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사랑도 주먹도 연주도 필요하다
갓난아이를 만나면 사람들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예뻐한다. 막 연인이 된 사람들은 손을 잡는 것으로 호감을 표시한다. 사랑은 손의 접촉에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달라이 라마는 인간의 손이 다른 사람을 품어 안기 좋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손이 남을 때리려고 만들어졌다면 구부러지는 손가락은 필요 없을 것이고, 이런 손의 구조는 인간의 자비롭고 온순한 성격을 나타낸다고 했다. 2015년 미국 유타대학 한 연구팀은 정반대의 보고서를 내놨다. 인간의 손이 싸움을 잘 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 손가락은 주먹을 쥐고 상대에게 펀치를 날렸을 때 자신의 뼈가 부서지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이 연구 결과가 인간의 폭력성을 정당화한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둘 다 맞는 얘기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껴안고, 때론 주먹으로 가격하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 나아가 인간의 주먹은 반드시 남을 가격하기 위해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땅에 쓰러진 사람이 각오를 다지면서 다시 일어설 때, 권력에 저항하며 구호를 외칠 때도 주먹을 쥔다. 주먹을 쥘 때 엄지손가락은 나머지 손가락과 다른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이를 맞섬(opposition)이라고 한다. 엄지의 맞섬은 도구적 인간, 싸우는 인간, 저항적 인간을 만들어 냈다. 평화가 투쟁과 저항 없이 저절로 이뤄질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인간의 손은 빛과 그림자 모두를 거머쥐도록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손은 섬세하고 고도로 발달한 신체로서 어떤 기계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기능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인체 뼈의 25%가 양손에 존재할 정도로 인간의 손은 복잡하게 이뤄져 있고, 그 덕에 온갖 난해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정교한 복사본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사람 손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하면 기괴한 그림들이 나오는데, 이는 인간의 손동작이 너무나 다양하고 미묘해 에이아이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한다.
인간의 손은 끝없이 진화 중이다. 스마트폰이 확장된 신체의 일부가 되면서 인간은 주먹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으로 자판을 치면서 남을 공격하거나 지지할 수 있는 ‘포노 사피엔스’가 되었다.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결국은 스마트폰을 쥐고 자판을 치기에 더 적합하도록 손가락이 길고 뾰족하게 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인간의 손목에 밤낮으로 달라붙은 기계가 맥박과 수면 습관, 운동의 양과 질을 지시하고 신체를 단련시키는 모습을 보면, 과학기술로 신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 ‘트랜스 휴먼’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고 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도 인간의 손은 주로 소통을 위해 사용되었다. 특히 소통하는 손의 구실은 청각장애인에게는 거의 절대적이다.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서 이길보라 감독은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그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비장애인으로서 음성언어와 수어를 둘 다 사용하는 ‘코다’인 자신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이 영화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할 때 시작은 대개 악수로 이뤄진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인류는 악수를 금지했지만 손을 통한 소통은 지속됐다. 주먹인사가 악수를 대체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주먹악수조차 하지 말자면서 ‘목례 대국민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은 상대와 2m 이상 거리를 둔 목례가 “우리의 전통적 인사법”으로 코로나 시대에 가장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감염병포털을 보면, 최근 연구 결과 악수 같은 표면접촉에 의한 감염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했다. 목례가 “한국 전통”이라며 새삼 강조하는 일은 김치가 코로나 예방에 뛰어나다는 등 ‘우리’의 우수한 면을 내세워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타자의 문화를 배척하는 식으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고 경계하는 감염병 담론이 만든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었다.
손은 질병을 전파한다며 보건당국의 핵심 관리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팬데믹이 유행할 때마다 정부가 가장 먼저 강조한 개인위생 실천은 마스크 쓰기 그리고 손 씻기였다. 손 씻기는 개개인에게 일관되고 정교한 동작을 요구하는 국민적 규율이다. 건강보험공단과 질병관리청은 세제를 사용해 “구석구석 씻으며 생일축하 노래를 두 번 정도” 흥얼거리고(크게 노래하면 안 된다), 손을 씻은 다음에는 종이타월 한 장으로 손의 물기를 제거하고 그 종이타월로 수도꼭지를 잠그라고 당부했다.
