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서 다시 징벌적 배상제라니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2024. 6. 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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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안이 제출됐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되면 손해배상금을 실제 손해의 3배까지 책정할 수 있도록 하고, 정정이나 반론, 추후보도를 원 보도와 같은 지면에 같은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6개월로 되어 있는 언론중재법에 따른 소송 제기 기간을 2년으로 늘리는 내용도 있다.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부터 짚어본다. 언론에 대한 소송에서 원고승소율이 낮다는 자료를 제시했는데, 승소율 낮은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어서는 아니다.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 남발 문제를 빼놓고 승소율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금이 낮다는 주장도 함께 나오기 마련인데, 길거리에서 얼굴만 살짝 나와도 초상권 침해를 인정할 정도가 되다 보니 명목상의 배상금만 주는 판결이 많다. 배상금 평균이 내려가는 이유다. 지금도 수억 원대의 손해배상 판결도 나온다. 미국과 배상금 평균을 비교하려면 미국에서라면 소송 대상이 되지도 못할 사안들은 계산에서 빼야 맞다.

과거 민법만 있을 때는 정정보도 소송 등을 내려면 언론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했다. 대신 보도 시점에서 10년 이내, 보도가 있음을 안 때로부터 3년 이내로 제소 기간을 넉넉하게 준다. 이것을 보도로부터 6개월, 보도가 있음을 안 때로부터 3개월로 대폭 줄이는 대신 언론의 고의나 과실과 상관없이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원한다면 민법에 따른 소송도 낼 수 있다. 마치 6개월이 넘으면 아예 소송을 낼 수 없는 것처럼 몰아가면 안 된다. 언론 피해자를 위해 청구 요건을 완화하는 대신 신속한 언론 분쟁 처리를 위해 언론중재법을 제정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다.

정정이나 반론, 추후보도를 원래 보도와 같은 지면에 같은 분량으로 하도록 한다는 것은 보도가 이루어지는 실상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무엇보다 정정과 반론, 추후보도는 명확히 구분해서 다뤄야 하는 개념이다. 정정과 반론 등의 효과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무책임하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가 언론장악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을 강력히 규제하자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까? 21대 국회, 더구나 여당일 때 그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아있는 것일까? ‘기승전 징벌적 손배제’라고 할 정도로,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언론개혁이라는 이 무한반복되는 돌림노래에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법안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정 언론을 악의 축이라면서, 이런 법은 그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실제로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모든 언론을 겨냥한 것이다. 특정 언론만 규제하는 법이 존재할 수도 없다. 규제를 통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손보겠다는 생각은 현 정부의 언론 정책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상대가 하는 것은 언론장악이라면서 자기들이 하려는 건 언론개혁이라고 한다.

정 의원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들과 함께 발의한 것은 더 고약해 보인다. 공영방송 관련 법안들은 문재인 정부 초기 여야 간 합의까지 갔던 것을 뒤집고는 정권을 잃은 뒤에 급히 처리하려다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혔던 법안이다. 공영방송들의 이사진이나 경영진 교체 시점이 다가오고 있으니 언론노조 등 현업인 단체들은 이들 법안 처리를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 언론노조 등이 명확하게 반대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함께 발의한 것은 이 법안에 대한 비판을 막아보려는 꼼수로 비친다.

현 정부의 초현실적인 언론 정책의 문제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언론 관련 사안을 모조리 완력으로 다루려는 태도는 보수 언론까지 질리게 만들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맹렬히 비판하던 민주당이 다시 징벌적 배상제로 돌아왔다. 워낙 현 정부의 언론 정책이 엉망이니 언론계도 징벌적 손배제 정도는 찬성해 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야당일 때는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규제하고 싶은 속내를 감추려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22대 국회 임기 시작부터 민주당이 채찍을 들고 나선 것을 보면 그야말로 여의도 대통령 시대가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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