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시달리다 숨진 공무원 3년 만에 순직 인정…처벌은 아득

조해람 기자 2024. 6. 4. 2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동구청 주차관리직
‘악성민원 사망’ 되풀이에도
강제성 없는 정부 대책 한계

폭언·욕설 등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서울 강동구청 새내기 공무원이 사망 3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는 지난달 23일 공무원 A씨(사망 당시 30대)의 순직을 승인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A씨는 2020년 1월 강동구청에 임용돼 주차관리팀에서 일했다. 불법 주정차 단속 항의민원 응대를 맡았던 A씨는 악성민원에 시달리며 가족 등 주변인들에게 고충을 호소했다. 민원인들은 전화로 A씨에게 폭언·욕설을 하거나 직접 방문해 주차딱지를 내던지는 등의 행동도 했다고 한다. A씨는 임용 1년 만인 2021년 1월6일 한강에 투신했다. A씨의 시신은 두 달 만에 서울 광진경찰서 수난구조대에 발견됐다.

A씨는 사망 3년이 지나서야 순직을 최종 인정받았다. A씨 유족은 2022년 8월 인사혁신처에 순직 승인을 신청했지만, 1심 격인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지난해 5월 순직을 불승인했다. 심의회는 A씨가 겪은 스트레스가 민원 업무를 하다 보면 경험할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이며 자살의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취지로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A씨 유족은 2심 격인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다. 위원회는 심의회의 판정을 뒤집고 “반말, 욕설, 인격모독 등에 노출되는 기피부서에서 불법 주정차 민원 응대 업무를 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라며 “업무 이외에 자살에 이를 개인적인 사유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악성민원으로 공무원들이 목숨을 끊는 일은 A씨 사례 외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경기 김포시에서는 9급 공무원이 항의성 민원과 신상공개 등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행정안전부 자료를 보면 악성민원은 2020년 4만6079건, 2021년 5만1883건, 2022년 4만1559건으로 해마다 4만~5만건이 제기된다.

반면 악성민원에 대한 공직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인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공무원 직종별 자살 순직 현황’을 보면, 2018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일반공무원 순직 인정 비율은 30.4%에 그쳤다.

악성민원으로 인한 공무원의 죽음이 잇따르자 정부도 지난달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 ‘2024년 민원행정 및 제도개선 기본지침’ 등을 잇달아 내놨다. 민원인의 폭행 등 위법행위를 기관장이 직접 고발하도록 하고, 폭언·욕설을 하는 민원인의 통화 음성을 녹음하거나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보다 강화된 대책이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기관장 고발 의무화는 좋지만 위반 시 처벌 등 강제성이 없는 점은 아쉽다”며 “청원경찰이나 안전요원을 배치하면 효과적인데 이와 관련한 인력과 예산이 늘지 않았다”고 했다.

A씨 순직 신청을 대리한 조창연 노무사는 “순직 심의에서도 악성민원으로 공무원 개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충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