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진료 간호사 활용…환자도 의사도 만족
응급환자 초기대응·치료까지
美, 간호사 위상 세계 최고수준
가정의학과 클리닉 개원도 가능
韓,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간호법'
재발의 됐지만 여야 정쟁에 폐기
지난 4월 22일 일본 국립병원 오사카 응급의료센터에 왼쪽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남성이 구급차로 실려 왔다. 초기 대응하는 의료진은 의사가 아니라 모리 히로야스 진료간호사(NP·Nurse Practitioner, 의사 지시하에 문진·진단·처방)였다. 모리 NP는 구급대로부터 상황이나 환자의 기존 병력을 듣고 필요한 검사나 진통제를 준비했다.
이어 환자의 양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통증 부위를 확인하고 맥박과 엑스레이(X-ray)도 확인해 응급외래 의사에게 "응급성이 높은 심장질환의 위험은 낮고 어깨관절염이나 건판염이 의심된다"고 보고했다. 의사도 승낙해 모리 NP는 관련 내용을 전자 진료기록카드에 입력하고 정형외과 의사에게 진료를 의뢰했다. 오사카 응급의료센터는 NP들이 근무하는 평일 낮 기준 2023년 응급외래 수용 환자가 2014년보다 약 6.5배 늘어난 1100명까지 증가했다.
우에다 교타카 센터 총괄 진료부장(의사)은 "의사 업무를 경감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 거절당한 환자를 받아들여 조기 치료로 연결하고 있다"며 "의사만큼 검사 결과를 해석해내는 NP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의사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의료 공백을 메꿔주는 NP를 새롭게 조명한 보도 내용의 일부다.
인구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자 주요국이 간호인력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일본은 간호사를 잘 활용하는 국가로 꼽힌다. 일본은 의사의 근로 방식 개혁이 본격화되고 있어 NP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일본은 올해 단카이세대(1947~1949년 출생)가 모두 중증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75세를 넘어 의료 수요 폭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4월부터 의사의 시간 외 근로시간 상한선이 연간 960시간(주 약 18.5시간), 특수한 상황일 때는 연간 1860시간(주 약 35.7시간)으로 적용된다. 주당 40시간 근로가 원칙이지만 의사들이 혹사당한다는 비판 여론을 반영해 근무시간을 제한했다.
일본 NP는 국가자격 간호사로, 5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거쳐 NP 양성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원 석사과정(2년·20곳)을 수료하고 일본 NP교육대학원협의회(사단법인) 시험에 합격하면 인정된다.
일본은 작년 말 기준 활동 간호사가 약 143만명인데 이 중 NP는 870명, 특정간호사(정부가 인정하는 특정 분야 38곳에서 의사 지시하에 업무)는 9130명이다. 특정간호사는 위염이나 기관에 삽입한 튜브 교환 등 고도의 진료 보조(특정 행위)를 하는 간호사로, 2015년부터 연수제도가 시작됐으며 지정 의료기관에서 1년 안팎의 연수를 수료하면 의사의 지시 아래 최대 38개 특정 행위를 할 수 있다.
의사도 간호사의 진료 업무 투입에 긍정적이다. 업무뿐만 아니라 시간 외 근무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아오모리현립중앙병원은 2019년 심장혈관외과에 NP를 배치한 후 의사의 월평균 시간 외 근무가 114시간에서 83시간(2022년 기준)으로 줄었다. 야시로 나오히로 쇼와여대 노동경제학 교수는 "의사보다 친근하고 상담하기 쉬운 간호사가 의료 지식이나 의술을 갖추고 있다면 환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은 간호사의 위상과 역할이 세계 최고다. 다만 책임이 뒤따르고 실수하면 가차 없이 해고당하며 면허정지를 받는다. 전문간호사는 요구하는 분야의 경력을 갖추고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자격을 유지(갱신)하려면 3년 또는 5년마다 약 1500달러의 회비와 심도 있는 자격 유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국 간호사는 석사학위 NP 또는 박사학위 DNP(Doctor Nurse Practitioner), 학사학위 또는 1~4년 간호과정의 RN(Registered Nurse), 2년 이하나 짧으면 9개월 단기 교육과정의 LPN(Licensed Practical Nurse)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근무규정 한계가 분명해 할 수 없는 일은 시키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NP나 DNP는 의사처럼 자신의 전공 과목이 있다. 대형병원의 1차 진료를 NP·DNP가 보는 경우도 있고 환자를 스크린해 증상에 맞는 전문의에게 보내고 약 처방도 할 수 있다. 한국의 가정의학과와 같은 클리닉도 개설할 수 있는데, 주로 소도시에서 개업을 한다.
이 같은 세계적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정쟁의 대상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이 재발의됐지만, 여야의 정치 공방으로 결국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이에 앞서 보건복지부는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3월 3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침에서 지칭한 간호사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정부가 의사 업무 일부를 간호사에게 위임하면서 붙인 이름이며 통상적으로 '전담간호사' 또는 '진료지원인력'으로 불린다. PA 간호사는 그동안 수술 보조 및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보조 등 의사의 의료 행위 일부를 암암리에 대신 해왔으며 현재 전국에서 1만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제화로 양성화가 필요한 이유다. PA 간호사와 달리 전문간호사(APN·Advanced Practice Nurse)는 2003년 법제화돼 2005년 첫 자격시험이 시행됐고 현재 13개 주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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