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풍선 날아왔다는데…" 시민들 불만 폭발한 사연
지자체 조례로 넣을 수 있다
지자체별 자율 판단 따라
등급·문구 적는 재난문자
대피 요령 등 명시 의무 없어
전문가 "재난문자는 친절해야…
지자체별 조례 두고 권고 가능"
오물 풍선 사태 계기로
조례 정비 필요성 주목
“북한에서 무슨 풍선이 날아왔다고 하는데. 재난문자라고 뭐가 온 건 봤는데,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그냥 꾹 눌렀더니 없어지더라고요.”
경기 용인시 마평동에 거주하는 고모씨(90)는 지난달 28일 도에서 발송한 북한 오물 풍선 위급 재난문자 내용을 두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4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위급한 재난문자에 대피 사유, 방법 등의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는 조례 유무가 지역별로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물 풍선’ 사태를 계기로 관련 조례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고는 고맙지만…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불친절한 위급 재난문자
경기도는 5월 28일 오후 11시 34분 도내 군부대(수도군단)가 북한의 대남 전단 추정 미상 물체를 식별함에 따라 도 민방위경보통제소와 연결된 비상 전화로 접경 지역을 포함한 13개 시·군(파주, 포천, 고양 등)에 재난문자 발송을 요청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채영 경기도의원(비례대표)에 따르면 군에서 오후 11시 3분에 요청한 뒤 시군별 중앙통제소에서 30분간 상황 공유 및 판단 끝에 재난 문자를 작성해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30분의 고민을 거쳐 보내진 재난문자가 긴급 단계만 가장 높은 ‘위급’으로 설정해놓고 막상 상황·대피법 등의 설명은 불충분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위기 상황 발생시의 행동 요령을 알 수 없어 시민 혼란만 부추겼다는 것이다.
경기 수원시 인계동에 거주하는 김모씨(30)는 “큰 재난문자 경고음에 전쟁이라도 났나 싶어 벌벌 떨었다”며 “왜 보낸 건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이 부족해 별 상상을 다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형식상 가이드라인 있지만 최종 발송은 '지자체 자율'로 제각각
재난문자는 행정안전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위험 상황에서 정부 부처 등이 전국 각 시·도에 발송 요청을 한 뒤 보낼 수 있다. 이때 지자체별로 필요에 따라 관련 조례를 두고 시민 안전을 위해 포함할 내용 등을 정할 수 있다. 재난문자의 위험 분류와 경보 등급, 내용 등의 구성은 지자체 자율 판단에 따른다.
서울시는 △재난 발생 위치 및 시간 △대피가 필요한 경우 대피 방법 △대피소 위치 등을 재난문자에 담도록 권고하는 ‘서울특별시 재난 예보·경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시행 중이다. 지난해 경계경보 위급 재난문자 내용이 부실해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자 개정했다.
경기도를 비롯한 대다수 지자체는 이러한 별도 조례가 없다. 구체적인 대피 요령 등을 적을 의무를 적용받지는 않는 것이다.
도에서 오물 풍선과 관련한 재난문자 최초 발송 당시에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상황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시민 반응이 다수였다. 빠른 경고 조치는 도움이 됐지만, 이후 추가적인 안내가 없어 불안한 상태에서 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다는 것이다.
도민들은 위험한 일을 숨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에 ‘무서워서 떨고 있다’는 이들과,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니 무시한다’는 안전 불감증을 호소했다. 김모 씨는 “앞으로는 최소한 대피 방법이라도 자세하게 안내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 관계자는 “처음 군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았을 때 긴박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며 “90자밖에 적을 수 없어 우선 경고하는 역할에 집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위급 재난문자로 경고한 이후 상황 설명이나 안전 안내를 포함한 ‘대국민 안전 안내문자’를 추가적으로 보낼지 고민했지만, 늦은 밤 시민 피로도만 높이게 될까 우려해 보내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 “지자체 조례로 정해 재난문자에 대피 요령 등 명시해야”
전문가들은 재난 상황별 대피 요령 등의 정보를 보다 친절하게 알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별 관련 조례를 정비하는 등의 방식으로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서울시 조례를 참고해 전국 각 지자체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세부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진 목원대학교 소방안전학부 교수도 “재난 문자가 막연한 경고 문자로 끝나선 안 된다”며 “재난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행동 요령, 구체적인 지시를 꼭 포함해야 시민 안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시민의 안전 의식을 높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 교수는 “평상시 사람들이 자주 활용하는 SNS 등 민간 앱에서 주요 재난의 대피소·행동 요령 등을 자주 노출해 정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 교수는 “결국 ‘안전 문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경기도는 오산시에 안전체험관이 딱 하나 있는데, 체험관을 늘리는 등 안전 교육과 훈련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번 재난문자에는 ‘미상 물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부연 설명이 표기되지 않아 도민들을 당황하게 했다”며 “재난 예보·경보 발령 사유, 재난 발생 위치 및 시간, 대피방법 등을 포함한 조례를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경기도는 당장 도 차원의 내부 가이드라인을 보완하는 등 개선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대국민 안전 안내 문자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적절한 정보 제공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민방공 사태 발생 시 재난문자를 보내는 부서 내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도록 준비하고, 사회재난과·자연재난과 등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타 부서에는 조례 마련 등을 건의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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