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브이로그’, 누가 만들고 누가 볼까?

임지영 기자 2024. 6. 5.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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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이 담을 수 있는 내밀한 사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질병 당사자가 만드는 투병 브이로그도 그중 하나다. 질병을 부정적으로 여기던 예전과 달라진 분위기다.
본인의 질병에 대해 터놓고 투병 과정을 공유하는 브이로그를 ‘투병 브이로그’라고 지칭한다. ⓒ시사IN 박미소

2022년 11월, 정환영씨(44)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올 게 왔다는 심정이었다. 그동안의 생활습관이나 마음가짐을 돌아보며 이제부터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뭐부터 해야 할까?’ 치료를 시작하기 전 잠시 짬이 생겨 속초로 한 달 살이를 갔다. 바람을 쐬고 머리를 식히다 보면 방도가 나오겠지 싶었다. “4기라도 죽지 않고 무조건 산다는 그 마음밖에 없었다.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갔다.”

암은 시련이었지만 속초에 와서 보니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 자체가 좋았다.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루하루 만족감을 느끼는 역치가 낮아지자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상태를 묻고 걱정하는 지인들에게도 일일이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영상을 만들면 편할 것 같았다. 유튜브 채널 ‘암시롱’을 만들었다. 2022년 12월, 한 달 살이 숙소에 누워 찍은 ‘눕방 수다’ 영상이 처음으로 업로드되었다. 암 진단 직후였고 치료 일정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정씨는 “안식처 삼아 정붙일 데를 찾은 셈이다”라고 회상했다.

2024년 5월 현재 정씨는 아예 자녀와 속초에 거주하고 있다. 그사이 영상은 110여 개로 늘었다. 항암 치료와 수술을 예상했다가 호르몬 치료를 먼저 하게 된 사연, 약 부작용 극복기 등 투병과 관련된 콘텐츠, ‘4기 암 환자의 서울 나들이’나 ‘미라클 모닝’과 같은 일상 브이로그까지 다양하다. 최근 영상에서 그는 자신의 투병 과정을 ‘암이라는 신세계를 친구 삼아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유튜브 세상’이 확장되는 만큼 채널이 담을 수 있는 내밀한 사연의 종류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그중 하나가 질병이다. 정씨처럼 본인의 질병에 대해 터놓고 투병 과정을 공유하는 브이로그를 ‘투병 브이로그’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투병 브이로그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질병의 종류도, 병기도 다양하다. 루게릭병 환자의 일상을 그린 ‘삐루빼로’, 뼈전이암 4기를 지나며 겪은 항암 치료 과정을 공유하는 ‘김쎌’과 ‘유병장수 girl’, 요막관암의 투병 과정을 자세히 전하는 ‘암살자TV‘, 유방암 3기에서 뇌 전이 판정을 받은 뒤 관련 치료제의 의료보험 청원을 이끌어내기도 한 ‘콩튜브’, 희귀 피부병인 수포성 표피박리증 환자의 ‘daily 여니’, 갑작스러운 사고로 머리뼈 일부를 자르고 재활치료 중인 ‘우자까’를 비롯해 섭식장애, 정신질환, 각종 만성질환을 다루는 영상들도 있다.

이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구독자 64만여 명을 가진 ‘삐루빼로’ 채널의 최수빈씨는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는 루게릭병으로 몸이 불편해 밖에 나가는 게 힘들어지자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가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영상을 찍어 편집하고 업로드하는 게 취미가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20대 젊은 나이에 질병을 앓는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튜버 ‘새벽’은 2019년 악성림프종 혈액암 판정을 받은 뒤 투병 과정을 공개했다. 진단 전부터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던 그에게 ‘암 환자가 무슨 유튜브고 화장이냐’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생전 그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숨어야 하나. 회사원이었으면 회사에 (계속) 다녔을 텐데 유튜버라서 유튜브를 올린다”라고 말했다.

젊은 환자들의 채널이 많다는 점도 최근 특징 중 하나다. 유튜브를 주로 소비하고 생산하는 연령대가 비교적 젊어서이기도 하고 젊은 암 환자가 늘어나는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암 환자 수가 2016년 123만여 명에서 2021년 153만명대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20~29세 암 환자가 2021년 약 2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26% 증가율을 보였다. ‘젊은 환자’, 이 모순적인 단어의 결합이 이들의 질병 서사를 좀 더 두드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투병 중’이라고 하면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투병의 일상은 그렇게 균질하지 않다. 올해 1월 대장암을 진단받고 현재 항암 치료 중인 서도희씨(29)는 ‘20대 항암 브이로그’라는 키워드로 채널 ‘도히DOHEE’를 운영하고 있다. 서씨는 “처음 4기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 나는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 거고 즐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유튜브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채널에는 항암 치료 과정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주사를 맞으러 병원을 찾는 장면과 치료 도중 겪은 오심이나 속쓰림 등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동시에 벚꽃을 구경하고 예쁜 카페에서 차와 디저트를 즐기는 일상이 공존한다. “(항암은) 부작용이 크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보통 ‘항암‘이라고 하면 집에 누워 있는 이미지, ‘앞으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걸 떨쳐내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언제 비슷한 처지에 놓일지 모르는 분들에게 ‘암에 걸려도 웃으면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계속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인생의 가장 큰 위기, 그 한때를 기록하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씨는 “살면서 가장 젊은 날이 지금이다. 동시에 투병 과정은 어떻게 보면 가장 어두운 시기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웃으며 헤쳐 나가는 모습을 찍고 싶다. 언젠가 병이 나은 다음 다시 지금의 영상을 본다면 가장 힘들던 시기에도 나는 웃으며 극복했고 그 안에서 행복했구나, 생각할 테고 그러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도희씨는 유튜브 채널 ‘도히DOHEE’에서 항암 치료 과정과 일상 생활을 공개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의료진이 규정하는 ‘의학 서사’를 넘어

