하는 신인들에게는 '무대를 잘 한다더라'는 입소문이 무척이나 반갑다.
YG엔터테인먼트 신인 걸그룹 베이비몬스터는 데뷔 직후에는 미디어 노출이 적어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TV 음악 프로그램과 유튜브 콘텐츠 등에서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고음과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 등이 화제를 모으면서 정식 데뷔곡 '쉬시'(SHEESH)가 음원 차트 '톱 10'까지 치고 올라갔다. 올해 4월 정식 데뷔한 신인으로는 고무적인 성적이다.
YG 관계자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라이브를 통해 팬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은 뒤 밴드 버전으로 이를 더욱 극대화하고 색다른 매력을 보여드린 것이 주효했다"며 "베이비몬스터는 더 다양한 무대 경험과 더 많은 팬을 현장에서 만나기 위한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데뷔한 4인조 신인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 역시 데뷔곡 '쉿'부터 '배드 뉴스'(Bad News), '노바디 노우즈'(Nobody Knows), '미다스 터치'(Midas Touch) 등 활동곡마다 탄탄한 라이브로 K팝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들은 특히 데뷔 2년 차인 올해 들어서는 고려대, 단국대, 청주대, 한성대 등 국내 각지의 대학 축제를 찾아다니며 20대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유튜브에올라온 이들의 대학 축제 무대 영상에는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 난 것 같다. 정말 잘한다' 혹은 '무대를 찢었다' 같은 칭찬이 줄을 이었다.
키스오브라이프가 소속된 S2엔터테인먼트의 홍태화 대표는 연합뉴스에 "우리는 (멤버들에게) 데뷔 때부터 라이브를 강조해 왔다"며 "워낙 실력이 있는 친구들이라 감추려고 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스태프와 의논해왔다. 완벽한 무대가 아니더라도 (AR을 지양하고) 라이브로 조금 더 보여주는 게 메리트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그러면서 "지난해 데뷔 이후 큰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대학교 축제에서 많이들 찾아주셔서 멤버들도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며 "멤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신인 걸그룹 영파씨를 비롯해 이미 정상급 K팝 스타인 에스파와 엔믹스 등도 대학 축제에서 생생한 라이브로 온라인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에스파의 윈터는 지난달 27일 신보 발매 쇼케이스에서 "연습생 때부터 핸드 마이크를 들고 (반주를)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노래하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이런 게 트레이닝 돼 있다 보니 많은 분이 (우리의 라이브를) 예쁘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한다"고 짚었다.
엔믹스는 지난달 한 국내 대학 축제에서 대표곡 '다이스'(DICE)를 부르던 중 갑자기 반주가 꺼졌는데도 개의치 않고 노래를 라이브로 이어 나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런데 이 같은 '음향 사고'가 실은 멤버들에게는 공유하지 않되 주최 측과는 사전에 협의된 '연출'로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만큼 라이브 실력이 중요한 홍보 포인트가 됐다고 볼 수 있는 해프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위기가 음악 프로그램 1위 앙코르 등에서 자신의 노래를 가만히 서서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등 실력으로 뭇매를 맞은 아이돌 그룹 사례들의 반작용이라고 보고 있다. 음반 제작자가 무조건 '뜰 법한' 노래가 아니라 가수의 역량이나 음색을 고려한 곡을 주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가창을 잘한다는 것은 그룹이 표현할 수 있는 색이 그만큼 다양해진다는 의미"라며 "장르적인 방향이나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의 폭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그러면서 "최근 K팝 시장의 반응은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이것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식의 무대 사례가 생기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파워풀하게 가창하는 팀이 인기를 얻는 것 같다"며 "멤버들의 실력보다는 노래가 해당 팀에 어울리냐는 기획과 연출의 문제로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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