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에 더한 판타지 [책이 된 웹소설: 평범한 게임 보고서]
평범한 게임 보고서
현실에 더해진 환상
내 눈앞 현실이 될 미래
2007년 방영한 일본 애니메이션 전뇌코일(電コイル)은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을 그렸다.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안경 너머로 온갖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가상생물이 살아가는 '전뇌(전기 뇌)' 세계를 목도한다. 평범한 주택가는 AR이 더해지자 모험의 장소로 변해간다. 이 작품은 뛰어난 작품성으로 이듬해 일본 SF상 '성운상'의 미디어 부문에 뽑혔다. 작중 묘사한 친숙하면서도 낯선 세계가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이뤄질 거란 기대감을 줬다.
그로부터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AR 기술은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묘사해 감탄조차 나오지 않는다. 기술이 몰라보게 발전한 데다, 세계 유수기업이 보급에 나선 것도 AR를 알리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창작물로 시선을 돌려보면 AR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른바 풀다이브(Full Dive·충만한 몰두)로 일컬어지는 가상현실 소재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가상현실로의 이동이 아직까지 상상의 영역에 놓여있는 반면, AR은 일상에 존재해 신선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AR을 중심에 놓은 '검은학자' 작가의 「평범한 게임 보고서」는 각별하다. 작품은 AR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 세계는 가상현실 게임이 득세하는 가까운 미래다. 직장인이자 주인공인 '남자'는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삶의 균형을 잃는다. 유저 간 치열한 경쟁에도 지쳐가던 중 어떤 AR 게임을 접한다. '남자'는 게임 속 캐릭터들의 신으로서, 도시를 키우고 자신의 아바타인 '용사'를 육성한다.
작중 게임 플레이는 AR 안경을 착용해 이뤄진다. 안경을 착용하면 아기자기한 게임 캐릭터가 보이는 방식이다. 이때 플레이어는 현실 속 요소들을 활용해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그곳에는 오늘 해결해야 하는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캐릭터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높이였다. [신님, 신자들을 위해 이 봉우리에 경사로를 만들어 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딱딱한 서류철을 하나 빼내어 서류 더미에 비스듬히 올려놓았다. 그러자 캐릭터들이 환호성을 지르더니, 이내 그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서류 더미 위에 있는 가차석을 캐냈다. 「평범한 게임 보고서」 중
주인공인 '남자'는 회사 동료인 '후배'를 끌어들여 함께 게임을 즐긴다. 주인공의 도시는 다른 플레이어 도시와 교류하며 점차 발전한다. 과도한 경쟁이나 대립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과 성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묘사한 AR을 접한 독자들은 "정말로 이런 게임이 출시한다면 좋겠다"는 감상을 남긴다. 작품 속 배경과 사건은 먼 미래나 다른 세계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곧 직면할 것이란 기대감을 준다. 고도의 인공지능(AI)이나 아직은 풀지 못한 뇌 기술 등을 요구하는 가상현실과 달리, AR은 현실 속 기술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애플이 AR용 장치인 애플비전을 내놓았다. 지난 1월 출시 한달 만에 25만대가 팔렸다. 4월엔 수요 부진을 겪은 끝에 출하량이 목표치를 밑돌긴 했지만, AR은 이미 일상에 들어왔다. 이는 「평범한 게임 보고서」가 눈길을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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