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임영웅 공연, `역사적 사건` 됐다
최근 치러진 임영웅의 서울 월드컵경기장 공연이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운동장을 완전히 비웠기 때문이다. 객석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미 사전에 예고된 일이긴 했다. 예매 전에 공개한 좌석배치도에 운동장이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좌석배치도가 큰 파장을 일으켰었는데, 막상 공연 때 실제로 텅 빈 운동장이 펼쳐지자 배치도로 단순화된 이미지로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 발생했다.
그 넓은 운동장에 무대장치라고는 중앙 무대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운동장 4면을 에워싸며 4면 돌출무대를 설치했다. 이 역시 좌석배치도 이미지로 사전에 공개된 형태이긴 했지만, 실물로 드러났을 때 더 큰 충격이 나타났다. 운동장 4면을 에워싼 형태로 돌출무대를 만들었다는 건 운동장 바깥 트랙을 돌면서 공연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거기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운동장엔 중앙 무대 이외의 설치가 없었다. 즉 가장자리 돌출무대에서 중앙무대까지 운동장으로 내려가 걸어 이동한다는 뜻이다. 팀도 아닌 솔로가수가, 초대 손님도 없이 쉬지 않고 공연하는 조건에서 이렇게 광활한 지역을 오가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충격을 받았다.
이 모든 게 잔디 보호라는 월드컵경기장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루어진 선택이어서 좌석배치도가 공개됐을 때부터 찬사가 쏟아졌었다. 공연 날이 닥쳐 그 모습이 현실로 눈앞에 실현되자 더 많은 이들이 놀란 것이다.
또다른 충격은 운동장을 덮은 흰 천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비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하얀 천으로 전체를 덮어버렸다. 잔디를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이러면 공연엔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앙 무대 이외엔 구조물 하나 없이 하얀 천으로 덮은 거대한 공간에 가수가 덩그러니 노래하는 모습으론 공연의 열기를 끌어올릴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썰렁한 느낌이 들게 된다.
만약 운동장에 열광적인 관객이 가득 들어차있다면 공연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가수도 한결 수월하게 공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공연할 경우 누구나 운동장부터 관객을 채우는데, 임영웅은 그걸 모두 비웠으니 가히 초현실적 풍경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례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어두워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운동장을 덮은 흰 천이 스크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경기장 꼭대기에서 운동장으로 영상을 쏜 것이다. 임영웅의 노래에 맞춰 운동장에 그에 어울리는 영상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레이저로 문구를 쏘기도 했다. 이건 또다른 의미에서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매출의 관점에서도 개인 가수의 공연에서 이런 일을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개인 가수의 공연은 영리활동이다. 운동장은 고가의 VIP 좌석을 팔 수 있는 핵심 매출원이다. 운동장이 금싸라기 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공연에선 운동장을 스크린으로 쓰는 모습이 나타날 수 없다. 정부가 하는 올림픽 개막식 같은 행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임영웅 공연에선 개인 공연인데도 그런 모습이 구현되니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 것이다.
대규모 인원이 텅 빈 운동장에서 집단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도 국가적 행사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이번에 임영웅 공연에선 대규모 댄스팀이 그런 운동장 퍼포먼스도 펼쳐 올림픽 같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줬다.
이런 일들을 실현하기 위해 이번에 임영웅은 최소한 40억원 이상의 매출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매우 보수적으로 계산한 것이고 실제론 더 많은 액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잔디 보호를 위해서다. 그 때문에 운동장을 비우기로 했고, 그러면 텅 빈 운동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스크린으로서의 활용과 같은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다.
잔디 보호 같은 공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십억원의 공연 매출을 포기한 가수가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을까? 이러니 충격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임영웅 서울 월드컵경기장 공연은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한국 공연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다른 가수가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할 때도 임영웅 사례가 참조될 것이다. 공연계에 역사적 이정표를 남겼다.
임영웅은 이번에 놀라운 공연 역량을 선보이기도 했다. 운동장을 모두 비우고 혼자서 공연하는 악조건에서도, 중간에 막간 영상 상영 시간을 제외한 3시간 가량의 공연시간을 열기로 가득 채웠다. 왜 임영웅 공연이 국민공연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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