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생지옥 옆 천국’ ···완벽한 행복이 보여주는 섬뜩한 악
‘홀로코스트 영화’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수용소 안팎에서 고초를 겪는 유대인들의 모습이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은 나치 독일군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 고된 노역을 하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대표격인 <쉰들러 리스트>(1993),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이같은 ‘보여주기’를 통해 비극의 역사를 다뤘다.
5일 개봉하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전략은 ‘보여주지 않고 보여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언더 더 스킨>(2013)의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유대인의 머리카락 한 올 비추지 않고 제노사이드의 비극을 말한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지난 3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차지한 화제작이다.
영화는 숨이 막힐 듯한 어둠 안에 관객을 가두며 시작한다. 2분 간의 어둠이 끝난 뒤 맨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느 가족의 단란한 한때다. 가족은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강가에서 나들이를 한다. 엄격하지만 다정한 아버지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와 어머니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수영하고 나온 아이들의 젖은 몸을 살뜰히 닦는다.
나들이를 끝낸 가족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이층집으로 돌아간다. 정원에는 장미가 탐스럽고 새들은 노래한다. 집에 대한 헤트비히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3년 전 이사온 뒤 꽃 한 송이부터 나무 한 그루, 수영장까지 어느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천국이 따로 없구나.” 딸의 집을 찾은 친정 엄마의 칭찬에 헤트비히는 웃으며 답한다. “그이는 저보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
관객은 머지 않아 눈치채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1940년대 초, 폴란드 아우슈비츠다. 아버지 루돌프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관리자이며 이들의 집은 수용소 바로 옆에 있다. 영화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관심 구역)는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근 지역을 가리키던 말이다.
카메라는 105분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집안에 머물며 가족의 일상을 비춘다. 헤트비히는 장교 부인들과 차를 마시며 남편의 손찌검을 당한다는 이웃을 걱정한다.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아버지 회스의 생일을 축하한다.
특별할 것 없는 장면 안에서 관객은 끔찍한 폭력의 징후를 끊임없이 발견하게 된다. 담장 너머로는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고통에 울부짖는 듯한 누군가의 비명이 간간히 들려온다. 그러나 가족의 일상은 큰 사건 사고 없이 굴러간다. 300만명이 목숨을 잃어가는 생지옥의 옆에서,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악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관객은 섬뜩함을 느낀다.
유대계 영국인인 글레이저 감독의 네 편째 장편영화다. 그는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 총지휘관이었던 루돌프 회스를 주인공으로 한 동명 소설(2014)을 각색해 연출했다. 회스가 살았던 집과 비슷한 집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처음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촬영됐다.
글레이저는 “가해자들에게서 우리와 다른 점을 찾고, 괴물이라고 여기는 건 너무 쉽다”며 “가해자들의 평범함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우리가 가해자들과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유지하는 것이 영화의‘아슬아슬한’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집안 곳곳에 작은 카메라 10대를 설치하고, 배우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가 별도 공간에서 원격으로 촬영했다. 관객이 집안 한 구석에서 가족을 지켜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운드다. 1년 간 세계 곳곳의 ‘고통의 소리’를 수집해 만든 기괴한 소리들은 평화로운 이들과 대조되며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자아낸다. 떠오르는 미국 제작사 A24 작품이다. 독일의 스타 배우 산드라 휠러, 크리스티안 프리델이 나치 부부를 연기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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