신종플루 유행 이후 대한의사협회 등 전문가 집단이 추천하는 특정 브랜드의 손 세정제는 정부 홍보물에도 등장했고, 팬데믹 때마다 없어서 못 사는 상품이 되었다. 위기에 자본이 더욱 돈을 버는 현상인 ‘재난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백신과 마스크, 손 세정제는 감염병 재난을 틈타 호황을 누린 대표적 상품이었다.
손 씻기는 사실 엄청난 희생이 생긴 뒤 얻게 된 과학적 지식이다. 19세기 병원은 감염의 온상이었다.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제대로 손을 씻지 않은 채 산모의 질 안쪽으로 손을 넣어 아이를 꺼낸 탓에 병균에 감염된 수많은 산모가 산욕열에 걸려 죽었다는 점을 처음 발견했다. 당시 조사를 보면, 1840~46년 의대생이 산모를 관리하는 병동에서 산모 1000명당 98.4명이 죽었지만, 여성 조산사가 관리한 조산원의 사망률은 1000명당 36.2명에 불과했다. 제멜바이스는 해부용 시신을 접촉하는 의사들의 오염된 손이 산모의 죽음을 유발했다고 주장했지만 의료계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동료들의 손가락질을 받다가 정신병원에 갇혀 죽었다.
특정인을 낙인찍고 지탄하는 수단으로서 손은 공격의 신호로 쓰인다. 독재자 박정희는 ‘소녀의 고운 손’을 지목했다. 그는 1963년 발표한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라며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를 향해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고 비난했다. 근대 국가 만들기라는 고된 노동열차에 무임승차해서 놀고먹는 소녀의 손은 국가공동체의 명령을 거스르는 반역이자 ‘적’이 되었다. 김용언은 ‘문학소녀’에서 이런 ‘읽고 쓰는 여자들’에 대한 손가락질과 조롱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렇다고 국가가 일하는 손을 대접한 것도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잘린 손가락’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노동력을 갈아 넣다가 희생된 이들을 상징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손가락질은 1948년 전라남도 여수·순천 등지 일어난 ‘여순사건’ 때 벌어졌다. 반란군 쪽에 가담한 부역자를 색출하기 위해 진압군은 주민들을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 모았다. 진압군은 몇몇 적당한 우익 인물 등을 시켜 부역자인 ‘이웃’을 가려냈는데 이들에게 지목당하면 그 자리에서 곧장 총살당했기 때문에 이를 ‘손가락 총’이라고 불렀다.
‘장인’에서 리처드 세넷은 고도로 숙련된 연주자의 연주야말로 초인적인 반복 연습으로 이뤄진 성과라고 했다. 얼마 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명동성당에서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연주하면서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처음부터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공연장에 들어온 그는 연주 중에 기침을 길게 터트리거나 탄식을 내지르며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이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일어서서 연주를 이어갔다.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도 그는 무대 위에서 죽어도 좋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했고, 열정적인 공연에 관객은 기나긴 박수갈채와 함께 ‘폭풍 눈물’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몇 번의 손가락 부상에도 연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정경화는 진정한 음악의 사제임을 입증했고, 이날 최고의 명연주를 선사했다.
신문사의 한 선배는 중년의 나이에 현악기를 배우며 고단한 생활에 위로로 삼았다. 암이 재발한 뒤에도 그는 하루 4시간 첼로 연습을 마다하지 않았다. 뽐내거나 무대에 오르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세넷의 말대로, 그는 첼로를 연습하면서 자기만의 서사를 써내려갔다. 그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최고의 연주를 했고 마지막까지 분주히 손을 놀려 남은 이들에게 애정 어린 편지를 띄웠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의 손은 타인에게 열려 있다. 타인에게 한 번도 주먹을 날리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있지만, 살면서 한 번도 남의 손을 잡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손은 역시 때리기보다 연결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이유진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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