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사라져가는 미래

기자 2024. 6. 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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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긴장에 대한 간헐적인 보도를 빼놓고는 한국 관련 뉴스가 별로 없는 이곳 포르투갈에 얼마 전 저출생 문제와 관련된 보도가 있었다. 출산력 비교를 위해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지표인 합계출산율(가임 여성이 일생에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과 관련,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한국의 수치가 0.72명인데 포르투갈은 1.35명이라고 보도했다. 포르투갈은 코로나 때문에 낮아진 신생아 출생률이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저출생과 노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는 나라에 따라 경중의 정도는 다르지만 지금 거의 모든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결코 풀기 쉽지 않은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저출생과 고령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인가를 두고 나라마다 서로 다른 접근 방식도 보인다.

복지국가의 역사가 나름대로 긴 서유럽에서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연금문제의 해결을 둘러싼 견해 차이가 항상 중요한 사회정치적 쟁점이다. 며칠 전 사민당, 녹색당과 자민당으로 구성된 연립내각에서 결정된 독일의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쟁도 그렇다. 적어도 2039년까지 연금 수준을 소득 수준의 48%로 유지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2000억유로의 ‘세대 간의 자본’을 확보해서 주식시장에 투자, 이의 이익분으로 연금재원 부족분을 충당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개혁이다. 물론 이번 개혁이 젊은 세대에게는 불공평하고 연금 수령 나이에 큰 변화가 없기에 기업에는 불리한 개혁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한국의 논란은 이제 22대 국회로 넘어갔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한국의 연금제도 개혁에서 서유럽 복지국가의 여러 논의와 정책은 분명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과 같은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하느냐, 아니면 구조개혁이 먼저냐를 둘러싼 이견과 대립으로 시간만 끄는 것 같다. 국민연금의 기금 소진 시점이 점점 빨리 오는 조건에서 지속 가능한 재정은 물론, 국민연금으로부터 탈락한 사각지대의 빈곤 예방과 은퇴 후 적정한 수준의 소득 보장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동의는 절대적이다.

인구 감소,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2023년 한국의 국민 1인당 소득은 3만3192달러였고 포르투갈은 2만7830달러였다. 그런데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OECD 가맹국 가운데 가장 높은 40.4%인데 포르투갈은 13.8%였다. 소득 자산 중심의 이런 통계가 한국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부동산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여서 한국의 실정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삶의 마지막 구간을 힘겹게 지나면서 결국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는 한국 노인의 자살률이 OECD 1위라는 불명예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생로병사라는 인간적 숙명을 아무도 피해 갈 수 없고, 마지막 삶의 시간에 관한 각자의 책임이 엄중하다는 사실도 비켜갈 수 없다. 그러나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건강수명이 이와 비례하지는 않아 늙고 병든 사회 성원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감을 지켜주는 공동체야말로 문명사회의 조건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고령 빈곤 문제보다 저출생 문제에 지금 더 큰 사회적 관심을 쏟는 이유는 저출생 문제가 출생, 사망 그리고 이주라는 복합적인 인구 문제의 첫자리에 놓여 있고, 머지않아 올 수 있는 인구 소멸에 대한 공포심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개 인구가 감소하면 생산과 소비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어 국가 경제가 위기에 빠진다는 논거는 잘 알려졌다. 그러나 이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가족정책, 교육과 사회복지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시골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린 때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지난 몇년간 한국의 아주 낮은 합계출산율이 머지않은 장래에 인구 감소에 따른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경고는 나름대로 있었다.

해방 전후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지금은 마치 별세계의 언어처럼 들리는 ‘산아제한’이라는 표어를 보면서 보통 4~6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다. 이런 모습은 이제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점차 지구촌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견된다. 최근 워싱턴대학교(시애틀)의 한 연구팀이 1950~2010년 204개 나라와 지역의 출산율과 이를 근거로 한 2100년까지 예측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구촌에서 2021년 모든 출생아의 29%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이 비율은 2050년에 54%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설사 합계출산율의 저하가 세계적인 추세라 하더라도, 왜 유독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하게 낮아졌고 장기적으로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을 최근 자주 유럽의 언론 매체도 제기한다.

지난 4월14일 독일의 제2독일TV(ZDF)도 이와 관련해서 ‘그래서 남한은 천천히 소멸한다’는 조금 도전적인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다. 장시간 노동 때문에 가족을 위한 시간은 너무나 없고, 터무니없이 높은 자녀 교육비와 주거비용은 적령기 결혼에 장애가 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젊은 여성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 등을 저출생 요인으로 지적했다. 이와 관련, 특히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한국의 특이한 생활조건을 저출생의 주요한 요인으로 꼽고, 현재로서는 어떤 정책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프랑스·일본 답습은 안이한 생각

그러면 저출생 대책에서 성공적인 사례는 없는가. 이와 관련해 몇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북유럽의 몇 국가와 더불어 가장 모범적인 나라 중 하나였다. 직장과 양육의 균형을 가능케 한 보육과 육아 정책,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로 표상되는 프랑스의 개방적인 여성상과 가족문화 등이 긍정적인 요인이었다.

비록 2023년 유럽연합의 평균 합계출산율 1.5명보다는 높지만, 프랑스도 1.64명에 그쳤다. 올해 초 마크롱 대통령은 이른바 ‘인구통계학적인 재무장’의 긴급 처방으로 유급 출산휴가를 부모 모두 6개월 동안 쓸 수 있게 하고 봉급도 이 기간에 60%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처방이 과연 저출생 흐름을 억제할 수 있는지를 두고 전문가들은 아직 회의적이다.

사회 구조와 문화적 전통이 상당히 다른, 이런 프랑스의 사례보다는 당연히 우리는 이웃 나라 일본의 저출생 문제에 대한 대응과 정책에 관심을 더 두게 된다.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의 긴박감을 자아내는 일본의 저출생 문제는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양호한 셈이다. 일본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1.2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1995년부터 시작한 저출생 대책이 별로 효과가 없자 2022년 6월, 그동안 시행해 온 대책을 포함한 아동과 관련된 법령을 모두 통합해 ‘아동법’을 제정하고 아동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아동가정청’도 설립했다. 이렇게 저출생 극복을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저출생세도 도입해 자원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저출생 문제 해결의 전망은 밝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한 일본 언론인이 지적한, 한·일 간 미묘한 차이점을 떠올리며 일본보다 더 심각한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일본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지만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많지만, 한국은 여성을 중심으로 결혼하고 싶지 않고 아이도 갖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없다’와 ‘하지 않겠다’ 사이에는 사실 큰 차이가 있다.

전대미문의 초저출생 극복의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 이제 프랑스나 일본이 걸었던 길을 답습한다면 이는 너무나 안이한 발상이다. 새로운 이주민 정책을 통해서 노동력의 감소분을 상쇄하고 인공지능이나 로봇산업의 발전으로 높은 생산력 수준을 확보한다는 해결책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쏠리는 세계적인 관심은 한국이 과연 어떻게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논의되는 것처럼 법과 제도의 개혁, 그리고 재원 마련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생명의 행복한 시작과 평화로운 종말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어떻게 어린이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자기비판적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한다. 행복한 어린이가 행복한 인간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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