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vs 사모펀드, 사실상 ‘풋옵션 시한’ 반년 연장… 연말까지 못 팔면 지분 1조에 되사줘야
이커머스 플랫폼 SSG닷컴(쓱닷컴) 주식매도청구권(풋옵션)을 둘러싼 신세계그룹과 재무적 투자자(FI)들 간 갈등이 일단락됐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FI들에 당장 1조원 이상의 투자금을 돌려줘야 할 위기를 모면하고 6개월의 시간을 벌었다.
올해 말까지 제3자에 쓱닷컴을 팔지 못할 경우 투자자의 지분을 1조원에 되사줘야 하는 만큼, 신세계그룹은 매각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잠재적 인수 후보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며 자신하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4일 신세계와 이마트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투자자가 소유한 쓱닷컴 보통주 131만6493주 전부를 2024년 12월 31일까지 대주주(신세계·이마트)가 지정하는 단수 또는 복수의 제3자에게 매도하는 내용의 지분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오늘 주주 간 계약을 새롭게 체결한 만큼, 풋옵션을 포함한 기존 계약 사항은 전부 소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상품권 거품 걷어내야” 1조에 지분 되사달라 요구한 투자자들
앞서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PE)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BRV캐피탈매니지먼트는 2019년 7000억원, 2022년 3000억원을 차례로 투자해 지분을 각각 15%씩 샀다. 당시 FI들은 두 차례에 걸쳐 이마트 및 신세계와 주주간계약을 체결했다. 양측은 “2023 사업연도에 SSG닷컴이 총매출요건(GMV) 또는 IPO 가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인수인은 2024년 5월 1일부터 2027년 4월 30일까지 소유 주식 전부를 매수해 줄 것을 대주주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
‘GMV 요건’이란 GMV 5조1600억원 달성을 뜻한다. SSG닷컴의 GMV는 2021년 이미 5조7174억원을 달성했으며, 지난해에도 5조7000억원을 넘었다. 또 IPO위원회가 선정한 복수의 IB로부터 IPO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받았다는 게 신세계그룹 측 입장이다.
이와 달리 FI들은 쓱닷컴이 두 가지 요건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먼저 GMV 요건은 중복 계상을 제거할 시 미충족한다는 게 FI들의 입장이다. 가령 쓱닷컴이 상품권을 팔아서 번 매출액과 그 상품권을 받고 물건을 팔아 기록한 매출액이 중복돼 두 번 계상되며 GMV에 거품이 끼었다는 것이다. FI들은 쓱닷컴이 IPO 요건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받은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제안서는 ‘의견서’가 아니라는 게 FI 측 주장의 골자였다.
5월 1일부로 FI의 풋옵션 행사가 가능해지자 신세계그룹은 전격 협상에 들어갔다. 신세계그룹은 현재 신세계건설 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때문에 계열사 지분 매각설까지 나올 정도로 금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말에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신세계건설이 총 6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 당장 현금 1조원 이상을 조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FI들과 원만하게 합의하기 위해 한 달 내내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 일단 급한 불 껐지만 “6개월간 호흡기 달아 놓은 것”
이번에 양측이 주주간계약을 새로 체결해 풋옵션이 효력을 상실함에 따라, 신세계그룹은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다. 당장 1조원을 돌려줘야 할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다만 12월 31일이 ‘주식 매매계약(SPA) 체결’이 아닌 ‘매각 대금 납입 완료’ 시한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SPA 체결에서 클로징까지는 최악의 경우 1년 가까이 소요되기도 한다. 만약 정해진 날까지 매각 대금 납입이 완료되지 않는다면, FI들의 보유 지분은 신세계그룹이 다시 1조원에 사줘야 한다. FI들이 풋옵션과 다름없는 권리를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이다. 시한만 6개월 연장된 셈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약 FI들과 합의하지 못해 소송이 제기되면 쓱닷컴은 기업공개(IPO)나 매각을 시도하지 못하고 손발이 묶이게 된다”며 “이번 계약을 통해 일단 반년간 호흡기를 달게 됐다는 것 외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신세계그룹이 ‘매각 실패 시 지분을 되사주겠다’는 데 합의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한 PE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12월 31일까지 지분을 못 팔면 직접 사들이겠다고 계약한 이유는, 법적다툼까지 갈 경우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신세계 측이 FI들에 몇 수 접고 들어간 계약이라는 얘기다.
신세계그룹이 회계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FI들과 급하게 협의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신세계와 이마트는 2023년도 결산을 하면서 FI들의 풋옵션 효력이 상실됐다며 풋옵션 부채 6000억원을 제거한 바 있다. 풋옵션이 소멸되지 않는다면, 신세계그룹 측 회계 처리의 타당성에 논란이 불거질 공산이 크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복수의 잠재적 원매자와 매각 논의를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12월 말까지 SPA 체결과 매각 대금 납입까지 모두 완료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알리바바 같은 중국 기업들은 한국 이커머스 업체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고, 국내 SI나 FI 중에서도 쓱닷컴을 몸값 3조3000억원(지분 30%의 가치가 1조원이라고 가정하고 역산한 값)에 살 만한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쓱닷컴 기업가치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11번가의 매각도 난항을 겪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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