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못할 사건들이 만드는 미래[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켄 피셔는 <시장을 뒤흔든 100명의 거인들>에서 월스트리트 200년 역사에 기록될 100명을 선정했다. 투기꾼과 중앙은행가, 사기꾼, 불한당까지 월스트리트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지만, 그중 경제학자로 분류된 이는 3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세 명 중 두 사람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어빙 피셔는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얼마나 유용하지 않은지의 사례로 인용되지만, 케인스는 거의 모든 경제학자와 달리 금융시장에서 큰돈을 번 성공적 투자자로 찬사를 받는다. 이 둘과 다른 결로 인용된 거인은 웨슬리 클레어 미첼이다.
주가를 결정 짓는 변수는 크게 두 가지, 금리와 경기다. 금리는 돈의 공급이고, 경기는 돈의 수요다. 풀린 돈이 상품이나 서비스로 만들어져 돌고 돌아야 기업은 돈을 벌고, 경기 사이클은 개선된다. 기업 실적에 집중하는 투자자를 상향식 투자자로, 경기사이클에 무게를 두는 이를 하향식 투자자로 분류한다. “‘명료한(clair)’ 미첼이 없었다면 월스트리트(금융)가 메인스트리트(실물)와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라는 켄 피셔의 평가대로 미첼은 메인스트리트의 통계 표준을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하향식 투자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20년 미첼이 주도하여 만든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그의 유산이 되었다. 비영리 민간 연구조직이지만 그 어떤 기관보다 공신력은 높다. 미첼은 1945년까지 NBER의 연구 책임자로 재직하면서 각종 경제지표를 모으고, 어마어마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가 없었다면 매일매일 전 세계 경제 뉴스를 구성하는 온갖 경제지표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향식 투자자는 경기 사이클을 보고 투자한다. 호황의 정점에서 위험을 줄이고, 불황의 끝에서 주식을 사야 한다. 불황의 끝을 판정해주는 곳이 NBER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면 통상 기술적 침체라 한다. 기술적 침체와 NBER이 판명한 침체기가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NBER은 경제활동 전반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경기의 정점과 저점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침체가 나타나는 시기와 NBER이 판명한 침체기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19 침체기간도 복기해보자. 팬데믹에 따른 경기 침체 구간을 ‘2020년 3~4월’로 판단한 시점은 2021년 7월이었다. NBER은 경기 침체라고 판단할 증거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모일 때까지 최대한 기다리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2021년 7월은 글로벌 증시가 이미 뜨거워진 뒤였다. 투자자가 불황임을 최종 확인한 시점은 이미 불황기를 한참 지났을 때이다.
경기 사이클에 따른 투자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미국 중앙은행의 행보를 매섭게 관찰한다. 197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NBER에서 판단한 미국 경제의 침체 구간에 앞서 연준은 정책금리 인하를 시작한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다만 연준의 모든 인하 사이클 이후 경기 침체가 뒤따라온 것은 아니다. 1984년 11월~1986년 10월 구간은 인플레이션 및 기대인플레이션 안정에 따른 인하였고, 1995년 7월~1996년 2월은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에 따라 통화여건이 완만하게 조정됐다. 경기 침체 없는 연준 정책금리 인하기였다.
증시 낙관론의 배경은 이러한 경기 침체 없는 금리 인하 시나리오다. 지금의 미국 경제 상황은 견조한 고용을 바탕으로 소비마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따라서 연준이 이번에 정책금리 인하에 나서게 된다면 아무래도 보험성 인하(Insurance Cut)일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위대한 경제학자이자 투자자였던 케인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케인스는 1938년 “나의 투자전략은 일반적인 의견과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물가가 잡혀 금리가 안정되고, 자산 시장은 금리 안정화로 버블로 치닫는 아름다운 시나리오가 공감대를 얻어간다면, 그 반대의 가능성을 타진해보자. 더욱이 과거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사이클을 살펴보면 197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경착륙 및 침체가 예상되거나 경기 침체기에 맞물려 금리가 인하된 사례도 많다. 벗어날 줄 알았던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고금리로 인해 가계도, 기업도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미 스위스와 스웨덴이 정책금리를 낮췄고, 이제 유럽중앙은행(ECB)도 정책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경제 엔진이 급격히 식으면서 뒤따를 금리 인하(Recession Cut) 가능성도 시나리오에 포함해야 한다. 향후 1년 안에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미래는 현재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로 많은 것이 변화하고 정해지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 여부를 논하기에 이른 시점이지만 미리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훼손 시신’ 북한강 유기범은 ‘양광준’···경찰, 신상정보 공개
- [속보]‘뺑소니’ 김호중, 1심서 징역 2년6개월 선고···“죄책감 가졌나 의문”
- 안철수 “한동훈 특검 일언반구가 없어···입장 밝혀야”
- [단독] 법률전문가들, ‘윤 대통령 의혹 불기소’ 유엔에 긴급개입 요청
- 트럼프, CIA 국장에 ‘충성파’ 존 랫클리프 전 DNI 국장 발탁
- [영상]“유성 아니다”…스타링크 위성 추정 물체 추락에 ‘웅성웅성’
- 가장 ‘작은 아기’가 쓴 가장 ‘큰 기적’…지난 4월 ‘국내 최소’ 260g으로 태어난 ‘예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