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법 시급한데… 국회 열자마자 "징벌적 손배제"
악의·허위보도 최대 3배 손해배상
당내서도 우려… "숙의 과정 필요"
기자협회 등 4개 언론단체 비판성명
"윤 정권 언론탄압에 날개 달아주나"
22대 국회 개원 하루 만에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사와 언론인을 향한 압수수색,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사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정제재가 남발하는 상황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될 시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방송3법 입법에 집중해야 할 시기, 대뜸 해당 법안이 발의된 데 대한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월31일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내용은 지난 21대 국회서 발의된 법안과 거의 같다. 법안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법원이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는 원 보도의 지면 및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언론현업단체들은 법안 발의에 강력 반발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4개 언론현업단체들은 3일 공동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에 날개를 달아줄 징벌적 손배제 추진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언론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여름,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를 밀어붙이다 언론개혁 우선 과제를 뒷전으로 미룬 과오가 현재 윤 정권의 언론 자유 파괴와 공영방송 장악의 길을 활짝 열어준 사실을 새까맣게 잊었는가”라며 “윤 대통령 스스로 악의적이라 규정했던 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포함해 김건희 여사 관련 보도 등 진보 보수를 막론한 대다수 비판 보도가 징벌 배상제도를 활용한 봉쇄 소송에 짓눌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배제는 지난 국회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21대 국회 개원 일주일도 안 돼 발의된 징벌적 손배제는 여러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8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직후 본회의 처리까지 예고됐으나 여야가 상정을 보류하고 국회에 언론미디어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뒤 연말까지 추가 논의하기로 합의하면서 논쟁도 일단 냉각기를 맞았다. 이후 ‘빈손 특위’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만큼 특위가 6개월간의 활동에도 실효성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법안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징벌적 손배제와 관련한 논란은 여전하다. 이미 형법으로 명예훼손죄를 벌하고 있는데 민사상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는 것은 과잉규제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법안은 “미국의 경우 위법성, 의도성, 악의성이 명백하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등을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은 표현의 자유와 입막음용 소송을 방지하기 위해 반전략적봉쇄소송법 역시 운용하고 있는 나라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인 징벌적 손배제가 없는 상태서 언론에만 징벌적 손배제를 적용하면 결국 언론의 감시 기능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성희롱을 하면 징벌적 손배 위험이 없지만 성희롱에 대한 보도를 하면 징벌적 손배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악행 자체가 아니라 악행에 대한 보도에 징벌적 손배 부담을 안기는 것은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축소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계선 방송3법 개정안의 처리가 시급한 상황에서 대뜸 징벌적 손배제부터 발의된 데 대해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 역시 큰 상황이다. MBC 한 기자는 “언론개혁 문제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뒤 징벌적 손배제를 발의했다면 이렇게 실망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숙의 과정도 없이 개원 하루 만에 낸 것부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지난 국회서도 결국 합의를 못 이뤄낸 내용을 거의 그대로 냈다. 방심위가 MBC 보도에 법정제재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언론을 단죄하려는 무기만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도 충분한 숙의 없이 징벌적 손배제를 밀어붙이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5월 초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징벌적 손배제는 언론계가 지금과 같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라며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상당한 분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제도에 대해선 충분한 숙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시간을 갖고 의견을 모아 어느 정도 큰 틀의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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