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고령화 심각한 한국…정부의 이주민 정책, 관계 중심 벗어나 가치·다원성 존중해야[2024 경향포럼 기고]

기자 2024. 6. 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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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다원성(pluralism)을 기반으로 한다. 다원성은 다양성의 공존을 전제로 한다. 다양성의 공존은 서로 다름에 대한 관용(톨레랑스)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차이를 관용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물리적 폭력이 아닌 소수자 보호와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공존의 시스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주주의 사회가 당면하는 가장 어려운 도전은 이주민의 다양성을 관용하고 이들을 차별 없이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주민을 포용할 수 있는지가 그 사회의 민주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포용이 이론처럼 단순하거나 말처럼 쉽지도 않다. 사회의 가장 약자이고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이주민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사회문제의 원인이라고 단죄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발달 역사가 오래된 서유럽이나 미국에서조차 이런 부당한 대우와 정치적 선동이 횡행한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해진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1960년대부터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베를린 시민의 약 40%가 이주민 출신일 정도로 독일은 다문화 사회가 된 지 오래고, 그만큼 이주민 정책이 잘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악용하고 선동하는 정치세력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면서 독일은 이주민 정착을 확대하고 이들을 사회에 포용하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이주민 또는 이민자는 체류외국인으로 정의되는데, 2023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약 251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에 육박한다. 이 중 결혼이민자 비중은 7%, 외국 국적 동포는 34%, 불법체류자(미등록외국인)는 17%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은 난민 신청자나 인정받은 인원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2023년 난민 신청자는 1만9000명가량이었고,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겨우 101명에 불과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이주민과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되었던 남유럽 국가나, 최근 난민 출신 이주민 증가와 이들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의 지지 확대 등 사회적·정치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다른 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가 매우 심각한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이주민 포용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곧 맞닥뜨릴 중대한 도전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다문화수용성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사업장은 저임금의 내국인 기피업종임에도 30%가 넘는 응답자들이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기간만 일하고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들은 이들이 숙련공이 될 수 있는 장기 노동허가제를 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주민 증가로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단기 고용허가제와 엄격한 난민 심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고령화 국가인 우리에게 외국인 노동자 고용 확대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며, 지금까지의 어정쩡한 이주민 정책은 무책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교육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외국인 노동의 질을 높이고 이주민을 사회 구성원으로 통합하려는 적극적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참고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역동성과 사회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필수이다. 혈연 중심적 사고가 여전하고 다름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문화를 바꾸는 정책과 사회적 노력 없이는, 장차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갈등의 반복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관계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면서, 다원성이 존중될 때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할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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