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홍남기 국가채무비율 축소 조작 지시…홍 "최선 판단"(종합)
전망 전제·방법 멋대로 변경, 국가채무비율 153→81.1%로 축소
홍남기 "최선의 판단"…나주범 "상관 지시 따른 것" 재심의 요청
사업의 구체성 미검토·위원회 자료 미제공 등 예타제도 부실운용
[서울=뉴시스] 변해정 기자 = 문재인정부 당시 기획재정부가 장기 재정전망(국가채무비율)을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했다는 의혹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국민적 비판을 우려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낮추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조목조목 지시했고, 나주범 당시 재정혁신국장(현 교육부 차관보)은 홍 전 부총리의 부당한 지시에 단 한 번의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채 그대로 따랐다.
감사원은 4일 이같은 내용의 '재정관리제도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홍 전 부총리의 비위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해 재취업·포상 등을 위한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나 차관보에게는 주의 요구하도록 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장기 재정전망을 실시해야 한다.
장기 재정전망은 현 제도·정책이 유지될 때 미래의 재정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목적으로, 그 결과를 토대로 지출 구조조정과 연금 개혁 등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정책 방안을 마련하게 돼 전망의 객관성·투명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정부 의지(처방)가 개입되지 않도록 하는 게 원칙이다.
기재부는 지난 2020년 7월7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최소 111.6%, 최대 168.2%로 산출되는 것을 확인했다. 9일 뒤 시뮬레이션 결과인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53.0%(당초 검토안), 129.6%(신규 검토안)로 구성된 장기 재정전망(안)을 홍 전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신규 검토안은 안일환 당시 기재부 2차관 보고 과정에서 홍 전 부총리에게 여러 안을 보고하도록 함에 따라 추가된 것이었다.
그러나 홍 전 부총리는 보고받는 자리에서 "129%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민이 불안해한다"면서 국가채무비율 급증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낮추도록 지시했다.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한다'는 핵심 전제도 '총지출(의무지출+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의 100%로 연동'하는 것으로 변경하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에 당시 재정기획심의관이 전제를 변경하면 '재량지출 증가율이 음수(재량지출 감소)인 구간이 나타난다'고 우려하자 홍 전 부총리는 "왜 불가능한 일이냐. 재량지출 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정부가 충분히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다그치며 재차 지시했다.
반면 재정혁신국장이던 나 차관보는 홍 전 부총리에 단 한 번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무자들의 반대에 "국가채무비율을 줄이면서 재량지출이 줄면 안 되느냐"고 반문하며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나 차관보는 특히 전망 전제·방법이 장기재정전망협의회의 심의·조정사항임을 알면서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 해 8월19일 협의회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바꾼 뒤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100%에 연동'하는 부당한 전제를 적용해 산출한 국가채무비율 전망치인 81.1%를 홍 전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의무지출 규모는 법정사항으로 정부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수준으로 묶어두는 것은 결국 재량지출을 조정·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즉, 미래 정부의 지출을 현재의 문재인정부가 제한하는 것이 돼 장기재정전망의 원칙 및 취지에 위배된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로 의무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총지출을 경제성장률에 연동시키면 일정 시점 이후에는 의무지출이 총지출을 초과(재량지출이 음수)하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하지만 홍 전 부총리는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다"며 전망 결과를 승인했고, 9월2일에 그대로 최종 발표해 다음날 국회에 제출했다.
나 차관보는 전망 결과 발표 전 국가채무비율 축소를 위한 전제·방법 변경이라는 비판이 예상된다며 '총지출 증가율=경제성장률' 전제가 합리적이라는 대응 논리까지 만들어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정당한 전제·방법에 따라 장기재정전망을 다시 해 본 결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48.2%로 도출됐다.
한국재정학회는 감사원에 "기재부가 적용한 전제는 국가채무비율을 낮추기 위해 총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로 통제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거꾸로 찾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판단된다"는 자문 의견을 줬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는 외부 비판 등을 우려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축소·왜곡함으로써 장기재정전망의 객관성·투명성 및 정부의 신뢰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장기재정전망의 조기경보 기능을 무력화해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지연될 우려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홍 전 부총리와 나 차관보 모두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홍 전 부총리는 별도 입장문에서 "의견과 판단을 달리하는 여러 지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 재정 여건과 예산 편성, 국가채무, 대외관계를 모두 감안해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정책 판단의 영역이지 감사원의 주장처럼 왜곡을 따질 사안이 아니라는 취지다.
나 차관보 역시 "상관의 지시에 실무적으로 검토한 것일 뿐"이라며 감사원에 재심의를 요청했다. 재심의는 감사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다.
감사원은 또 기재부가 예비타당성(예타)조사 면제 제도를 부실 운용해왔다며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국고 300억원) 이상 신규 사업은 예타 대상이나, 지역 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 국가정책적 추진사업 10호 유형에 대해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2022년 5년간 예타 면제가 크게 늘어났고 이 중 10호 면제가 급증해 대부분을 차지했다. 2020년 기준 총 면제사업 대비 10호 면제 비중이 83%에 달했다.
특히 감사원이 2014~2022년 사업부처의 면제 요청 대비 최종 면제 비율을 분석한 결과, 1호∼9호 유형의 경우 사업부처로부터 면제 요청된 326개 사업 중 175개가 면제돼 최종 면제율이 54%에 불과했다. 반면 10호는 면제 요청 사업 64개 중 99%인 63개가 면제됐다.
알고보니 기재부는 사전용역조차 실시하지 않아 사업의 구체성이 확보됐다고 보기 어려운 10호 면제 요청 사업 29개 모두(100%)에 대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기만 하면 예타 면제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7월부터 신설·운영해온 예타 면제 심의·조정기구인 재정사업평가위원회도 형식적으로 운영했다. 사업계획서와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사업 평가자료 등 예타 면제 심의에 필요한 구체적인 자료를 아예 제공하지 않거나 예타 면제 요건에 대한 기재부 자체 판단자료인 반 페이지 분량의 검토안만 각 위원에게 이메일로 발송해 동의 여부를 당일에 회신하도록 했다.
감사원이 2019년 7월부터 2022년까지의 위원회 의결 내용을 분석해보니 예타 면제 찬성은 521개, 반대 0개로 100% 찬성율을 보였다.
감사원이 민간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1∼2일 만에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의 사업을 1~2장짜리 설명서를 메일로 보내 통과를 강요하는 것은 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감사원은 "기재부는 예타조사 면제 제도를 운용하면서 면제 요건인 사업계획의 구체성 여부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거나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 충분한 검토 자료와 시간을 제공하지 않은 채 심의하도록 하는 형식적 운영을 해 국가의 비용 부담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jp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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