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죽을지 살지 모르고…. 대원들을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내려 보내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게 정상 아닌가요? (그 상황에서) '1년 뒤에 국가가 (돈 달라고) 소송할 거니까 헬기 타지 마시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서양국(가명) 촬영감독)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2022년 9월 8일 김홍빈 대장을 '국가사회공헌자'로 인정해 국립대전현충원에 그의 위패를 봉안했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가 2002년 현충원에 안장된 뒤로 '스포츠 영웅'으로는 7번째다.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던 모험, 열 손가락이 없음에도 인간의 한계를 이겨낸 인내. 그리고 그의 끝없는 도전정신은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선물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기록을 만든 김홍빈 원정대에게 대한민국은 '소송'으로 답했다.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대원들을 구조하는 데 투입된 헬기 비용 약 7000만 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건 '원고 대한민국'. 이 역시 김 대장의 국립묘역 안장을 결정한 윤석열 정부가 결정한 일이다. 소관청은 외교부, 법률상 대표자는 당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다.
국가는 재해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헌법에 명시된 원칙. 그런데 어째서 국가가 국민에게 구조비용을 청구한 걸까. 심지어 국가 스스로 국위를 선양했다고 치켜세운 '산악영웅'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우리는 3년 전 여름으로 돌아가야 한다. 5명의 김홍빈 원정대(대원 3명, 촬영감독 2명)가 히말라야로 향했던 그때로 말이다.
김홍빈 대장은 2021년 7월 18일 오후 5시경 브로드피크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이로써 김 대장은 장애 산악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 완등을 달성했다. 당시 김 대장의 도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한 방송국의 촬영감독들도 동행했다.
"당시에 브로드피크 정상에서 VIP(문재인 당시 대통령)와 화상통화까지도 계획을 했었어요. 2021년 4월경에 LTE 재난안전 통신망이 개통됐어요. 히말라야 정상에서 VIP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김홍빈 대장이 국민들한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걸로 해보자고 이야기가 오갔었죠."(서양국 촬영감독)
그만큼 김홍빈 원정대의 도전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에서의 영상통화 연결은 이뤄지지 못했다. 심지어 하산길에는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김 대장은 그날 오후 9시경 해발 7900m 지점에서 조난됐다.
"저도 완전히 탈진한 상태여서 '캠프4'(해발 7500m)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밤 12시 넘어서 포터(짐 운반 등을 담당하는 현지인) 한 명이 내려오길래 '왜 대장님 안 모시고 혼자 왔냐' 물으니까 '지금 내려오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왜 같이 안 왔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자기들도 힘들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7900m 높이에서는 어느 누구도 장담을 못해요. (고산증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중에 포터 두 명이 내려와서는 '김홍빈 대장이 (산) 밑으로 떨어졌다'고 얘기를 한 거죠."(정인복(가명) 대원)
한 러시아 산악인이 김홍빈 대장을 구조하러 나섰다. 다음 날(19일) 오전 11시경 그는 좁은 얼음 절벽에 서 있는 김 대장을 발견했다. 곧바로 로프를 타고 내려가 구조를 시도했다. 그는 당시 김 대장의 모습을 소형 카메라로 촬영했다.
"아 정말 이렇게 또 구조를 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마지막 봉우리에서 이렇게 또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어서 정말. 크레바스(깊게 갈라진 틈)에 빠져가지고 아,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지만 이렇게 또 도움을 받아서 너무 감사합니다."(러시아 산악인의 영상에 찍힌 김홍빈 대장의 마지막 말)
하지만 김홍빈 대장은 로프에서 추락했다. 구조는 실패로 돌아갔다. 오후 2시 40분경, '김홍빈 대장이 구조 중 추락·실종됐다'는 사실이 한국으로 공식 통보됐다. 소식을 들은 정인복 대원과 조희민(가명) 촬영감독도 서둘러 베이스캠프로 하산을 시작했다.
