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숙성, 결단은 혼자… 美서 ‘개츠비’ 성공한 비결
강심장인 걸까, 고집이 센 걸까. 세 번 도전해서 모두 고배를 마셨지만, 네 번째는 달랐다.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 대표 신춘수(56) 프로듀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의사결정권을 지닌 제작자)로 지난 4월 25일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위대한 개츠비’(이하 ‘개츠비’)가 5월 마지막 주까지 4주 연속 매출 ‘밀리언 달러 클럽’에 올랐다.<그래픽> 3월 29일부터 한 달여 진행한 프리뷰 공연도 총 4주가 매출 100만달러를 넘겼다. 주간 매출 ‘밀리언 달러 클럽’ 공연은 브로드웨이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30~40편 중 10여 편 안팎에 불과하다. 신작 뮤지컬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고, 장기 공연 가능성을 가늠할 첫 관문을 안정적으로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드림걸스’(2009), ‘할러 이프 야 히어 미’(2014·이하 ‘할러’), ‘닥터 지바고’(2015·이하 ‘지바고’)까지, 아쉽게 주저앉았던 세 번의 경험이 신 대표에겐 네 번째 도전에서 독하게 승부를 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보스가 한국에 있으니까요!”
지난 30일 만난 신 대표는 “이달 중에 내년 5월까지의 티켓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개츠비’ 실시간 티켓 가격이 최고 400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공연을 찾는 관객이 많아 이제 안정적인 장기 공연 궤도에 오른 셈”이라고 했다. 제작사의 국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6일 귀국한 신 대표에게 뉴욕 현지 상황은 어떻게 챙기는지 묻자 그는 “매일 아침 한국 시간 10시(현지 시각 오후 9시)에 관객 분석과 마케팅 리포트를 들고 온라인 회의를 한다”고 했다. “‘보스’가 한국에 있으니 한국 시간에 맞추는 거죠. 매주 정교하게 분석된 회계 보고서도 받고 있습니다.”
◇실패의 교훈 ①조바심은 금물
무엇이 달라진 걸까. 그는 “고비마다 과거 실패의 교훈을 떠올리며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2014년 브로드웨이에 올렸던 ‘할러’는 훗날 ‘블랙 팬서’로 대스타가 된 배우 고(故) 채드윅 보즈먼이 주인공으로 시범(트라이아웃) 공연까지 함께 했다. 하지만 보즈먼이 영화 출연으로 빠지면서 새 배우를 구하고 대본을 더 발전시켜야 할 시점에 빈 극장이 나오자 덜컥 잡아버렸다. “빨리 성공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던 거죠. 급한 마음에 덜 여문 작품을 올렸고,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신 대표는 2016년 ‘개츠비’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숙성기를 거치며 2020년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에게 첫 제의를 했다. 2022년 원작의 저작권 해제 시기를 앞두고 2021년부터 현지 창작진과 배우를 꾸렸다. 서둘지 않고 한걸음씩 전진한 것이다. 2022년 겨울 극장주와 투자자들 앞에서 첫선을 보이는 ‘인더스트리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개츠비 역 주연 배우 제러미 조던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 “극장과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필수 과정이거든요. 하지만 불완전한 공연을 보여주기보다 과감히 취소했습니다. 사전 제작비를 7억원쯤 날렸지만 결단하고 나니 오히려 더 침착해지더군요. 결과적으로 공연 내용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실패의 교훈 ②결정권은 홀로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조기 종연했던 ‘지바고’는 리드 프로듀서가 5명이었다. 의사결정이 한없이 늘어져 실패의 요인이 됐다. ‘개츠비’는 제작비 2500만달러(약 344억원) 중 오디컴퍼니가 절반을 대고, 나머지 절반은 한·미·일의 파트너들이 맡았다. 투자 조건으로 리드 프로듀서 참여를 요구하면 단칼에 거절했다. 신 대표는 “고되고 외로웠지만 옳은 선택이었다”고 했다. “뉴저지 시범 공연은 제작비만 700만달러(약 96억원) 넘게 들였습니다. 회계 담당자들이 300만달러면 되는데 과하다며 비명을 질렀지만 밀어붙였어요.” 그는 “공동 리드 프로듀서가 있었다면 아마 막았을 것”이라며 “최고로 만들어야 길이 열린다고 믿었고 결국 뉴저지 극장에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며 브로드웨이에 조기 입성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실패의 교훈 ③간절한 이들과 함께
창작진 선택의 기준은 처음부터 이름값이 아닌 재능과 절박함이었다.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는 음반 프로듀서로 그래미상을 받았지만 편곡자로 더 알려진 인물. 연출가, 극작가, 디자이너, 안무가도 유명인사라 보긴 힘들다. “눈여겨봐뒀던 창작자들이고, 저와 같은 ‘결핍’을 그들에게서 봤어요. 재능은 있지만 큰 성공은 없었던, 간절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했기에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신춘수 대표의 현재 목표는 일단 ‘개츠비’를 브로드웨이에서 3년 이상 장기 공연하는 것.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오리지널 뮤지컬을 세 편 정도 만들어, 글로벌 뮤지컬 제작사가 되게 하고 싶습니다.” 그는 “한국 뮤지컬은 지금 무대 예술 범주를 뛰어넘어 콘텐츠 산업으로 도약할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고도 했다. “뮤지컬이 K팝과 K무비·드라마처럼 하나의 장르로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도 민간도 정책적 고민과 고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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