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책임준공 신탁'… 미분양 리스크에 발목

정영희 기자 2024. 6. 5.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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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대비 공정률 지연, 분양 성과 저조
호황기에 누린 수익성 확보 쉽지 않아
신규 수주 감소, 이자와 대손비용 부담 확대 등으로 부동산 신탁사의 실적이 저조하다. 차입부채 증가 등으로 재무안정성도 저하됐다. 2024년에도 비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될 전망이다./사진=뉴시스
부동산신탁사의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이 모두 저하되며 시장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특히 책임준공 확약형 관리형 개발신탁(이하 '책준형') 상품의 경우 우발 위험의 성격을 갖고 있어 리스크 측정이 어렵고 과거 부실 사례 또한 없어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5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신탁사 14개 업체의 수수료 수익이 2022년 2분기를 기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신탁계정대 발생, 차입금 증가의 영향으로 이자비용과 대손부담이 확대되면서 지난해 4분기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투자부동산신탁, 한국자산신탁, 대신자산신탁 외 모든 신탁사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줄었다. KB부동산신탁과 교보자산신탁의 경우 연간 영업실적도 적자로 집계됐다. 수주 감소 등 현안 사업장이 직면한 상황을 감안할 때 신탁사의 저조한 실적은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분기 신한자산신탁·KB부동산신탁·교보자산신탁·무궁화신탁의 4개 업체가 분기 순손실을 냈다.

부동산신탁사의 개발신탁 상품은 차입형 개발신탁(이하 '차입형')과 책준형으로 구분된다. 차입형 상품은 개발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신탁사의 고유자금을 통해 조달하므로 부동산신탁사는 미준공, 미분양 위험에 모두 노출된다. 책준형 상품은 통산 시공사 책임준공기한에 6개월을 추가한 시점까지 준공을 확약하는 상품으로 이론상 미준공 리스크만 갖고 있다.

위험 수준은 책준형이 차입형에 비해 낮지만 최근 책준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추세다. 자기자본 대비 노출된 사업규모가 크고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며, 해당 상품에 대한 위험사례나 수준에 대한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부동산 신탁사의 책준형 사업장 수는 총 561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잔액은 약 22조5000억원으로 파악된다. 책임준공 기한 미준수 현황을 공시한 3개 신탁사를 통해 살펴본 시공사 책준기한 미준수 비율은 약 20.3%로 PF 잔액 10조5000억원 중 2조1000억원에 해당한다. 신탁사 책준기한 미준수 비율은 약 4.1%(8조5000억원 중 3470억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자기자본 대비 책준형 사업장 PF 대출잔액은 최대 14.7배에 달한다.

이를 전체 신탁사로 확대 적용하면 시공사 미준수 사업장 PF잔액은 약 4조5000억원, 신탁사 미준수 사업장 PF잔액은 약 9000억원으로 각각 추정된다. 올해 신탁사 책준기한 도래 사업장이 집중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신탁사 미이행 규모는 보다 확대될 전망이다.

여윤기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책준형 특성상 공정지연으로 신탁사 책임준공 기한을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 우발위험에 대한 책임의무가 발생하기에 공정률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2021년까지는 우호적인 부동산경기에 힘입어 책임준공 기한 준수에 어려움이 없었으나 급격한 금리 상승, 부동산 경기 저하, 중소형 시공사 부도위험 확대 등이 나타나면서 공정성과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정률이 계획 공정률 대비 5%포인트(p) 이상 떨어지는 책준형 사업장 수는 2021년 12월 말 48개에서 2023년 9월 말 기준 137개로 늘었다. 전체 사업장 수 대비 비중은 15%에서 53%로 상승했다. 차입형의 경우 23%(126개 사업장 중 29개)로 절반 수준이다.

책준형 개발신탁에 참여하는 시공사의 시공능력이 차입형 개발신탁에 참여하는 시공사 대비 열위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개발 신탁 사업 전체 가운데 시공능력 100위권 아래(사업비 기준) 시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차입형 사업장의 경우 약 16%인 반면, 책준형 사업장의 경우 70% 수준이다. 2022년 9월 말 책준형 사업장 시공사의 21%는 시공능력이 500위를 하회하는 건설업체였다.

시공능력 500위를 하회하는 건설업체의 3개년(2019~2021년) 평균 매출액은 약 332억원, 평균 영업이익은 약 11억원으로 수익·이익창출력이 우수하지 못했다.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미흡할 가능성이 높다.

여 애널리스트는 "책준형 사업구조상 PF대주 등 다수의 사업참여자들이 존재함에 따라 시공사 선정에 있어 부동산 신탁사의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을 것"이라며 "미준공 위험을 부동산신탁사가 보완하기에 시공사 선정 의사결정에 있어 위험관리 측면 보다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책준형 사업 진행에 있어 PF 등을 통해 필수 사업비의 90%가량을 확보한다. 분양률이 다소 저조하게 나타나도 부동산 신탁사의 자금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다만 공사원가 상승과 대체 시공사 선정, 책임준공 기한 준수를 위한 추가 자금투입 등이 나타나는 상황에는 앞서 조달한 PF 자금 외에 추가 자금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때 책준형 사업장의 분양성과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분양성과에 따라 신탁사의 재무부담 수준이 결정된다. 분양성과가 우수한 경우 대주의 PF 규모 축소로 우발 위험이 작아지는 동시에 신탁사가 투입한 신탁계정대의 회수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분양 실패시 대주의 PF 부담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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