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유치의 좁은 회랑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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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자 차단을 명목으로 폐쇄된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 다리를 다시 개방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지난해 7월7일(현지시각) 프랑스 남서부 앙다유에서 “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자”고 쓴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앙다유/AFP 연합뉴스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내일(6일)부터 나흘간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진다. 회원국 국민의 직접투표로 선출된 720명의 의원이 유럽연합의 입법을 관장한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건은 극우세력의 약진이다. 강경 우파에 속하는 유럽보수개혁(ECR), 정체성과 민주주의(ID) 그룹 의석수가 이전 회기에 비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회에서 극우의 선전은 최근 몇년간 개별 회원국의 선거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 국민연합, 이탈리아형제들, 네덜란드 자유당, 스웨덴민주당 등은 자국 선거에서 집권하거나 집권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다. 정체성과 민주주의에서조차 퇴출당할 정도로 급진적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요 몇년간 치러진 독일 선거에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반이민, 반난민 정서에 기대 표를 벌었다. 이민자와 난민들이 유럽에 들어와 실업률, 집값, 범죄율이 상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불법 체류자’를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극우세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실제로 유럽의 국경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12월 이민법 개정안을 통해 이민자에 대한 복지를 줄이고 이민자 추방을 쉽게 만들었다. 그보다 앞서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건너오는 이민자들을 구금소에 최대 18개월 동안 잡아둘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스웨덴 역시 2022년부터 취업비자 발급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고 난민 영주권 제도를 폐지하는 등 이민 장벽을 높이고 있다. 올해 4월 진통 끝에 통과된 유럽연합의 신이민·난민협정은 회원국 차원의 난민 신청자 본국 송환을 용이하게 하고 기여금을 내면 난민 수용을 거부할 수 있게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민자 유입을 통제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에서 이민자를 안 받겠다고 장벽을 높이는 동안 또 다른 한편에선 자국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이민자를 더 받겠다고 난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찰되는 노동 공급 부족 현상은 인구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을 만나며 장기화할 조짐이 보인다. 노동 공급은 저숙련과 고숙련 분야에서 공히 부족하지만, 특히 디지털·친환경 전환에 따른 첨단산업 분야 전문인력 부족은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국에서 외국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전문인력이주법 개정을 통해 비자 발급의 소득 및 자격 요건을 대폭 완화했고, 올해 3월부터는 이주한 전문인력이 배우자, 자녀뿐 아니라 부모까지 초청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국가 간 인력 교류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새로 마련하고 해외 자격증 상호 인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극심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학위과정을 마친 유학생이 2~3년간 더 체류하며 구직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졸업생 비자’가 취지에 맞지 않게 남용된다며 보수 정권을 중심으로 폐지 요구가 비등했으나, 결국 제도를 현행 유지하기로 결론 내렸다. 영국 대학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이 비자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유례없이 빠르게 저출생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도 외국 인력을 대거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숙련·비숙련, 일시형·정주형 비자 모두 이미 확대일로이며 유학생 유치를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 중이다. 그러나 무작정 이민자를 받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전세계적인 인재 쟁탈전 때문에 우리나라로 이민자를 데려오기도 어렵지만, 언어, 문화, 관습이 다른 외국인들을 우리 사회에 갈등 없이 동화되게 하기도 쉽지 않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국경을 열면 이민의 이익보다 비용이 더 커진다. 유럽처럼 급진적인 정치세력이 득세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민자에 대한 반감으로 외국 인력 유치가 어려워진다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나라 시민들에게 쌓인다.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어느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인력이 부족한지, 그중 얼마를 외국 인력으로 채워야 할지 정확히 측정한 뒤, 문화와 언어가 덜 이질적인 이민자부터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받는 게 시작이다. 노동력이 아닌 사람이 온다는 점을 숙지하여 제도를 설계하고 잠재적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 이민 유입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그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예민한 균형감각을 갖고 좁은 회랑을 걸어야 한다.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세력은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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