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북전단 왜 민감할까?… 모욕·성적합성 내용 논란의 역사

김예진 2024. 6. 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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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유일사상10대원칙’이 사회 지배
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 모욕에 반응
성적 합성까지 ‘논란의 역사’
“쓰레기가 왔으니 쓰레기를 보낸다.”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보내면서 밝힌 논지다. 대북전단은 무슨 내용이길래 북한은 민감한 반응을 넘어 쓰레기 투척까지 하게 됐을까?
5·10 대북전단 살포 이후 남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위기를 촉발한 대북전단 내용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전단을 살포한 민간단체는 “대북전단 30만장, K팝, 트로트 동영상 등을 저장한 USB 2000개를 20개의 애드벌룬으로 보낸다”고만 했을 뿐 전단의 내용물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으로 만든 플래카드만 공개됐다. 
5월10일 한 민간 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렸다며 배포한 사진.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전문가들에 따르면 2010년쯤부터 시작된 민간단체의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은 살포 활동뿐만 아니라, 전단의 내용도 끊임없는 논란이 됐다. 북한 주민의 알권리나, 북한으로의 정보유입과 무관하게 북한 지도부를 자극해 남북관계 갈등을 유도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북한인권단체들이 ‘조용하게’ 들여보내는 한류 콘텐츠나 성경 등 내용과 차이가 크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우스꽝스러운 사진, 이들 3대 지도자들 얼굴을 돼지로 그린 삽화 등이다. 전단 갈등이 심각했던 박근혜 정부 시기, 김정은 위원장 부인 리설주와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까지 성적으로 합성한 전단지와 가짜뉴스도 있었다. 북한은 강력 반발하는 한편 박근혜 대통령을 헐벗은 모습으로 그린 삽화로 대남전단을 보내면서 맞대응하는 방식으로 ‘복수’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아내 리설주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합성해 성적 모욕하는 대북전단 인쇄물이 방송된 모습. TV조선 캡처
박근혜 전 대통령 삽화가 담긴 북한의 대남전단.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문가들은 북한에는 헌법, 노동당 규약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있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 모욕성 인쇄물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 문헌에 따르면 주민들에게 교육되는 유일사상 10대원칙 내용 중에는 “수령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비상사건화하여 비타협적 투쟁을 벌려야 한다”, “수령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형상화한 미술작품, 현지교시판,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해야 한다“고 돼 있다.

탈북민 설문조사를 토대로 정부가 펴낸 북한인권보고서에는 주민이 살던 집에 불이 나도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챙겨 나오느라 화를 입는다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남측을 방문한 북한응원단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6·15 정상회담 사진 플래카드를 내려달라고 울면서 호소한 소동은 유명하다. 당시 북한 여성 응원단이 이동 중 북한 대표단 참가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길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세워달라고 했다. 이들은 “장군님 상이 찌그러져 있다”, “비가 오면 장군님 상이 젖는다”, “이걸 보고 절대로 그냥 갈 수 없다”며 현수막을 걷고는 고이 접어 운반했다.
2014년 민간단체가 경기도 파주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기 전에 취재진에게 전단 내용을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9년 민간단체가 대북전단 살포 장면을 공개한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유일사상 10대원칙을 두고 남한에선 북한 세습지도자들에 대한 개인숭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지만, 북한에선 국가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질서고, 자의든 세뇌든 혹은 거짓으로든 북한 주민들이 지키고 있는 규범이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일단 그런 것이 북한 땅에 떨어지면 밑에선 묵과할 수 없다는 보고를 올려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북전단 살포 단체들도 이 점을 잘 알고 활용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전단 논란 때마다 등장한다. 전단 살포 단체는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북한 당국이 대응할 수밖에 없고 결국 남북 정부 간 갈등 소재가 되면 자신들 단체의 몸값이 높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단 이야기다. 2020년엔 대북인권단체에서 활동했던 전수미 변호사가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 인권과 무관한 돈벌이 수단”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5월 10일에 살포된 대북전단 내용에 대한 질문에 “전례와 비교해 특이사항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체제 비난 등 기존과 비슷한 내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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