정 대원은 고산증을 심하게 앓았다. 산소가 부족해 생기는 신체 증상은 실로 무서웠다. 발가락 동상을 시작으로 환각마저 겪었다. 정 대원은 김홍빈 대장이 산에서 내려오며, 자신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봤다. 환시(幻視)였다. 정 대원은 조 감독을 향해 말했다.
"대장님 저기 서 계시네. 저기 봐라, 살아 계시지 않냐."
조 감독은 정 대원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베이스캠프로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이 둘은 걷는 건지 미끄러지는 건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로프만 잡고 내려갔다. 꼬박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산소가 뇌에 공급이 안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겁니다. 판단력도 흐려지고 무기력해지고. 이게 '고소증'(고산병)이에요. 헛것이 보일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아무 데나 걸어갈 수도 있고요. 그러다가 사고가 나는 거죠. 정말 사투를 벌이면서 내려갔습니다. 줄만 잡고 거의 미끄러져서 내려왔어요. '캠프3' 내려와서 하루 좀 자고, 거기에서 또 환청을 듣고…."(정인복 대원)
다음 날(7월 20일) 오후 10시 20분경, 정 대원과 조 감독이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먼저 베이스캠프에 와서 기다리던 다른 대원 3명과 이들은 서로를 안고 한참 오열했다. 모두가 모인 이 자리엔 김홍빈 대장만 없었다.
"정인복 대원이 (고산증 때문에) 베이스캠프까지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김홍빈 대장도 실종됐는데 만에 하나 정인복 대원까지 어떤 일이 생겨버리면 어떡합니까. 정말 십년감수했습니다. (…) 엊그제까지만 해도 김홍빈 대장과 같이 밥도 먹고 '꼭 마무리 잘하고 내려가자'고 얘기했는데, 하루아침에 실종돼버리니까… 막 북받쳐 오르면서 베이스캠프 땅바닥에 앉아서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한 겁니다."(유현철(가명) 대원)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구조를 시도했다.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산악연맹 등을 포함한 '김홍빈 원정대 광주시 사고수습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꾸려졌다. 외교부와 주파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대책위는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파키스탄 군용헬기를 이용해 김홍빈 대장의 수색 구조 활동에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 대장의 무사 귀환을 바랐다.
본격적인 구조 활동에 앞서, 주파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직원은 서 감독에게 카카오톡으로 이렇게 물었다.
"구조팀 비용은 1쏘티(비행기 1회 이륙 및 착륙)에 2만5000usd(당시 환율 기준 한화 약 2900만 원)가 소요됩니다. 우선은 대사관에서 지불을 할 예정입니다.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의 입장이 필요하니 전달 부탁드립니다."
세계 최초의 도전을 위해 타국에 나간 '스포츠 영웅'이 조난을 당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다른 동료들 역시 죽음의 문턱을 가까스로 넘기고 육체적․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태에 몰려 있었다.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도, 사후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다.
사라진 김홍빈 대장을 걱정하며 오열하고 가슴 졸이며 1분 1초를 보내던 그때,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대책위에게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김 대장을 구해달라는 것.
당시 서 감독은 베이스캠프에서 대책위와 연락을 주고받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 감독은 대책위의 답변을 받아 서둘러 전달했다. 살아있을지 모르는 김홍빈 대장을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했으니까. 이 둘의 대화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산악연맹에서 지급보증 한답니다. 또한 저희 대원들이 정신적으로 육제적으로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여서 베이스캠프에서 스카르두(파키스탄 도시)까지 헬기를 이용해 안전하게 복귀하는 방법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서 감독은 이 전언이 향후 어떤 '사태'를 불러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구조하는 건 당연한 의무라고 믿었으니까.
파키스탄 군용헬기는 나흘 동안 총 3번 떴다. 7월 24일 김홍빈 대장을 찾기 위해 이륙한 헬기는 먼저, 베이스캠프에 있던 유현철, 정인복 대원을 스카르두로 이동시켰다.
