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쫀득하고 아삭한 식감!”...매미 먹방에 흠뻑 빠진 동물들 [수요동물원]

정지섭 기자 2024. 6. 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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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년만의 역대급 매미 출현
빨간 눈한 ‘브루드’ 매미...수학공식처럼 복잡한 패턴으로 출몰
올해는 17년 주기와 13년 주기 그룹이 동시 출몰하는 해
동물원 짐승들은 역대급 영양보충 즐기는 중
시카고 브룩스필드 동물원에서 사육중인 솜털머리타마린원숭이가 매미를 폭풍흡입하고 있다./페이스북 @Brookfield Zoo Chicago

나무기둥에 뭔가 달려있어요. 멀리서 보니까 잎사귀같네요. 영롱한 금빛으로 빛납니다. 다가가보니 외계생물체 같은 낯선 모습을 하고 있는데, 속은 텅 비어 있고 등쪽이 미세하게 찣겨져있습니다. 이 기괴한 피조물은 굼벵이 껍데기입니다. 푸른 계절의 도래를 알려주는 이만한 전령도 없을 겁니다. 몇시간 전 푸르스름한 빛을 띤 매미가 길고 긴 굼벵이 시간을 보내고 땅속에서 올라와 마지막 고비인 우화를 마쳤을테지요. 텅빈 껍데기는 우화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려줍니다. 굼벵이에서 매미로 변태하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겨 채 날개를 펼치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거든요. 물론 어렵게 껍데기를 뚫고 나와 날개에 바람을 불어넣고 날아가다가 바로 새 밥이 됐을 수도 있겠지만요. 좀 있으면 곳곳에서 굼벵이 껍데기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한 번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큼지막한 나무가 온통 수백 수 천개의 굼벵이 껍데기로 둘러싸였다면요? 뭔가 그로테스크한 추상적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요? 아래 사진처럼 말입니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한 나무가 매미가 우화하고 남은 굼벵이 껍데기로 뒤덮여있다./KCRG-News9 Facebook

나무주변의 굼벵이 껍데기가 마치 짐승 사체 주변에서 우글거리고 있는 구더기 같습니다. 이 사진은 얼마 전 미국 아이오와주의 TV방송국 KCRG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왔습니다. 이런 장면이 지금 미국 곳곳에서 펼쳐지기 시작했고, 앞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몇 달동안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자연스럽게 엄청난 마릿수의 매미들이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다시피할 거고요. 그 중의 절반은 수컷일 테니 우렁차게 내지르는 울음소리에 역대급 소음의 발생으로 이어질겁니다. 전대미문의 매미의 습격이에요. 아무리 매미의 수명이 길어봤자 한달 이라지만, 이들의 출현으로 세기말적 풍경이 펼쳐질겁니다. 그런데도 미국 사회는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이미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거든요.

17년 굼벵이 시절을 마치고 어른벌레로 우화한 매미./National Parks Service Facebook

저 어마무시한 양의 굼벵이 껍데기안에 들어있던 놈들은 그냥 매미랑은 결이 좀 다른 종입니다. 한반도를 포함해 전세계에는 2000여종의 매미가 살고 있는데요. 종류에 따라선 길게는 굼벵이 시기를 17년이나 보내기도 하죠.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여느 매미들과 달리 희한한 습성으로 번식을 하는 놈들이 있어요. ‘브루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주기 매미입니다. 외계생물을 연상시키는 새빨간 눈이 인상적이에요. 그런데 외모만큼이나 살아가는 방식도 신비롭고 신기합니다.

솜털머리타마린원숭이가 매미성충을 뜯어먹고 있다./Brooksfield Zoo Facebook

오랫동안 매미를 지켜보며 관찰·연구 성과를 축적해온 과학자들은 ‘브루드’들이 서식 지역에 따라 그룹으로 나뉘며, 고차원 수학 공식처럼 일정한 패턴에 따라 출몰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패턴이란 이런 겁니다. 굼벵이 시절이 17년인 일반적인 매미라면 17년 전 부화한 녀석들은 올해 볼 수 있고, 16년 전 부화한 녀석들은 내년, 15년 전 부화한 녀석들은 내후년에 볼 수 있을텐데요. ‘브루드’들은 이런 통념을 거부합니다. 한꺼번에 땅밖으로 나왔다 짧지만 뜨거운 삶을 산 뒤 일제히 산란을 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16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지하 공백기를 가진 뒤 17년 뒤에 다시 우르르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데 서식지에 따라 소그룹별로 나뉘고 있고, 출몰년도는 조금씩 다르다보니 얼핏 매년 출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게다가 브루드 중에는 17년이 아니라 굼벵이로 13년을 사는 종류도 있거든요.

