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가혹행위’라 쓰고 ‘군기교육’이라 읽는다
2020년 한 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전 국민에게 특수부대에 대한 로망을 선사했던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본다.
평균 또는 그 이하의 체력을 가진 ‘가짜’ 사나이들을 강한 훈련을 통해 ‘진짜’로 변모시킨다는 취지 자체는 훌륭했다.
하지만 막상 화면을 가득 채운 건 훈련이 아닌 얼차려를 빙자한 ‘가혹행위’였다.
교관들은 훈련생들을 향해 ‘이 새끼’라 칭하며 묵음 처리될 수준의 욕설에 ‘대가리 박아’를 남발했다. 심지어 얼차려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너 인성 문제 있어?”라며 상대의 인격을 조롱하는 모습은 가히 삼청교육대의 잔상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리얼리티 쇼일 뿐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가짜 사나이’가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다시금 재현됐다.
최근 한 훈련병이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40kg 완전군장을 한 채 연병장 1.5㎞를 달리고 선착순 뺑뺑이에 팔굽혀펴기까지 군기교육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함께 군기훈련을 받던 동료 모두 너무 힘든 나머지 서로의 상태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강행군이었을지 알 만하다. 군장 무게를 늘리고자 군장 안에 여러 권의 책을 넣어주는 센스(?)까지 보인 건 덤이다.
부검 결과 사망한 훈련병은 갑작스러운 고강도 훈련으로 인해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 의심 증상을 보였다고 하니, 이쯤 되면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라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군기교육은 얼차려의 또 다른 말로 엄연히 육군 규정에 명시된 훈련 중 하나다.
규정에 따르면 훈련병은 완전군장 상태로는 뜀걸음이 아닌 1㎞ 이내로 보행만 가능하고, 팔굽혀 펴기 역시 맨몸 상태에서 해야 한다. 여기에 군기훈련을 받는 병사들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렇듯 우리 군은 군기교육이 자칫 가혹행위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세세한 규정까지 뒀지만 어쩐 일인지 현실에선 깡그리 무시된 것이다.
결국 군기교육을 빙자한 가혹행위에 간호사를 꿈꾸던 전도유망한 20대 청년의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입대한 지 고작 9일밖에 안 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전 국민의 공감을 얻으며 어떻게 군을 믿고 자식을 보내냐는 이유 있는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강한 군대를 위해 가혹행위조차 필요악으로 치부되던 야만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그럼에도 가혹행위라 쓰고 군기교육이라 읽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도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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