"자국민이 외국에서 무슨 일을 겪으면 안전하게 국민들을 데리고 오는 게 대사관의 역할 아닙니까? 우리는 다급한 상황에서 카톡 하나 받아서 헬기를 탔는데, 나중에 (우리한테) 헬기비용을 청구를 한다는 건 꿈에도 몰랐죠. 당연히 우리는 비용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습니다."(정인복 산악인)
다음날(7월 25일)엔 군용헬기가 중국 측 상공을 돌았다. 하지만 6시간 넘게 허공만 돌았다. 결국 김 대장 수색에 실패하고, 헬기는 다시 스카르두로 복귀했다.
대책위는 7월 26일 김 대장 수색 중단을 결정했다. 가족의 뜻에 따른 결정이었다. 김 대장은 평소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걸 원치 않아 했다.
군용헬기는 7월 27일 마지막으로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던 대원 3명(촬영감독 2명 포함)을 데리고 스카르두로 이동했다.
"구조 헬기를 세 차례나 띄우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최소한 김홍빈 대장님 시신이라도 모시고 돌아왔어야 했습니다."(서 촬영감독)
같은 시각, 한국에선 김 대장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광주 염주종합체육관엔 분향소가 설치됐다. 향년 57세.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그는 히말라야의 얼음 골짜기에 잠들었다.
한국으로 귀국한 원정대원 5명은 코로나19 격리 방침에 따라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은 김 대장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문재인 정부는 같은 해 8월 4일, 김홍빈 대장에게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 훈장)을 추서했다. 그해 12월 대한체육회는 김홍빈 대장을 '2021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헌액했다.
김홍빈 대장을 떠나보낸 이들의 몸과 마음이 서서히 회복해갈 때쯤, 상황은 다른 국면을 맞았다.
외교부는 2022년 5월 31일 광주광역시산악연맹, 유현철․정인복․정민식 대원,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을 상대로 7000만 원 상당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윤석열 정부 취임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외교부가 소송을 제기한 법적 근거는 영사조력법이다.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예외를 둘 수 있지만, 외교부는 김홍빈 원정대의 상황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외교부는 광주광역시산악연맹에겐 약 2500만 원을, 두 차례 헬기를 탑승한 대원들에겐 약 4300만 원을 연대하여 모두 약 6800만 원을 납부하라고 요구했다.
소송의 원고는 대한민국. 피고는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인 김홍빈의 원정대. 유현철, 정인복 대원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전까지 외교부로부터 구조비용을 납부하라는) 문자메시지 한 통 받은 적 없습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소장부터 받은 겁니다."
법원은 지난해 6월 23일 원고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류일건)은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은 구조비용 전부(약 2500만 원)를, 대원 5명은 구조비용 일부(총 1076만 원)를 연대하여 납부하라"고 판단했다.
원고 대한민국은 끝까지 비정했다. 약 3600만 원의 구조비용을 돌려받는 걸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구조비용 약 7000만 원을 전부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1심 판결에 따라 헬기 비용을 내고 마무리 짓는 걸로 (대원들끼리) 뜻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다시 항소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법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겁니다."(정인복 대원)
지난 3월부터 항소심 재판이 시작됐다. 6월 11일에는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대원들은 여전히 김홍빈 대장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들은 김 대장과 함께 올랐던 산을 다시 오르며 텅 빈 마음을 달래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산은 (전남 담양군) 병풍산인데요. 요즘은 시간이 나면 혼자서 산을 많이 갑니다. 혼자 가서 땀을 흘리고 잊어버리기 위해. 그러다 보면 또 (김홍빈 대장) 생각이 나고…. (실종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김홍빈 대장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까지도 말입니다."(정인복 대원)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헌액하고, 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 그리고 김홍빈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 수천만 원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건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김보경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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