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조 반도체 클러스터, 전기 없어 못 돌린다

조재희 기자 2024. 6. 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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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배전망의 전력난 경고] [2]
SK하이닉스가 용인시 원삼면에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SK하이닉스 제공

이대로면 622조원을 투입해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 등에 조성하는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가 공장을 다 지어 놓고도 전기가 없어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불과 12년 뒤부터는 대규모 전기를 동해안과 호남에서 받아와야 하지만, 송전 선로는 구체적인 건설 계획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을 비롯해 각종 최첨단 설비와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의 전기 수요가 날로 커지면서 2038년이면 수도권에 있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만 신형 원전 15기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현재의 송배전망 상태로는 고스란히 전력 부족으로 이어질 위기다. 정부는 계획대로 송배전망 건설이 마무리되면 문제없다고 되풀이하지만, 지금도 전력망 건설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직 고위 에너지 전문 관료는 “지금처럼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제 일정에 맞춰 송배전망 공사를 마무리하기 어렵다”며 “시간표를 새로 짜서 공사에 속도를 내야 ‘대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2047년까지 반도체 공장 16개가 신설되는 경기 남부 클러스터에선 3년 후인 2027년 공장 5개가 완공된다. 필요한 전력 수요만 원전 3~4기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이미 준공 시점을 5년 넘긴 동해안-신가평 선로가 2026년에도 가동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도권 전력 대란은 눈앞에 닥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클러스터의 핵심인 용인 지역에서는 반도체 공장 10개로만 2047년까지 현재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의 4분의 1만큼이 늘어난다. 반도체 공장은 물론 데이터센터 신설, 전기차 보급, 각종 제품의 전기화 등으로 수도권 내 전력 수요 폭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기가 없어 최첨단 공장과 설비가 가동을 못 할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서 대형 반도체 공장과 소부장·팹리스 등 반도체 생태계가 함께 성장하며 생산 유발 효과만 650조원에 이르고, 직간접 고용 창출 효과는 300만명을 웃돌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당장 2027년부터 송배전망 부족으로 인해 수도권 수요의 10%에 이르는 전기를 제때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인재 확보 등의 이유로 첨단 산업은 수도권에 있을 수밖에 없다”며 “송배전망 구축은 반도체처럼 국가 미래를 위한 필수 산업이란 시각으로 바라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활한 전력 공급이 반도체 업계에 실질적인 보조금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반도체 전력 수요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늘어

현재 화성·평택·용인·이천 등 경기 남부권 반도체 공장에서 필요한 전력 규모는 신형 원전 3기에 이르는 4.1GW 수준이다. 지난달 31일 나온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추정치에 따르면 2038년까지 용인을 비롯해 수도권에 잇따라 세워지는 반도체 공장의 전력 수요는 모두 15.4GW에 이른다. 지난해 나온 기존 계획에서는 14GW가 늘어날 것으로 봤지만, 경기 남부 클러스터 계획이 수립되며 반도체에서만 신형 원전 1기만큼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정됐다.

2019년에서 완공 시점이 2026년으로 밀린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면서 반도체 클러스터의 가동 시점에 전력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전력 업계 관계자는 “2026년에도 동해안에서 신가평으로 오는 송전 선로가 준공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서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 가뜩이나 빠듯한 수도권 전력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근에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지만, 건설까지는 시간이 걸려 당장 도움은 못 될 전망이다.

이후로는 송배전망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기존 발전소는 문을 닫으면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는 동해안과 호남 등에서 넘어오는 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2036년 이후 전력 수요는 기존 계획·건설 중인 선로에 더해 추가로 두 개를 더 연결하겠다고 했지만, 신규 2개 선로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계획조차 내놓지 못했다.

그나마 계획이 수립된 서해안 해저 송전 선로도 아직 기술 국산화가 되지 않은 데다 선로가 어디를 거칠지에 대해서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동해안-신가평 신규 선로가 민원 등의 문제로 선로 위치 선정에만 6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시간은 많지 않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23.5km를 건설하는 고덕-서안성 송전 선로도 계획을 세운 지 10년 만인 지난해 9월에야 준공했다”며 “수백km로 길고, 산을 넘거나 해저를 통과하는 송전선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10년 남짓한 시간에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도 부담 키워

송배전망 구축이 지연되면서 생기는 문제는 반도체 공장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최근 3년간 전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 중 4분의 3 이상이 수도권에 몰린 가운데 반도체 공장 외에도 데이터센터 등 추가적인 전력 수요가 폭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데이터센터의 전기 수요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0.6GW에 그쳤지만, 2038년에는 6.2GW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인공지능(AI)의 확산 등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데이터센터 증가세가 더 가파를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과거처럼 해서는 위기” 입 모아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거와 같이 안이하게 송배전망을 구축하다가는 국가적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에너지 분야 교수는 “지금 있는 송배전망은 현재 소비자와 발전소를 잇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전력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이대로 가다가는 전기가 없어 우리 1등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며 “송배전망 강화는 이제 반도체 등 제조업 경쟁력 유지와 AI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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