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5주년 톈안먼 시위 장소 가보니... 가방 뒤지고 휴대폰 사진 지우는 공안
공안, 휴대폰 요구해 사진 삭제 요구...가방 검사도
홍콩엔 장갑차까지 등장...추모 분위기 원천봉쇄
라이칭더 "톈안먼 사태,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중국의 '톈안먼 민주화 시위' 35주년을 맞은 4일 수도 베이징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반면 톈안먼 광장은 물론 '백지 시위' '현수막 시위' 등 중국 정부에 대항했던 시위가 발생한 현장엔 공안 인력이 집중 배치되는 등 삼엄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미 중국인 사이에서 잊히고 있는 톈안먼 시위뿐 아니라 제2, 제3의 톈안먼 시위의 기억까지 지우겠다는 태세였다.
이날 오전 베이징 하이뎬구의 한 고가도로인 스퉁차오. 2022년 10월 중국인 남성 펑리파가 "인민 영수(최고지도자) 말고 선거를 원한다" 등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판한 구호를 적은 현수막을 내걸어 전 세계의 시선을 끌었던 곳이다. 톈안먼 광장에 이어 이곳이 제2의 민주화 성지로 여겨질 것을 우려한 중국은 시위 직후 사복 공안을 상시 배치했다. 특히 이날은 평소보다 2~3배 이상 많은 공안 인력이 스퉁차오 주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현수막 시위 등 민주화 운동 현장에 공안 집중 배치
기자가 휴대폰으로 스퉁차오 전경을 찍자, 사복 공안 4명이 금세 기자 주변을 둘러싸고 휴대폰과 여권을 요구했다. "왜 이곳에 왔냐", "사진은 왜 찍었냐" 등을 캐물은 공안들은 사진을 삭제하고 휴지통까지 비운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지금 이곳을 떠나라"며 여권을 돌려줬다. "오늘은 평소보다 공안이 많은 것 같다, 왜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공안은 어색한 표정으로 "비밀"이라고 답했다.
2022년 11월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발감으로 촉발한 백지시위가 벌어졌던 차오양구 량마허 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많은 경찰이 순찰했고 량마허 입구마다 공안 차량이 빠짐없이 서 있었다.
노상에서 가방 검사까지...마오쩌둥기념관엔 인파
35년 전 수천 명의 중국인 청년이 민주화를 외친 톈안먼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광장으로 향하는 길엔 100~200m마다 무장 공안이 배치되어 있었고, 길목마다 무전기를 든 사복 공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검문소가 아닌 노상에서 공안들이 행인의 가방 안을 뒤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톈안먼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톈안먼 망루 방문 예약 사이트엔 "4일 하루 망루를 폐쇄한다"는 공지가 떴다.
광장 인근 '마오쩌둥기념관'은 오성홍기를 든 중국인 관광객들로 크게 붐볐다. 35년 전 사건은 평범한 중국인들에게 이미 잊힌 듯했다.
톈안먼 시위는 학생 시위 탄압에 반대했던 후야오방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1989년 4월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기 위해 열린 집회가 같은 해 6월 4일 민주화 시위로 확산한 사건이다. 중국 정부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해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했다. 800여 명의 사망자와 1만4,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됐으나 비공식 집계로는 사망자가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민주화 운동이지만, 중국 정부는 언급하는 것조차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홍콩 입에도 재갈...손가락으로 '8964' 썼다고 체포
중국은 톈안먼 시위 희생자를 추도해온 홍콩의 입에도 재갈을 물렸다. 홍콩프리프레스(HKFP) 등에 따르면, 이날 홍콩엔 평소보다 여러 배 많은 경찰이 주요 지역에 배치됐고 일부 지역에선 장갑차도 목격됐다. 홍콩 번화가 코즈웨이베이에선 한 행위예술가가 체포됐다. 톈안먼 시위 날짜(1989년 6월 4일)를 의미하는 '8964'를 손가락으로 허공에 썼다는 이유에서다.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추모 촛불집회가 열려온 홍콩 빅토리아파크에서도 이날은 어떤 집회도 열리지 못했다. 다만 매년 기념일 직전 1면에 '시위 희생자 추모 기도문'을 실어온 홍콩 기독교 매체인 시대논단은 지난 1일자 1면을 '백지' 상태로 내보내며 당국을 향한 무언의 저항을 드러냈다.
반(反)중국 성향의 대만 지도자 라이칭더 총통은 톈안먼 시위를 기억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35년 전 민주화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며 "6·4(톈안먼 시위)의 기억은 역사의 격류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시위 희생자 유족 단체 '어머니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35년이 흘렀고 당국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며 "사실을 무시하는 것을 우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포항에 석유 있다" 판단한 액트지오 고문, 이르면 내일 한국 들어온다 | 한국일보
- "100억 원 기부, 봐 달라더니"... 김호중 팬들 75억 원은 '앨범 기부' | 한국일보
- '장군의 아들' 박상민 또 음주운전… 차에서 잠들었다가 적발 | 한국일보
- "'만추' 전엔 혼자라 울었는데" 남편 영화 두번째 출연한 탕웨이 소감 | 한국일보
- 시추 1공에 1000억 원 드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 한국일보
- "내 껄 디스해야 하네"... 홍콩반점 짜장면 먹은 백종원 | 한국일보
- "다 알아듣는다" 중국인 직원에 분노... 짬뽕 끼얹은 주방장 | 한국일보
- 한류스타 '꽃남' 김현중 농부 됐다…"농사, 대단한 일이라고 느껴" | 한국일보
- '욱일기 벤츠' 이번엔 인천서 포착... 아파트 입구 민폐 주차 | 한국일보
- 52년 전 "석유 나왔다"던 박정희 대통령...지금껏 우리 바다 속에서 찾지 못했다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