매미 한마리를 먹어치운 미어캣이 두번째 매미를 먹으려고 하고 있다./Brooksfield Zoo Facebook

이 브루드 매미의 생태 주기 측정은 고차방정식을 알아내 도식화하는 것만큼 복잡합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굼벵이 17년’쪽에 속하는 브루드 그룹이 13개, ‘굼벵이 13년’쪽엔 4개가 있는 걸로 파악됐습니다. 그런데 이 17개 그룹 중에는 유독 엄청난 숫자로 부화를 하고 울음소리도 귀를 찢을 듯 우렁찬 그룹들이 있어요. 그 중 대표적인게 17년마다 나타나는 브루드 13 그룹과 13년 주기인 브루드 19그룹입니다. 브루드 13은 동부와 남부 지역에 중점 출몰하고 브루드 19는 중서부까지 모습을 드러내왔습니다. 이들이 17년 혹은 13년주기로 출몰할때마다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고 지축을 흔드는 굉음으로 매미의 위력을 과시해왔습니다. 두 그룹이 동시 출몰하는게 바로 올해예요. 브루드 13은 직전 출몰년도가 2007년이고, 브루드 19는 2011년이기 때문에 이들의 출몰주기를 감안하면 올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 된 거죠.

다람쥐원숭이가 매미를 보이는대로 먹어치우고 있다./Brooksfield Zoo Facebook

13년과 17년의 최소공배수를 헤아리면 직전의 동시 출몰연도가 언제인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어랏, 그런데 13과 17은 모두 공약수가 1말고는 없는 소수(素數)지간이네요. 13과 17을 곱하니 221년입니다. ‘브루드 13′과 ‘브루드 19′가 동시에 출몰한 가장 최근 연도는 지금으로부터 221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간 1803년이네요.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이 대통령을 맡고 있던 시기고 한반도에서는 열 한 살 나이에 보위에 오른 ‘소년 임금’ 순조가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통치할 때네요. 세계가 근대로 이행하는 혁명의 기운으로 꿈틀할 시기였죠. 그 이후에 221년만에 맞이한 역대급 매미떼 출몰입니다. 이들이 생태·생애 주기를 꼼꼼히 관찰해서 기록했기에 일식·월식처럼 신비로운 자연현상으로 예측하고 기대와 함께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길달리기새(로드러너)가 매미를 먹고 있다./Brooksfield Zoo Facebook

별안간 나타난 현상이었을 경우 공포에 질겁해 살충제, 아니 더 나아가 화염방사기 수요가 치솟았을 테죠. 미 야생동물 당국은 연초부터 메가톤급 매미때 출현을 예고하면서 이렇게 계도했습니다. ‘예고된 자연현상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저 현실을 즐깁시다’. 221년만의 매미 대출몰로 로또급 벼락을 받은 곳이 있어요. 바로 동물원입니다. 야생에서도 매미는 굼벵이·껍데기·성체 모두 포식자들의 든든한 단백질원입니다. 젖먹이짐승·새·파충류를 막론하고요. 이 천연의 먹거리들은 도시 곳곳을 뒤덮으면서 동물원 우리까지 밀려들어왔고, 동물들은 그야말로 ‘대환장 먹방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시카고 브룩스필드 동물원 스태프들은 이 천재일우의 영양보충기회를 실내 우리에 사는 동물들에게도 공유하기 위해 후두둑 떨어진 매미들을 주워다가 순도 100% 영양간식으로 공급했어요. 만화 속 주인공으로 유명한 동물들의 먹방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겐 ‘말괄량이 삐삐 원숭이’로 친숙한 다람쥐원숭이, 라이온킹의 감초 캐릭터 ‘티몬’으로 잘 알려진 미어캣, 만화시리즈 ‘루니툰’에서 코요테를 곤경에 빠뜨리는 길달리기새들도 아삭하고 쫀득한 매미의 감칠맛에 흠뻑 빠져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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