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수리' 당근 제시한 정부…의료계 "복귀할 거면 시작도 안 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사직수리 금지명령 등을 철회하겠다는 사실상 '당근책'을 내놨다. 하지만 의료계는 "복귀할 거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거센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4일 낮 3시 정부는 사직수리 금지명령, 진료유지 명령, 업무개시명령을 이날부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100일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의정 갈등 속 미복귀 전공의의 복귀 발판을 만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은 거세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달라진 건 없다. 응급실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잡아가라"는 입장을 전했다.
박 위원장은 "대한의사협회건 보건복지부건 왜 하나같이 무의미한 말만 내뱉는지 모르겠다. 근데 이젠 정말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지(않겠냐)"며 "업무개시명령부터 철회하라. 시끄럽게 떠들지만 말고. 아니면 행정 처분을 내리든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전날 대전협 내부 소통망에 "결국 달라진 것은 없다. 저는 안 돌아간다"며 "저도 애초에 다들 사직서 수리될 각오로 나오지 않았나"는 글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글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수 있다. (의대) 학생들도 우리만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장도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전공의 복귀 시 면허정지 절차 중단이라는 것은 복귀를 안 하면 면허 정지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전공의가 이 정도로 복귀할 것이면 아예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결론은 병원이 알아서 (전공의와) 면담해서 사표 수리할 것이면 하라고 떠넘긴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발 빼려는 것 같다"며 "(전공의 복귀를 위해선) 증원을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는 2020년에 의료계 파업 당시 의료계에 배신감을 느꼈던 세대"라며 "그걸 알기 때문에 전공의가 학생들을 두고 '사직서 수리한다니 돌아가자' 하겠냐"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대 교수도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며 "복귀 전공의에 대해 행정명령 철회가 아닌 중단을 했다. 앞으로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에 전공의가 다시 들고 일어날 때 다시는 사직을 못 하게 만들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전공의 일부 복귀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경기도 지역의 한 병원장은 "빅5 병원을 포함해 수도권에서 수련받고 싶었던 지역 사직 전공의가 대거 몰려들 것"이라며 "지역 병원, 특히 내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같은 비인기 진료과는 여전히 전공의 공백이 이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그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증원을 결정하고 수조 원의 재정을 투입해도 변화가 없다는 건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복귀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향후 병원 정상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진료보조(PA) 간호사, 전임의 채용 등 100여일간 '전공의 없는 병원'을 꾸리기 위해 체질 개선이 이뤄져 온 만큼 이전과 다른 근무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병원들은 판단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돌아오면 의대교수들의 업무가 경감되고 이는 환자에게 분명한 이득"이라며 "각종 명령 철회와 행정처분 절차 중단 등 정부의 '당근책'에 병원장 등의 설득이 더해지면 절반 이상 복귀할 수도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이미 전공의 업무의 상당 부분이 PA간호사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두 직역 간 업무 마찰이 빚어지진 않을지 걱정되는 측면은 있다"며 "정부가 병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환자단체는 정부의 의료공백 해소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환자들은 전공의 사직 수리 여부에 대해 큰 의미가 없다. 환자 피해에 대한 조치는 없는 듯하다"며 "환자에게 어떻게 의료공백을 해소할지 말했어야 했는데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으로 방치할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구단비 기자 kdb@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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