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타, 16년만에 전면 폐지…1000억 이상 사업만 사전검토
500억원 이상 R&D(연구·개발) 사업에 적용했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가 폐지된다. 대신 1000억원 이상 규모 사업에만 '사전 전문검토'와 '맞춤형 심사제도'를 도입한다. 상시 진행으로 통과까지 평균 3년이 소요되던 예타와 달리 사전 전문검토는 전년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5개월간 심사한다. R&D 사업을 진행하는 부처의 자율성과 책임을 높이면서 사업 속도는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기재부)는 4일 'R&D 예타 폐지'에 대한 세부 추진방안으로서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 투자·관리 시스템 혁신방안'을 제8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최종의결했다.
류광준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장은 "이를 통해 500억~1000억원 규모의 신규사업 착수는 예타 폐지 전보다 약 2년 이상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0억원 이상의 기초·원천연구, 국제공동연구 등 '연구형 R&D 사업'은 '사전 전문검토'를 실시한다. 사전 전문검토는 예산요구 전년도 10월에 사업추진계획을 미리 제출 받아 민간 전문가들이 이듬해 3월 결과를 각 부처에 통보한다. 사전 전문검토에서는 예타 제도와 같은 신규 R&D 사업의 당락결정이 아닌, 기획 완성도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각 부처는 이를 바탕으로 기획을 보완해 차년도 예산을 요구하게 된다.
1000억원 이상의 '연구시설구축'이나 '체계개발사업'은 '맞춤형 심사제도'를 거쳐야 한다. 맞춤형 심사제도는 내실 있는 사업 추진과 재정건전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 사업 유형과 관리 난이도에 따라 서로 다른 절차를 적용한다.
별도 기술개발이 필요없고, 사업관리도가 낮은 단순 '연구장비도입 및 공간조성형 사업'은 필요성·활용계획·추진전략을 중심으로 사업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신속하게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
기술개발이 수반되며 사업관리 난이도가 높은 입자 가속기 등 '대형연구시설구축'이나 위성·발사체 등의 '체계개발사업'은 추진 필요성 검토를 통해 구축 여부를 결정하는 '기본계획심사'와 사업 준비정도 검토를 통해 사업 착수 여부 및 예산투자 규모를 결정하는 '추진계획심사'를 단계적으로 실시한다.
대규모 예산투자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연구 시설 구축·체계개발에 필요한 선행기술개발은 기본계획심사 전 별도의 '연구형 R&D'로 나눠 먼저 추진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가 3월에 전문검토와 추진계획심사 결과를 전달하면, 각 부처는 4월말까지 모든 R&D사업을 지출한도 내에서 부처 우선순위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정해 차년도 예산 요구를 한다. 이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각 부처의 책임성도 강화한다는 취지다.
류 본부장은 "각 부처가 자신들의 지출 한도 내에서 R&D 사업 기획을 해오라는 의미인데, 이렇게 되면 부처 내에서 어느 정도 기획이 무르익어 자신 있는 상태에서만 (전문검토나 심사를 받으러) 오게 될 것"이라며 "부처의 자율성과 그에 비례해 책임도 높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와 기재부는 매년 예산심의 단계에서 사업수행 건전성을 지속 점검·관리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된 사업은 특정평가 등을 통해 지속여부·적정규모 등을 검토하고 문제 사업은 종료시키는 등 사후관리도 강화할 예정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R&D 예타 폐지가 실제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국회에서 초당적인 지원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어 "법 개정 전까지는 기존 예타보다 단축된 '패스트트랙(Fast Track)', '혁신·도전형 R&D 사업들에 대한 예타 면제범위 확대' 등을 통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R&D 사업들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배한님 기자 bhn2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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