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내 인생을 살리러 온 기후 파괴자, 에어컨
기후재난 시대 보급률 98%의 '필요악' 에어컨
가장 흔한 냉매가 이산화탄소 수천 배 악영향
적정온도 유지·선풍기 함께 쓰기 등 실천 중요
과학산업계는 "친환경 냉매 찾자"며 고군분투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집 100가구 중 98가구가 가지고 있는 가전제품.
기후위기 시대에 없이 살 수 없지만, 쓰면 쓸수록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필요악.
무엇인지 짐작 가시나요. 바로 에어컨입니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에어컨 보유율은 전기밥솥(97%)과 전자레인지(96%)보다 높았어요. 1993년만 해도 보유율이 6%에 불과했지만, 한 세대 만에 가가호호 없는 집 없는 '필수 아이템'이 된 것이죠.
해를 넘길수록 '역대 최고 기온', '역대급 폭염'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기후재난 시대에 에어컨 의존도는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매년 폭염 때면 에어컨을 발명한 미국의 공학자 윌리스 캐리어를 신처럼 추앙하는 유머 게시글이 인터넷에 올라올 정도니까요.
냉방에 年 이산화탄소 19억 톤 배출, 전체 4%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후위기 시대 에어컨은 '내 인생을 살리러 온 기후 파괴자' 같은 존재예요.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에어컨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전력 소비량이 큽니다. 시스템 에어컨의 시간당 전기 소비량은 1.1kWh(킬로와트시)로, 선풍기(강풍) 전기 소비량 35~55Wh(와트시)의 20~30배에 달합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따르면 오직 냉방을 위해 전 세계 전기 사용량의 10%가 사용되며 연간 국제 온실가스 배출량 4%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19억5,000만 톤이 배출됩니다. 특히 한국은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온실가스 배출 주범인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65.5%에 달해, 50%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는 문제가 있고요.
② 6대 온실가스 중 하나인 수소불화탄소(HFCs) 냉매도 문제예요. 에어컨은 액체 상태 냉매가 기화할 때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현상을 이용하죠.
그런데 현재 가장 흔한 3세대 HFCs 냉매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악영향(지구온난화지수·GWP)이 수천 배에서 최대 1만4,800배에 달해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냉매는 가전제품 생애주기 동안 조금씩 누출돼, 제품 폐기 단계에 이르면 초기 충전량의 80%가 배출됩니다. 스멀스멀 냉매가 공기에 유출돼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는 2016년 '키갈리 의정서'를 채택해 HFCs를 점차 줄이기로 했어요. 과거 오존층 파괴 물질인 프레온(CFCs) 사용을 금지한 몬트리올 의정서(1989)의 연장선입니다.
매일 1시간 덜 틀면 연간 탄소 배출 14㎏ 저감
③ 마지막 이유는 폭염과 에어컨 간 돌고 도는 악순환에 있어요. 기후재난으로 인한 폭염이 심해질수록 냉방 수요는 늘고,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면 기후위기는 더 심해집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8년 5월에 낸 '냉방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냉방 에너지 수요는 2016년 대비 3배 폭증할 전망입니다. 에어컨 찾기가 어렵던 유럽도 최근 '40도 폭염'이 연례행사처럼 되면서 수요가 늘었고,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도 소득 수준 향상에 더해 5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 폭염' 탓에 에어컨 구매량이 늘고 있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에어컨을 펑펑 썼다가는 당장 올여름 받을 '냉방비 폭탄' 전기요금 고지서만 문제가 아니라 5년 뒤, 10년 뒤, 30년 뒤 우리가 살고 있을 미래와 후대에 '기후재난 빚 폭탄'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절약해 에어컨을 사용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처음 켤 때 '강하게 저온으로' 틀었다가 이후 온도 올리기 △26~28도 실내 적정온도 유지하기 △선풍기·서큘레이터와 함께 사용하기(전기료 20% 절감) △필터 깨끗하게 청소하기(효율 제고) 등입니다. 애초 구매할 때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사는 것도 중요하겠고요.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에어컨을 하루 3시간, 연간 47일 정도 튼다고 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101㎏인데요. 매일 1시간만 사용을 줄여도 연간 배출량이 14㎏ 줄고, 이는 나무 2.1그루를 심는 효과에 맞먹어요. 냉방 온도를 평소보다 2도 높이면 5.3㎏, 에어컨 필터를 제때 청소만 해도 1.2㎏를 저감할 수 있고요.
친환경 냉방 기술도 중요하지만 "욕구 변해야"
다른 기후위기 해법이 그렇듯, 산업적·기술적 해법을 찾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온실가스를 덜 내뿜고 에너지 효율도 좋은 에어컨 개발이 필요한 거죠. 한 예로 스타트업 '블루 프런티어'는 냉매 대신 소금 용액을 액체 제습제로 이용해, 기성 에어컨보다 전기 사용을 50~90% 줄인 에어컨을 개발 중입니다. 기후위기에 진심인 빌 게이츠가 이 회사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대요.
국내에서는 한국기계연구원이 지난해 암모니아, 물 같은 친환경 냉매를 에어컨이나 히트펌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화학적 방식의 냉매 압축 기술을 개발했어요. 연구팀을 이끈 김영 기계연 책임연구원은 "기존 기계식 압축기는 냉매 누설 가능성이 있는 반면, 전기화학적 방식은 무소음·무진동·오일프리라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암모니아를 쓰면 냉방장치 규모가 기존보다 커지게 돼서 건물 단위 냉방 장치 등 전체적인 시스템 개발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기술이 언젠가 문제를 해결해주겠지'라며 안심하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올해 2월 발표된 웨스턴호주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 폭이 이미 기후변화 '티핑 포인트'인 1.5도를 넘어섰고, 수년 내로 2도마저 넘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와요.
그래서 에어컨 냉매의 악영향을 파고든 책 '일인분의 안락함'에서 작가인 에릭 딕 윌슨은 여름철 우리가 바라는 쾌적함, 안락함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본인도 과거에는 "27도 아파트에서도 살고, 일하고, 자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에어컨을 7월 중 가장 더운 이틀만 사용"하게 됐다면서요.
광범위한 집단적 사회 변화와 법(개정)이 없으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기로 한 나의 개인적인 선택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광범위한 변화와 법(개정)이 개인적 욕구의 변화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인분의 안락함' 574쪽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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