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질주, 환희’…대만·일본 밴드가 보여준 세 가지 구원

서다은 2024. 6. 4. 23: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에너지. 그들의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어떤 점에선 성스럽기까지 했다. 일본 밴드 Qu(큐유)와 대만 밴드 MassMan(매스맨), FunkyBrothers(펑키프라더스)가 한국을 찾아 지난 주말(5.31~6.1) 서울 마포구의 생기 스튜디오와 스트레인지프룻에서 두 번의 공연을 마쳤다. Qu의 베이시스트 Tac는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분노와 구원이 함께 있다’고 말했다. 어둠 속을 더듬어 헤쳐나가는 자들의 가냘픈 구조 신호처럼 필사적이고, 그렇기에 누구보다 더 힘차게 살아있음을 외치고 있는 아시아 밴드들의 목소리를 만나봤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의 스트레인지프룻에서 일본 밴드 Qu(큐유)가 연주하고 있다. 사진=Qu 제공
 
“음악만큼 사랑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 MassMan의 프론트맨 Ruru가 말을 할 때마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할 수 있는 것 중 음악이 최고지’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은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뻗어나갔다. 하나는 어쨌든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 또 다른 한 가지는 세상의 어둠을 똑바로 보고 있는 시선, 혹은 낮게 깔린 염세주의였다. 하지만 MassMan의 음악은 염세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적이었다.

인스트루멘탈 록(가사 없이 악기를 강조하는 록)을 구사하는 MassMan의 음악은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전사들처럼 주저하는 법 없이 뻗어나갔다. 한 번 들으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운, 뭉쳐 있던 무언가를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였다. 스트레인지프룻에서의 마지막 곡 ‘閃電手’(Lightning hands) 에서 드러머 Lai는 끝내 단전에서 끌어올린 것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심벌즈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앞쪽에 있던 관객들은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에 압도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연주가 끝나자 ‘멋있다’는 감탄사가 터져나왔고, ‘스트레스 풀린다’는 반응도 나왔다. 처음 보는 밴드, 그것도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가사 없는 록음악에 관객이 크게 호응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분명한 것은 그 순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깨뜨리는 그들의 사운드에 한국 관객들이 녹아들어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의 생기 스튜디오에서 대만 밴드 MassMan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CHEN Chia-Hui
 
FunkyBrothers의 음악은 좀 더 대중적이고 발랄하다. 라인업 중간, MassMan과 Qu 사이 FunkyBrothers는 아시아인, 아니 세계시민으로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3국을 연결했다. 꿈꾸고, 고민하고, 좌절하지만 무엇보다 현재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정서를 FunkyBrothers는 노래한다. 프랑스인으로 대만에 정착한 데미안이 연주하는 오래된 색소폰은 향수 어린 사운드를 선사한다. 기타, 베이스, 드럼 뿐만 아니라 색소폰과 트럼펫, 키보드가 함께 내는 섬세하면서도 힘찬 음악이 보컬 Lea의 편안하면서도 소울풀한 음색에 어우러져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경쾌한 Funk를 만들어낸다.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인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은 편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거리가 가까운 만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FunkyBrothers의 음악은 보여줬다. 눈에 띄는 곡은 G-IDLE의 노래 ‘Queencard’의 후렴구를 품고 있는 ‘我這邊有很多的Funky’(난 Funky가 많아)다. Lea의 보컬에서 묻어나는, 깜짝 놀랄 정도로 익숙한 트로트풍 ‘뽕끼(Bbongkki)’가 케이팝의 트렌디함으로 물 흐르듯 연결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대만은 ‘한류’라는 말이 만들어진, 한국 문화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Do you feel my energy’(나의 에너지를 느끼고 있니)라는 밴드의 물음에 ‘Yes’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의 스트레인지프룻에서 대만 밴드 FunkyBrothers가 연주하고 있다. 사진=CHEN Chia-Hui
 
“울었다, 현실, 품었다, 진실, 마음은 끝이 없다“ - Qu, ‘Switch’ 中에서

무대 뒤로 흰 꽃잎이 날리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Qu의 무대는 단연 가장 충격적이었다. 보컬 Yoko와 키보드 겸 보컬 Mako가 흰 옷을 입고 노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MassMan의 음악이 패배를 앞둔 전투에서 내지르는 환희의 함성이라면, Qu의 음악은 죽은 자들의 피를 흡수한 땅에서 올리는 제의(祭儀)다. 강력한 록사운드의 Qu는 앳된 목소리로 세계의 부조리함을 고발한 뒤, 세상을 지배해 온 뿌리 깊은 폭력성에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분노한다. 대표곡 ‘Switch’ 속 멤버들은 다 같이 주문을 외는 듯한 웅얼거림을 내뱉으며 자신들만의 의식을 쌓아간다. Qu의 음악은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어린아이가 올리는 속죄의 기도이자 무녀의 속삭임이다.

그들의 뿜어내는 에너지가 무시무시할 정도였기에, 관객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생기스튜디오에서는 밤 늦은 시간 ‘앙코르’ 요청이 이어졌다. Qu는 앵콜곡 ‘Strawberry tree’로 순수와 번뇌의 제의를 마쳤다. 스트레인지프룻 관객석에선 ‘알러뷰(I love you)’ 혹은 ‘아이시테루(愛してる)’라는 사랑 고백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우리가 아는 일본어는 그것 뿐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답은 현장에 있다. 기성의 질서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 인디음악이 품고 있는 절대로 식지 않을 에너지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분노라는 이름의, 질주라는 이름의, 그리고 환희라는 이름의 구원으로 부른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