투병 브이로그는 질병을 부정적이고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던 예전과 달라진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암 환자들의 브이로그 영상을 분석한 논문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재조명: 암 환자들의 유튜브 투병 브이로그를 중심으로(〈미디어, 젠더&문화〉 제36권 제1호)’에는 투병 브이로그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환자들의 투병 브이로그는 자신의 병이 의료인들의 언어로만 규정되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분석이다. 논문 속에 인용된 한 유튜버의 말대로 “이대로 병실에만 앉아 생사 여부를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투병의 기록을 브이로그로 남기기 시작했다.” 의료진이 규정하는 ‘의학 서사’가 ‘자신의 고유한 스토리텔링’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투병 브이로그의 구독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가장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구독층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다. 정환영씨는 구독자를 전우로, 투병을 치병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구독자들을 동료에 빗댄 말이다. “초반에 찾아오는 구독자는 40대에서 60대 여성이 많았다. 암이 아니더라도 각종 성인병을 포함해 아픈 분들이다. 음식을 절제하거나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 이들이 그동안 다잡았던 생활습관이 무너질 만한 타이밍에, 삶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내 영상을 통해) 봐주는 것 같다.”

최근에는 질병과 상관없는 2030 여성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독자가 많은 채널의 특징이기도 하다.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 피드에 의해 우연히 영상을 접하거나 방송 등 다른 경로를 통해 사연을 듣고 찾아본 이들이 시청을 거듭하며 질병 당사자를 타인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기도 한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홍세인씨는 지난해 12월 〈사회과학연구〉에 ‘유튜브 투병 브이로그 콘텐츠 시청 행태에 대한 연구 “라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실었다. 그는 투병 브이로그 시청자 18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시청 행태를 분석했다. 홍씨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투병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플랫폼은 인터넷 카페를 비롯해 종전에도 많이 있었다. 유튜브 플랫폼으로 넘어오면서 투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런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런 이들이 시청하는 이유를 라포(상대방에 대한 친밀감과 공감이 형성된 관계)라는 키워드로 접근해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브이로거 당사자들의 외모 변화, 업로드 주기 등을 투병 브이로그와 기존 브이로그의 차이로 꼽았다. “투병 과정에서 브이로거의 모습이 점점 쇠약해지고 안색이 안 좋아지는 등 외모의 변화가 있음에도 몇몇 응답자들은 이러한 외모 변화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하는 마음이 들게 하며 투병 브이로그 시청을 지속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언급했다.”

디지털 추모로 이어지는 애도

규칙적이지 않은 업로드 주기 또한 특징이다. 보통 예정된 시간에 영상이 업로드되지 않으면 구독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지만 투병 브이로그에서는 좀 다르다. 주기가 뜸할 경우 기다리고 걱정하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질병을 가졌기 때문에 이해하고 관용하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더 몰입해 그 사람의 쾌유를 바라는 것 같다. 투병 브이로그 콘텐츠 자체가 ‘끝이 없는 영화’의 느낌이 있다. 영화는 단시간 안에 결말을 보여주지만 브이로그의 경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함께 나아가는 느낌으로 몰입해서 보는 것 같다.”

인터뷰 대상 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투병 브이로그 영상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구독자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감사한 사람이구나, 아픈 저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가 뭐라고 이게 힘들다고 생각했나’ 싶었다고 한다. 투병 브이로그가 가진 콘텐츠의 힘은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와 비슷한 삶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병을 얻게 되면서 나와 굉장히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거잖나. 일상을 반추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현재 투병 중이든 아니든 대개 우리는 질병을 겪기 마련이고, 그런 점에서 화면 속 그들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삶의 한 시기를 어렵게 통과하는 당사자를 응원하면서 구독자들 스스로 브이로그에 달린 ‘악플 정화’에 나서기도 한다. 질병 당사자는 구독자와의 소통 과정에서 큰 위안을 받기도 한다. 정환영씨는 “가끔씩 나를 찾아와주고 영상이 안 올라오면 예전 영상을 복습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다. 번아웃이 왔다가도 금세 사라지는 극약처방이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채널을 운영하던 브이로거들이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소세포성 난소암 4기로 투병 중이던 20대 유튜버 ‘꾸밍’은 2022년 5월 마지막 영상 ‘내 생에 마지막 기록’을 올렸다. 24세에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은 ‘암환자 뽀삐’는 지난해 9월 마지막 ‘라이브’ 영상을 업로드했다. 당사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추모의 글이 이어지면서 디지털 추모의 형태로 애도가 계속되고 있다. 죽음 이후에도 배우자 등이 브이로그를 이어가기도 한다. 가끔 질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는 경로가 되기도 하는 등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투병 브이로그는 그동안 발화되지 못했던 질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활발하게 담아내고 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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