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뢰 회복’ 전제로 군사합의 깬 정부, 대북전단부터 막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4일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한 국무회의 의결을 재가했다. 이로써 2018년 이후 중단된 대북 확성기 선전방송의 족쇄가 풀렸다. 국방부는 군사합의로 제약받은 군사분계선과 서북도서 일대 모든 군사활동을 정상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를 빌미로 남북 충돌을 제어할 안전핀을 아예 뽑아버린 것은 명백한 과잉대응이다.
군사합의 효력 정지 조치는 북한이 지난달 28일 밤부터 휴지·쓰레기가 든 오물 풍선 수천개를 날리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위성항법장치 교란 공격을 해온 데 대한 대응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국내 탈북민단체가 지난달 10일 북한에 30만장의 대북전단을 띄워 보내며 먼저 북한을 자극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다. 물론 대북전단과 ‘오물 풍선’을 동렬에 놓기는 어렵다. 게다가 풍선으로 인해 차량 파손 등 민간 피해가 발생한 것도 묵과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2일 오물 풍선 살포를 멈추겠다고 밝혀 사태가 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굳이 군사합의 정지라는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아무리 봐도 지나쳤다. 이참에 눈엣가시 같던 군사합의를 폐기하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남북 긴장을 일부러 키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우기 힘들다.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다른 수단도 있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 자격으로 이달 중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룰 공식회의를 열겠다고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 도발에 엄중히 경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는 행위는 경제에도 큰 피해를 미치는 자해수단임을 명심해야 한다.
당장은 6일로 예고된 북한인권운동단체의 대북전단 추가 살포가 사태를 어떤 방향으로 몰아갈지 우려가 크다. 그걸 빌미로 북한이 풍선 살포에 나서면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치고받기’가 군사 충돌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북한이 확성기를 겨눠 포사격이라도 한다면 접경지역 주민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 계획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며 방관하고 있지만, 특정인만을 위한 ‘표현의 자유’가 국민의 안전보다 우위에 있지는 않다. 정부는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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