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학살의 땅 르완다, 아프리카 발전의 교과서로
지난달 17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카네기멜런-아프리카대(CMU-Africa)에서 11회 졸업식이 열렸다. 미국 카네기멜런대가 르완다 정부의 협력 요청을 받아들여 2011년에 문을 연 아프리카 캠퍼스다. 이날 정보기술·컴퓨터공학·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16국 출신 졸업생들이 석사모에 가운을 입고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피츠버그 본교에서 날아온 제임스 개릿 교무처장은 축사에서 “아프리카는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다. 이 대륙의 기념비적 순간에 과감히 참여해 달라”며 졸업생들을 격려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세계적 명문으로 꼽히는 카네기멜런대가 남아프리카공화국·나이지리아·에티오피아 같은 정치·경제 대국을 제치고 키갈리에 아프리카 분교를 연 것 자체가 르완다의 상전벽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30년 전 끔찍한 제노사이드(인종 대학살)가 일어난 비극의 나라는 이제 아프리카 최고 수준의 치안과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1994년 발생한 제노사이드는 다수 후투족(族)이 소수 투치족을 상대로 자행했다. 약 100일간 100만명 넘는 사망자가 나온 20세기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석 달간의 제노사이드가 1994년 7월 폴 카가메 사령관(현 대통령)이 이끄는 투치족 반군 조직 르완다애국전선(현 집권 여당)에 의해 진압됐을 때, 르완다는 전국이 폐허였다. 어렵게 과도 정부가 들어섰지만 다수 아프리카 국가가 겪었던 내전→정정 불안→경제난의 악순환으로부터 르완다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르완다는 이런 예상을 뒤엎고 아프리카 ‘발전의 교과서’로 언급된다.
2000년 과도 정부 대통령을 거쳐 2003년 정식 취임한 카가메는 우선 부족 갈등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2001~2012년 운영한 마을 단위 법정인 가차차(’풀’이라는 뜻)를 통해 제노사이드 관련자들을 심판하면서 응징과 보복이 아닌 용서와 화해 쪽으로 결론이 나도록 했다. 전 국민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 단위로 곳곳을 쓸고 닦으며 기반 시설을 점검하는 마을 청소(우무간다)도 정례화했다. 이 과정에 1970년대 한국 새마을 운동을 ‘교과서’로 삼았다고 알려졌다. 제노사이드 시작일(4월 7일)과 종식일(7월 4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국민이 함께 추모하도록 하며 화합을 도모했다.
이런 노력으로 내정이 안정되자 국제사회의 경제 원조가 답지했고, 경제 성장에 탄력이 붙는 선순환 구도가 형성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00달러 정도로 높지 않지만, 연평균 8% 안팎(2018~2022년,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년 제외)의 경제성장률은 아프리카 최고 수준이다. 르완다는 매년 10%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2050년까지 ‘고소득 국가’에 진입한다는 ‘비전 2050′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2017년 대선에서 98.8%라는 기록적 득표율로 당선됐던 카가메는 오는 7월 선거에서도 대이변이 없는 한 압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장기 집권 체제가 고착되면서 권위주의 색채가 짙어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2015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카가메는 2034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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