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닻 올린 의료개혁, 말보다 돈주머니가 필요할 때
최근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중증 및 필수의료 보상 강화, 의료 공급 및 이용 체계 정상화, 전공의 업무부담 완화 및 수련의 질 제고,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라는 4가지 우선 개혁과제에 대한 대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에 산적한 문제가 이들만은 아니지만, 의료개혁이라는 주제가 정책 의제화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논의될 대책들이 단순히 피상적으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재원을 함께 마련하고, 그 재원을 효과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재원 마련 및 운영에 관한 구체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계획이 없다 보니 대책들이 논의에 그치며 흐지부지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개혁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 그 재원 마련 및 지출에 관한 다음의 4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재원 지출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 과거 보건의료, 특히 의료 분야의 개선 대책이 마련되면 상당수가 건강보험 재원에 의존해 행위별수가제 방식으로 집행되었다. 즉 개별 의료 행위에 보상하는 일종의 ‘수가’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수요의 불확실성 시대에 이러한 방식은 한계점이 보다 명확해졌고, 이제는 지불보상 방식의 다원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단순히 진료량이 많다고 더 큰 보상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진료 성과가 더 좋은 의료기관에 더 큰 보상을 줄 필요가 있다.
둘째, 재원의 주머니를 여러 개 확보해야 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의 격언은 보건의료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건강보험 재원만으로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에 특별회계 신설 혹은 지역의료 발전기금과 같은 새로운 기금 설치와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 그 목적은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비하고,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에 대응하며, 불확실한 미래의 보건의료 수요 발생에 대비하며, 새로운 보건의료 분야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각 재원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복잡한 모양의 전체 퍼즐을 맞추는 데 다양한 모양의 작은 퍼즐 조각이 필요하듯,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한 유형의 재원 투입이 필요하다. 앞으로 보건의료 분야가 안보와 같이 국가의 본질적인 분야로 간주된다면 고정비용에 대한 지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예산 및 기금은 고정비용에 대한 보상, 건강보험은 변동비용에 대한 보상이라는 대원칙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재원을 집행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대신, 그에 따른 책임 및 성과를 요구해야 한다.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지방정부의 역할이 매우 미미했는데, 각 지역의 문제는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헬리콥터 부모같이 모두 해결해주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 지역의 문제를 우선순위에 맞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재원에 대한 권한을 주되, 그에 따른 책임 및 성과를 요구해야 한다. 불안할 수 있지만, 지금은 각 지방정부가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 더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들 4가지 제언이 앞으로 의료개혁 과정을 거치며 더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 의료개혁을 현실화하려면 현장의 정책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건강보험과 국가 재정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별도의 주머니는 어떻게 운용해 나갈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이번 의료개혁의 진정성은 그 재원의 마련에서부터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말’보다 행동, 즉 ‘돈주머니’를 마련하고 이를 여는 것이 필요하다.
옥민수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예방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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