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신약' 엔허투 급여 적용 … 말기 위암환자 완치 길 열려
허투양성 위암 치료에 강력한 효과
지난 4월 건강보험 급여 적용 시작
80세 환자도 부작용없이 치료받아
구토·폐렴 증상 등 유발할 수 있어
환자 건강 상태 수시로 확인 필요
맵고 짜고 단 음식을 즐기는 한국인은 위암 발병률이 비교적 높다.
'2021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위암은 갑상선암, 폐암, 대장암 다음으로 많이 발생하고, 매년 약 3만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특히 인구 10만명당 발병률은 미국의 10배 수준이다. 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90% 이상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위암 환자 중 약 15%에 해당하는 '허투(HER2)' 양성 위암은 치료가 어렵고 경과도 좋지 않다.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 '허투 양성 진행성·전이성 위암 표적치료제'가 허가되고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말기 위암 환자들에게 '완치 가능성'의 희망이 생겼다.
'허투 양성 위암' 20년간 치료제 없었던 이유
허투는 '인간상피 성장인자 수용체 2형'이라는 단백질 수용체로 암세포 성장과 분열을 촉진한다. 허투가 암세포에서 많이 발현되면 허투 양성, 적거나 없으면 음성이다. 허투가 많이 발현된 암세포는 비교적 암 진행이 빠르고 공격적이기 때문에 예후가 좋지 않다. 또 허투 표적치료제 사용으로 허투가 발현된 암세포를 제거해도 허투 음성 암세포가 공존하는 '허투 이질성' 때문에 암은 여전히 진행된다.
유방암 등 기타 암종은 허투 이질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허투 양성이 확인되면 이를 표적하는 치료제 사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위암은 그렇지 않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위암은 허투가 보조 운전사 정도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허투를 없애도 허투 음성 암세포와 같은 다른 보조 운전자가 계속 암을 진행시키기 때문"이라고 위암의 이질성을 설명했다. 라 교수는 이어 "유방암, 폐암 등 다른 암종에서는 신약 개발이 활발한 반면, 위암은 지난 20년간 개발된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었다"며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허투 이질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종양 유전자 의존성이 낮다는 점도 치료제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
항암 치료 시 표적에 대한 의존도를 '종양 유전자 의존성'이라고 한다. 종양 유전자 의존성이 높은 암종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치료제들이 개발됐지만 위암은 종양 유전자 의존성이 낮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 성과가 더디다. 이 또한 위암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혁신 신약 '엔허투'의 등장
다행히 허투 양성 위암에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표적치료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가 지난해 국내에서 허가됐다. 올해 4월부터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까지 받으면서 위암 말기 환자들에게 희망이 생겼다.
위암은 암 진행에 있어 유방암만큼 허투 유전자의 역할이 크지 않아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표적치료제와 세포독성항암제를 같이 사용해야 한다. 엔허투는 표적치료제와 세포독성항암제가 결합된 형태다. 라 교수는 "기존에도 허투를 타게팅하는 결합형 항암제 캐싸일라가 있었지만 위암에서 크게 효과적이지 않았다"며 "또 엔허투에 결합되어 있는 세포독성항암제 자체가 캐싸일라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고, 세포독성항암제 수도 캐싸일라의 4개보다 2배 많은 8개로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엔허투는 허투 양성 진행성·전이성 위암 3차 이상 치료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국내에 허가된 지 19개월 만에 이룬 성과다.
국내 허가 후 급여 적용까지는 짧게는 2년부터 길게는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번 엔허투 급여 등재는 비교적 단기간에 이룬 성과로 '명확한 대상 환자군과 치료효과'가 주효했다.
라 교수는 "기존에 허투 양성 전이성 위암 환자는 3차 치료 시 2~3개월이면 약에 내성을 보이고 6개월~1년 정도이면 사망에 이르지만 엔허투는 최초로 1년 이상의 생존 기간을 나타낼 정도로 좋은 효과를 보여주었고, 대상 환자군도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엔허투는 이미 약에 대한 내성으로 여러 번 치료를 진행한 3차 치료 이상의 환자에서도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1차 또는 2차 치료에 사용하면 더 좋은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엔허투는 향후 3차 치료뿐만 아니라 보다 조기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 국내에서는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장 먼저 허투 저발현 전이성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앞으로 4~5개 기관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라 교수는 "허투 저발현 전이성 위암에서도 엔허투 효과가 확인된다면 전체 위암 환자 중 허투 저발현일 것으로 예상되는 약 30%의 환자군에게 엔허투 치료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엔허투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후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라 교수는 "급여가 되지 않아 치료를 못 받고 있던 환자들이 먼저 엔허투 치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80세이신 분이 부작용 없이 엔허투 치료를 잘 받고 계신다"며 "그만큼 엔허투가 다른 치료제에 비해 독성이 적고 치료가 수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엔허투와 같이 항체와 약물을 접합한 치료제를 'ADC 항암제'라고 한다. 의료계는 엔허투 등장으로 ADC 항암제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고 입을 모은다. 라 교수는 "해외 학회 30% 이상이 어떤 표적과 항암제를 어떻게 결합할지 등 ADC 항암제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다룬다. 아무리 표적으로 삼기 좋은 타깃이 있어도 좋은 약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데, 엔허투는 단순한 표적치료제가 아닌 세포독성항암제를 결합해 몇 배의 치료 효과를 냈다는 점에서 훨씬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의료진 적극적인 관리, 부작용 줄일 수 있어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항암제는 부작용에 대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엔허투 역시 환자가 약의 부작용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건강 상태인지 잘 살펴야 치료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라 교수는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미리 잘 예측해서 구토나 구역이 우려되면 구토 방지제를 사전에 처방해 주고, 진료 시마다 부작용을 잘 모니터링해서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백혈구 수치를 높여주는 주사를 처방해 주는 등 의료진의 적극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엔허투는 폐렴을 주의해야 한다. 이미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너무 늦을 수 있기 때문에 주기적인 흉부 X레이 촬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조기 발견하면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라 교수는 "전반적인 장기 기능 상태를 확인하면서 치료를 진행해야 하므로 전문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폐렴 등 부작용 관리를 위해선 종양내과뿐만 아니라 호흡기내과 의료진과도 상의하며 진료를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정윤 매경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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