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박민희 기자 2024. 6.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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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04 _군 부패 숙청과 현대화
강군몽을 실현하는 것은 시진핑 통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토대다. 중국이 강군몽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뤄냈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우선 대만 통일이고, 이어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몰아내고 중국 세력권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10월31일 푸젠성 구톈에서 전군 지휘관 회의를 연 뒤, 1929년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구톈회의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마오쩌둥 사진 앞에 서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2014년 10월 말 중국 남부 푸젠성 구톈(古田)이라는 작은 마을에 중국인민해방군 지휘관 400명이 모였다. 1929년 마오쩌둥이 ‘당이 총(군)을 지휘한다’는 원칙을 확립하고 당과 군의 권력을 장악한 ‘구톈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85년 뒤 시진핑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은 같은 장소에서 ‘신 구톈회의’를 열어 자신이 마오쩌둥과 비슷한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연출했다. 우선 그는 “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의 핵심은 ‘절대적'이라는 말에 있다. 불순물이나 가식이 없는 배타적이고 완전하며 무조건적인 충성이어야 한다고”며 군의 절대적 충성을 요구했다. 군내 저항세력을 향한 선전포고가 이어졌다.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쉬차이허우 사건이다. 이 교훈을 깊이 반성하고, 그 영향은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쉬차이허우는 누구인가. 중국인민해방군에서 친 장쩌민 세력을 대표하던 거물이다. 2012년까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맡고 있었고, 군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거대한 이권을 챙겼다. 2012년 11월 최고권력자가 된 시진핑은 속전속결로 쉬차이허우를 겨냥했다. 2014년 3월 그를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해 6월30일 당적을 박탈했다. 그로부터 넉달 뒤 시진핑은 구톈에서 열린 회의에서 군 지휘관들을 향해 충성하지 않고 부패한 이들은 쉬차이허우와 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구속된 쉬차이허우는 2015년 3월 암으로 사망했다. 그 직후 곧바로 또다른 거물인 궈보슝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대한 뇌물 수수 혐의 조사가 시작됐다. 궈보슝은 다음해 무기징역형과 함께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궈보슝과 쉬차이허우는 군 인사와 무기 암거래로 천문학적인 축재를 한 부패의 몸통으로 지목되었다. 이들이 장성 인사에서 소장 진급에는 1인당 최대 1000만 위안(약 19억원), 중장 승진에는 최대 3000만위안(약 57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뇌물로 계급을 사고팔 정도로 부패한 인민해방군의 실상이 공개된 것이다.

시진핑 1기 5년(2013~2018년) 동안 부패 혐의로 처벌받은 중국군 인사는 장성급이 100명 이상, 장교는 1만3천여명에 이른다. 장쩌민 전 주석과 연결된 군 내부 세력들을 겨냥한 것으로, 당시 이들이 당과 군에서 막강한 지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진핑에겐 대담하고 위험한 정치적 모험이었다. 시진핑이 군의 강한 반발을 누르고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인맥이다. 부친 시중쉰 전 부총리가 혁명 원로로서 군 내부에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시진핑도 중앙군사위 비서장이었던 겅뱌오의 비서로 정치 경력을 시작해 3년의 군 경력이 있다. 부인 펑리위안은 인민해방군 소속 가수로 현재도 군 장성이다. 특히, 시진핑과 마찬가지로 혁명 원로의 자손들인 군 내부 훙얼다이(紅二代) 세력이 시진핑을 지지한 것이 관건이었다. 인민해방군 내부에는 마오쩌둥과 류샤오치, 후야오방, 리셴넨 등 혁명 원로들의 자녀와 사위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쉬차이허우 등이 이권을 장악해 군을 부패시킨 상황에 분노했고, 시진핑의 숙청과 군 개혁을 강력하게 지원했다.

