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퇴진도 ‘신의 한 수’… MS 전문경영인에 맡겨 시총 10배로[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2024. 6. 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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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창업자는 누굴까.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를 꼽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가 창업한 MS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4300조 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기업이 됐다. PC 운영체제(OS)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 윈도나 웹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MS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다. 현재 가장 뜨거운 인공지능(AI) 기술 분야에서도 MS는 앞서 있다. 생성형 AI ‘챗GPT’를 내놓은 오픈AI에 크게 투자하며 AI 시대를 이끌고 있다. 게이츠는 MS 최고경영자(CEO)로 일할 때는 물론이고 은퇴 이후에도 다양한 방면으로 세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업가다.》





45세에 CEO 사임후 시총 4300조원


게이츠는 미 하버드대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MS를 차린 ‘드롭아웃’(대학 중퇴) 창업자인데 나중에 하버드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어린 시절 친구인 폴 앨런과 1975년 MS를 세웠다. MS는 1980년대 초반 PC 회사인 IBM에 OS인 MS-DOS를 제공하면서 급성장했다. 1985년부터 상업화한 MS윈도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MS는 1995년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위권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게이츠가 학교를 그만두고 회사를 창업한 과정만큼 MS 경영에서 손을 떼는 과정도 범상치 않았다. 2000년 게이츠는 한창 일할 나이인 45세에 CEO 자리를 내주고 이사회 의장과 최고소프트웨어설계자(Chief Software Architect)로 물러났다. CEO는 스티브 발머가 맡았다. 게이츠는 2014년에는 이사회 의장도 사임했다. CEO인 발머 역시 함께 퇴임했다. 후임 CEO는 인도계 미국인인 사티아 나델라가 맡았다. 나델라는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학 석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MS에서 일하며 CEO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게이츠는 2020년 MS 이사회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최대 주주로서 회사 바깥에서 나델라의 경영을 감시하고 또 후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윈도→클라우드→AI 끝없는 도전
창업자인 게이츠가 떠난 MS는 어떻게 됐을까. 창업자가 떠나면 회사는 구심점을 잃고 고꾸라질 수 있다. MS는 달랐다. 나델라 CEO 밑에서 시가총액이 약 420조 원에서 약 4300조 원으로 뛰었다. 10배로 성장한 셈이다. 발머가 CEO, 게이츠가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2000년부터 2013년까지 MS는 주가가 오히려 약 40% 떨어졌다. 이 기간 휴대전화 OS 소프트웨어 시장을 구글(안드로이드)에 내주는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나델라가 전권을 쥐면서 MS는 다시 상승세를 탔다.

MS의 부활에 게이츠의 역할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대주주로서 나델라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다. 나델라는 윈도라는 ‘캐시카우’(확실한 수익원)만을 바라보는 기존의 전략에서 벗어나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시장에 재빠르게 투자하고 아마존, 구글과 함께 클라우드 시장을 선점했다. AI 기술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빅테크 중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업자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과감한 혁신과 투자는 성과로 이어졌다. 2010년 초 애플에 시가총액 1위를 뺏긴 MS는 2020년대 1위 자리를 되찾았다.

MS를 떠난 게이츠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MS라는 둥지를 떠나서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의 기부액은 현재까지 약 110조 원에 이른다.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인류 건강 및 교육 등 인류가 직면한 보편적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깨끗한 식수 및 깨끗한 화장실을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대학을 포함한 많은 교육기관에 기부함으로써 좋은 교육이 더 많은 학생에게 제공될 수 있게 노력하였다.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영리 기업들에 투자해 창업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인 MS를 떠나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이자 자선가로 성장한 것이다. 게이츠 외에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등 미국의 억만장자 창업자들이 자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정했다.


“재산 99% 기부” 자선가로 새 삶

게이츠의 자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MS의 대주주를 부모로 둔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MS와 떨어져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 버크셔해서웨이를 창업한 버핏,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의 자녀들도 회사 경영에 참여한다는 얘긴 아직 듣지 못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 기업공개(IPO)를 한 미국 창업자 중 약 3%만이 가족에게 CEO 자리를 승계하고 나머지 97%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그러한 선택 덕분에 그중 많은 회사들은 MS처럼 더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해 창업자와 가족들에게 더 큰 부를 안겨주었다. 또한 창업자들은 시간이 자유로워져서 또 다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여생을 보낼 수 있고, 창업자 가족들도 물려받은 부를 이용해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서 살아간다. 자본주의의 핵심 제도 중 하나인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수 있는 주식회사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한 것이다. 즉, 주식은 가족에게 승계하여 대주주로서 소유는 지속하면서, 경영권은 전문경영인에게 승계하여 더 큰 부를 기대하는 것이다.

게이츠는 MS의 대주주로서 좋은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더 큰 이득을 얻었다. 그가 보유한 MS 주식 가치는 10배가량 증가했다. 자신은 인류의 보편적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자원과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모습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을 가업이라 여기며 가족에게 CEO 지위를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눈에는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의 빌 게이츠, 누가 될 것인가

자본주의의 개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막대한 부를 일군 버핏은 “대기업의 창업자가 CEO 자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할 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자녀를 경쟁 없이 뽑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뛰어난 경영자들이 경쟁하는 대기업 CEO 지위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에게 자리를 내주어서 기업의 가치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물론 중소기업처럼 전문경영인이 선호하지 않는 곳에서는 가족의 일원이 가장 좋은 CEO 후보가 될 수 있다. 많은 통계적 연구를 살펴보면 대기업의 경우 창업자 CEO, 전문경영인, 창업자의 가족 CEO 순으로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자의 가족이 CEO로 있어야만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면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MS, 애플, 아마존, 구글 등은 다 장기 투자를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주주가 단기 성과를 강조하는 헤지펀드와 같은 단기 기관투자가로부터 전문경영인을 보호하고 감독할 수 있다면, 그들도 먼 미래를 보고 장기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의 빅테크들이 보여주고 있다.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도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전문경영인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 특성에 따라 CEO 지위를 자동 승계하지 않는 기업도 늘고 있다. 전문경영인 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더 올라갈 것이고, 발전된 기업 지배구조는 외국인 투자자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게이츠처럼 대주주를 포함한 주주들의 주식 가치도 ‘밸류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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