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백제의 미소’ 보러… 이재용 회장, 5번이나 찾았다

허윤희 기자 2024. 6. 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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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고미술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누적 관람 6만여명, 16일 폐막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전시에 나온 백제 7세기 중반 ‘금동 관음보살 입상’을 한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일본으로 반출돼 해방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공개된 작품이다. /뉴시스

해방 후 처음 국내에서 공개된 백제 불상, 전 세계에 단 6점 남아있는 고려 나전 경함, 미국에서 날아온 16세기 조선 왕실 불화···.

이 귀한 작품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계에 흩어진 불교미술 걸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요즘 고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개막 60일만에 하루 평균 1000여 명, 4일까지 누적 관람객 6만1300명을 기록했다. 폐막을 열흘가량 앞두고 소셜미디어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이번에 가면 다시 못 볼 작품들”이라는 관람 후기가 연일 올라온다.

지난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이후 재개관한 호암미술관이 마련한 첫 고미술 기획전으로,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여성’의 관점에서 본격 조망한 첫 전시다. 한국·중국·일본 불교미술을 후원하고 제작한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호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5년간 공을 들였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영국, 독일에 있는 27개 컬렉션에서 불화, 불상, 공예 등 불교미술 걸작품 92건을 모았다. 전시 작품 중 절반이 넘는 52건을 해외에서 빌려 왔다.

호암미술관 대규모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장에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비롯해 대형 불화들이 전시된 모습. /뉴스1

고미술계에선 “3대째 이어지는 삼성가(家)의 ‘미술 사랑’이 빛을 발한 전시”라고 입을 모은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세운 호암미술관에서 이건희 선대 회장이 모은 작품들을 이재용 회장의 의지로 전시했다는 것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 당시 “그동안 문화재를 모으는 데 정성을 기울인 것은 그것이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가 되리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병철 회장은 합리적인 가격에 걸맞은 좋은 작품을 사들이는 ‘가성비’를 추구하는 수집가였다고 전한다. 반면 이건희 선대회장은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얼마를 들여서라도 사들인다”는 ‘명품 제일주의’를 추구하며 작품을 수집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궁중숭불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등은 이건희 회장이 수집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이름난 수집가는 아니지만, 선대에서 수집한 작품들을 보다 많은 사람과 향유하려는 마음이 강해 이번 전시로 이어졌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재용 회장이 두 달간 호암미술관을 5차례나 방문해 이번 전시를 관람했다”며 “해외에서 온 손님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미술관 전시 관람을 동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제 7세기 중반 '금동관음보살 입상'을 세밀하게 소개하는 5분짜리 영상. 호암미술관 1층 로비에서 볼 수 있다. /허윤희 기자
고려 13세기 '나전 국당초문 경함'. 일본 개인 소장. 높이 25.6cm, 너비 47.3cm, 깊이 25.0cm. /호암미술관

이 회장이 가장 공들여 소개하는 작품이 백제 ‘금동관음보살 입상’과 고려 ‘나전 국당초문 경함’이다. 얼굴 전체에 미소를 머금은 백제 ‘금동관음보살 입상’은 일본으로 반출된 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높이 26.7㎝.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은 얼굴, 날렵한 허리와 살짝 비튼 골반이 자아내는 몸의 선은 백제 장인이 도달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전 세계에 단 6점만 남아있는 고려 ‘나전 국당초문 경함’도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볼 날을 기약할 수 없다. 옻칠한 나무 위에 얇게 잘라서 갈아낸 전복 껍데기로 국화 무늬를 넣고, 금속 선으로 넝쿨 줄기를 표현해 13세기 고려 나전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급 작품이다.

문정왕후가 발원해 조성한 ‘약사여래삼존도’(156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암미술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석가여래삼존도’(1565). 문정왕후가 발원한 두 조선 불화가 처음으로 동시에 전시됐다. /호암미술관

조선 시대 불교미술의 중요한 후원자 집단은 왕실 여성이었다. 조선 시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왕실 여인이 사찰 건립과 불화 제작 등 불사(佛事)를 주도했다.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1501~1565)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들 명종과 자신의 무병장수, 왕손 생산을 기원하며 불화(佛畵) 400점을 그리게 했다. 그중 현존하는 작품은 6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약사여래삼존도’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석가여래삼존도’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시에 전시됐다.

방탄소년단 RM이 호암미술관 전시에 다녀간 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수종사 금동 소형불상 사진. /RM 인스타그램 캡처

미술관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 미국, 대만 등 해외 연구자와 애호가들이 찾고 있다.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N 차 관람하는 분도 많다”고 했다. 16일까지. 성인 1만4000원. 하루 2회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호암미술관을 왕복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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