시진핑이 2015년부터 2017년에 걸쳐 단행한 군 개혁은 대담한 내용이었다. 첫째, 중앙군사위 주석인 시진핑에게 군의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다. 독자적인 실권을 가지고 있던 총정치부, 총참모부, 총후근부, 총장비부를 폐지하고 중앙군사위 통합작전지휘센터를 신설해 총사령관을 시진핑이 맡았다. 총사령관인 시진핑의 명령이 실전 부대까지 신속하게 직접 전달되도록 지휘 체제를 정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둘째, 현대전에 맞도록 군을 재편성해 전투 능력 향상을 도모했다. 육군 중심이던 230만 병력 가운데 30만명을 줄이고, 육해공군 외에 핵과 미사일 전력을 담당하는 로켓군과 전자·정보전, 사이버 작전, 우주전 등을 맡는 전략지원군을 신설해 첨단 작전 능력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각 지역에서 토호처럼 독자적 세력으로 운영되어온 7개 군구는 5개 전구(戰區) 체재로 재편했다.

시진핑은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2017년 10월 19차 당대회에서 “역사적 군 개혁”을 주요한 성과로 과시했다. 잇따라 최고위 장성들이 부패 혐의로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해지자 시진핑에 도전할 세력은 사라졌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처럼, 군을 장악한 시진핑의 권력은 확고해졌다. 시진핑 1인에 복종하는 ‘시진핑의 군대’로 변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군에 대한 강력한 통제는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없애고 사실상 종신집권에 나설 수 있던 배경이다.

시진핑은 군을 확고하게 장악하면서 마오쩌둥 이래 가장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가 야심차게 추진한 군의 부패 척결과 현대화 개혁은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군 지도부에 대한 부패 숙청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리샹푸 국방장관이 실각한 데 이어 로켓군 수뇌부, 주요 군수 국유기업 경영진들이 계속 조사와 처벌을 받고 있다. 거액의 국방 예산이 집중되는 핵·미사일 담당 부대인 로켓군 수뇌부의 부패가 심각하고, 이들을 통해 중국의 미사일 전력 관련 기밀이 유출돼 미국의 보고서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넘는 강력한 반부패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군의 부패가 여전히 심각하고, 시진핑이 군의 충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진핑 주석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지만, 실전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4월19일 시진핑은 2015년 직접 신설했던 전략지원부대를 9년 만에 해체하고, 정보지원부대, 군사우주부대, 사이버전 부대로 나눠, 중앙군사위가 직접 지휘한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직접 신설했던 부대를 해체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보, 우주, 사이버전 능력 향상이 당초 구상만큼 진전되지 못하자, 각각의 분야를 나눠 전문성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직접 이를 지휘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4월19일 시진핑 주석이 인민해방군 정보지원부대 창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강한 군대’는 시진핑 통치의 핵심이다. 시진핑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직후인 2012년 12월 광저우의 군부대를 시찰하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중화민족이 근대 이래 가져온 가장 위대한 꿈”이라며 “중국몽은 강국몽이고, 바로 강군몽( 强軍夢)”이라고 강조했다. 청말부터 시작된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국이 겪은 ‘치욕의 100년’은 중국의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이며, 강력한 군대가 중국몽 실현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강군몽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통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토대다. 나아가, 중국이 시진핑의 통치 아래 강군몽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뤄냈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우선 대만 통일이고, 이어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몰아내고 중국의 세력권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단기간 안에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려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속전속결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수렁에 빠진 것을 보면서 점령 전쟁으로 치러야 할 막대한 비용과 어려움을 깨달았고, 중국 경제 문제도 복잡하다. 무엇보다도 중국군의 부패와 실전 능력 부족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도박에 나설 수는 없다.

시진핑 주석은 통치 정당성의 핵심으로 강조해온 ‘대만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현재 중국은 최대한의 정치, 경제적 압박과 군사적 위협으로 대만의 굴복을 유도하는 ‘전쟁 없는 통일’ 시나리오를 추구한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다음 시나리오는 군사력으로 대만을 포위하는 봉쇄 작전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세번의 대만 포위 군사 훈련을 진행했다. 장기적으로는 무력 통일 카드를 내려놓지 않은 채 미국의 힘이 쇠퇴하는 유리한 정세를 기다릴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대만 통일’ 깃발을 높게 들수록 대만은 중국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중국의 초조함도 커진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취임사에 중국은 거세게 반발하면서, 세번째 대만 포위 훈련을 벌였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을 향해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는 점점 강경해질 것이다. 대만해협에서 강군몽이 일으키는 풍랑도 더욱 거칠어진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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