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의 말의 힘]낭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하여
낭만이 떠난 지도 오래되었다. 격정도 함께 떠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비가 와도,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을 찾지 않는다. 낭만은 어디로 떠났을까? 여러 해명이 가능하다. ‘먹고사니즘’ 탓일 수도 있고 ‘귀차니즘’ 탓일 수도 있다. 혹자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견디며 하루를 버티고 삶을 이어가고, 혹자는 ‘소확행’의 즐거움으로 하루를 꾸미며 인생을 장식한다. 소위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게 낭만이 사라진 시대의 풍경일 것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허전한 시대 풍조가 그 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말이다.
“숭고는 설득이 아니라 황홀로 청중을 사로잡네. 경이는 모든 것을 뒤흔들고 설득과 즐거움도 항상 압도하네. 설득은 인간적인 재량에 달려 있지만, 저 위대함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청중을 압도하네. 발견기술과 소재배치의 뛰어남은 한두 구절에서는 드러나지 않네. 텍스트 전체를 살펴야 간신히 드러나네. 하지만 적기에 출현한 숭고는 마치 벼락처럼 모든 것을 흩어버리고 단박에 연설가의 위력을 부각시키네.”(<숭고론>, 4장)
말이 가슴이 아니라 기술에 의존하면서부터 낭만은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호쾌하다. 혹자는 3세기에 활약했던 롱기누스의 말로, 혹자는 1세기에 살았던 어느 수사학자의 말로 본다.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숭고론>은 로마 정치가 황제정에서 공화정으로 회복하는 것을 염원하는 책이기에. 자유의 회복은 말기술이 아니라 신적인 숭고함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그 시작이 자유로 향하는 용기에 있음(laudatio fortitudinis)을 천명하는 책이다. 책이 근대 ‘낭만주의’라는 격동의 불씨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을 선도했던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용기의 불꽃을 심어준 책이었다.
따라서 지금 낭만이 떠난 이유가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장삼모사’의 태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낭만주의를 주도했던 가객과 시인이 세상의 중심에 섰던 시절에 대한 기억마저도 지금은 ‘가물가물’하기에.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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