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위험한 건 어른들이 치워야 한다”
무엇이든 직접 해본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 안다. 설령 그게 불법일지라도.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20여 년 전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적 있다. 도박 시장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언론사를 차렸다가 접기도 했다. 정부에서 ‘어디를 때리면’ 시장이 ‘어디로 도망가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2021년 돌연 청소년 불법도박 근절을 목표로 내걸고 ‘도박없는학교’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교장이 됐다. 서울경찰청이 청소년 도박 근절을 위해 긴급 스쿨벨을 발령한 이튿날인 5월21일, 경기 성남시 도박없는학교 사무실에서 조호연 교장을 만나 해결 방법을 물었다.
이력이 독특하다. 왜 ‘도박없는학교’를 만들었나.
중학생 아들을 둔 친구가 자기 아들과 대화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된다며. 그 아들을 혼자 불러서 이야기를 하면 잔소리처럼 느낄 것 같아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다 같이 오라고 했더니 열댓 명이 왔다. 이 아이들은 청소년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불법 사채를 빌려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문제구나’ 하고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그게 아니더라. 얘네들도 선배들한테 물려받은 거였다. 학교에서 전통으로 내려올 정도로 도박이 일종의 문화가 돼 있었다. 그때 청소년 불법도박 시장을 뿌리 뽑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 안에 불법 사채시장이 형성돼 있다니.
어른들의 사채시장과 똑같은 구조다. 맨 위에 있는 애가 불법도박 사이트를 가져와서 밑에 있는 애들한테 계급에 맞게 역할을 나눠준다. 그 ‘리그’ 안에서는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냥 준다. 식구니까. 제일 비싸게 이자를 받아먹는 대상은 아무것도 모르고 걸려든 순진한 애들이다.
어떻게 걸려드나?
모범생한테 갑자기 돈을 주면서 “도박해봐” 이러면 거부감을 느낄 거 아닌가. 일단 사이트에다 아이디를 만들어서 사이버머니 10만원을 심어놓고 “아이디랑 비밀번호 알려줄 테니까 한번 해봐, 재밌어” 하는 거다. 도박이 뭔지도 모르는 애들이 그렇게 배워가면서 한다. 10만원을 다 잃으면 처음에는 3만원, 5만원 장난으로 주다가 그다음부터는 “너 이거 갚아야 돼” 하고 10만원을 빌려준다. 그럼 빌린 애들은 학교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뛰러 가서 번 돈을 고스란히 상납한다. 문제는 이 돈을 다시 학교 안에서 불린다는 거다. 돈을 못 갚으면 ‘노예 마케터’로 부려먹는다. 자기가 운영하는 사이트 이름과 주소, 자기 아이디가 추천인 아이디로 적힌 이미지를 만들어서 SNS에 쫙 깔게 한다. 그럼 그걸 보고 또 다른 애들이 유입된다.
‘노예 마케터’가 총판(모집책) 역할을 하는 건가?
이제는 총판 개념도 애매하다. 그냥 추천인 아이디로 적혀도 총판이기 때문에 잘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그 위에서 돈을 버는 애들은 정말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사이트 운영자, 사채업자 학생 한 명을 처벌하면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50명이 편해진다.
온라인 불법도박 시장을 잡으려면?
‘대포 통장’을 잡으면 된다.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기로 입금하라’고 뜬 계좌번호를 캡처한 사진, 내가 돈을 입금한 내역만 있으면 신고를 할 수 있다. 그러면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은행에 가서 직원하고 같이 그 계좌를 들여다볼 수 있다. 불법도박에 쓰이는 통장은 딱 보면 안다. 패턴이 있다. 개인 계좌인데 하루 5억원씩 치고 빠지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은행 직원이 통장을 잠근다(거래정지). 이걸 풀려면 경찰서에 가서 소명해야 하니까 불법 도박업자들은 차라리 그 통장을 버리고 만다. 내가 작년에 대포 통장 280개를 신고했지만 단 한 번도 이의 제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대포 통장이 귀해져서 실제로 많은 불법 사이트가 문을 닫았다. 돈을 못 빼니까 자금줄이 마르는 거다. 사이트는 무한히 생성할 수 있어도 계좌는 유한하다. 계좌를 잠가야 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클린 계좌 프로젝트’도 대포 통장을 걸러내는 작업인가?
도박없는학교 홈페이지에 범죄에 쓰인 계좌를 올리고, 제일 많이 등록된 은행사가 어디인지 랭킹을 매기고 있다. 해당 계좌가 정지되면 ‘완료’로 바꾸어서 카운팅에서 빼준다. 7월까지 작업을 계속해서 ‘1등’ 한 은행에는 ‘도박방조상’을 줄 거다. 도박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아이의 가방을 아크릴에 넣어 상패 대신 전달할 예정이다.
이런 일들은 사실 사법기관의 역할 아닌가?
나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6개월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불법 시장을 제일 아프게 때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내가 먼저 뛰어들어서 길을 내면, 정부가 뒤따라와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예방 챌린지 같은 거만 하고 무슨 무슨 TF 만들고 탁상공론만 하더라. 몇 개 부처가 와글와글 모여서 한마디씩 얹을 일이 아니라 누군가 총대 메고 컨트롤타워를 하나 만들어서 대포 통장 계좌를 추적하면 된다. 불법 사채시장을 물려받는 게 학교 내 전통이 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10년째 정부는 ‘법이 없어서 안 된다’ ‘인력이 없어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입법이라는 게 어디 쉽나. 인력을 더 뽑는 게 어디 쉽나. 그냥 손 놓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대포 통장 잠그는 거, 법 없이도 할 수 있다.
대포 통장을 잠그는 게 어떤 예방책이나 해결책보다 효과적이다?
아무리 어른들이 도박 하지 말라고 해도 도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막나. 애들도 언제까지고 미성년자가 아니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은 한 달 차이다. 대학 가서 진짜 사채를 쓸 수 있게 되면 더 위험하다. 그러니까 원점을 깨뜨려야 한다. 나는 ‘예방’이나 ‘치유’라는 단어보다 ‘근절’이라는 단어가 맞다고 본다. 더럽고 위험한 게 있으면 어른들이 조금 다치더라도 장갑 끼고 가서 치우면 된다. 해보면 별거 아니다. 금방 치울 수 있다. 지금 정부가 하는 건 그 주위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다치니까 어린아이들은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는 팻말만 붙여놓고 있는 거다. 그러지 말자는 거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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